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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ㅣ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오늘 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이덕무는 어떻게 책을 보았을까.
햇살의 빛을 따라 책을 볼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살림이 넉넉치 않아 불을 맘껏 밝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비로 인한 어둠은 내 방까지 이어져 불을 켜도 어두워서 스탠드 불까지 켜는 호사를 누려 보지만 이덕무보다 행복하지 않다라는 느낌이 든다.
이덕무가 책을 보며 즐거워했던 것만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서자라는 신분의 씁쓸함이 더 짙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의 느낌을 적기 위해 불빛의 호사를 누리면서도 나는 이덕무처럼 책을 읽으며 행복해 할 자신이 없다.
나의 도능독의 독서는 이덕무 앞에서 더더욱 초라해진다.
이덕무를 비롯한 그의 벗들과의 교류 속에서 책과 학문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였다.
밤새도록 빌려온 책을 읽고 빌려준 사람은 그 책이 다시 보고 싶어 빨리 돌려 달라는 제촉의 편지를 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하면서도 부끄러워진다.
요즘 세상은 책이 없어서가 아닌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정도라서 이러한 책을 통한 나눔은 흔치가 않다. 시대의 변화라는 거창한 이유도 있겠지만 책의 내용이 아닌 책의 소유를 더 갈망하는 나의 모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이덕무는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학문의 깨달음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이다.
서자라는 신분으로는 국가의 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살림은 궁핍해져가고 자신의 유년시절에 드리워졌던 우울함이 자신의 아들에게 그대로 드러남에도 그는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꿋꿋했다. 책과 벗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신분과 처지를 가진 벗들과의 교류는 그랬기에 끈끈했고 학문을 통해서라면 나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순수하게 학문에 열정적인 사람이 오래도록 나라를 위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고 좌절 속에서 삶을 보냈다면 말년의 빛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의 배려로 이덕무 같은 서자의 신분인 벗들과 함께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드 넓은 중국도 엿볼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은 것이다.
그 당시의 법이 그러하였으니 그러한 인재등용이 가로막혀 늦게나마 빛을 발휘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였지만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한다.
자신들이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감격을 나눌 길이 없는 것이다. 수 많은 세월동안 책과 벗들이 있었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던 백탑의 추억도 있었지만 그 수많은 지식을 쓸 수 없다는 것만큼 안타까움이 있을까.
이덕무의 삶을 좇으며 그의 처연함, 열정, 정절을 보아왔기에 그가 벼슬길에 올랐을 때는 내가 되려 깊은 감격을 하였다.
그의 박식함을 인정한 정조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여 유고문집(아정유고)를 펴내게 했으니 그의 지식과 곧음은 정말 헛된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핏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이 책만 보는 어리숙함을 뜻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책만 볼 수 밖에 없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결코 책만 보았던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덕무는 비교적 젊은 53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죽기 전날까지 일기를 쓸 정도로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뜨거웠는데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의 삶의 모습을 좇으며 동고동락한 시간이 은근히 깊고 다정하게 다가왔기에 내 마음이 다 허해지는 느낌이였다.
그의 벗 유득공,박제가,이서구,박동수와 연암 박지원, 당헌 홍대용 선생등 그들 또한 이덕무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지만 그들의 흔적에서 이덕무를 발견하기보다 그들도 이덕무와 같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책만 보는 바보가 아닌 책만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깨고 나옴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던 이덕무. 비가 오는 날이면 햇살을 좇지 못해 책을 실컷 보지 못했을 그가 떠올라 마음이 저릿 저릿 아파올 것 같다.
진정 책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했던 옛 선인들.
오늘 따라 그들이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