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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말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5월
평점 :
세상에는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헤매다 보면 종종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놓칠 때가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도 운명이라 여기는 나에게는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는 책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저자와 작품에 익숙하다 보면 새로움을 놓칠 때가 많다. 그래서 단순하게 표지가 마음에 든다거나, 제목이 끌렸다거나 하는 이유로 정보가 전혀 없는 책들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이 책도 역시나 그랬다. 그래서 단편집인 줄도 몰랐고,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의 내용이 비슷비슷하면서도 나 또한 여전히 헤매고 있는 삶의 회한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질 때도 있었다.
다만 지금은 내가, 거기가 아니라 여기 있을 뿐. 여기 있고 거기 없을 뿐. 그야 나는, 여기와 거기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고, 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62쪽
하루하루 일하며 살아가며 하는 생각들이 그래도 건강하다 여기며 안심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그렇듯 특별한 일이 없어 특별할 것 같지 않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이 흐른 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지만, 한참 예민하던 시기에는 이렇게 세상에 묻혀 버리는 건 아닌지 조바심을 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갑자기 뚝 끊겨버리는 소설에 ‘이게 뭐야!’ 하는 당황함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뭐랄까, 지극히 현실적이라고나 할까? 소설 깊숙이 들어 있는 문화와 정서의 공감은 모두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끝나버리는 게 우리의 일상과 삶과 닮아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모른다는 것 자체를 모르니까 괜찮아. 217쪽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을 무마시키려는 게 아닌 순수하게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 편한지! 이런 문장을 만날 때마다 눈에 띄는 사건이 없고, 특별한 인물도 없지만 상황을 세밀하게 녹여낸 묘사와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누군가가 이렇게 툭, 하고 던져준다면. 그것이 무시와 비하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라면 마음 한 켠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자꾸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핑계 거리가 많아지는데, 그럼에도 삶을 좀 더 심플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25쪽
이런 문장 앞에서는 찔리고, 좌절하고, 현재의 내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잘 관찰하고 있다고 본다. 자신을 관찰도 하지 않은 채 외면한다면 이런 내면의 소리가 나올 여지가 없을 때도 있다. 이와 비슷한 감정에 휩쓸려 오랜 시간을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시기가 있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주말을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을 보면서 나름 열심히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나의 주말은 피곤의 연속인데, 오히려 이 소설을 통해 다양한 주말을 경험하고 쉼을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