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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9월의 4분의 2쯤 지났을때 이 책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9월의 마지막 하루를 남겨둔 시점이다.
9월의 4분의 1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일까.
무얼 의미하는지 내내 궁금했다.
그래서 9월의 4분의 1쯤 남겨두고 책을 읽었을땐 베시시 웃고 말았다.
9월의 기간을 두고 의미 부여에 총력을 기울인 나의 모습이 부질 없다는 사실과 사연을 알게 된 후련함. 단지 그뿐이였다.
문득 내가 이 책을 9월 4일날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을까? 우연의 일치라며 한바탕 사랑을 꿈꾸어 보았을까?
주인공 나는 13년전 약속장소를 알아채지 못했던 파리의 9월 4일역에 서있다. 나오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또한 나오도 그러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었기에 텔레파시를 보낸다. '9월의 4일에 만나요' 라는 메세지를 알아차려 달라고. 그러나 나는 알아 차리지 못했다. 나오를 진정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렇듯 파리의 9월 4일역에는 나오를, 호수 앞에서 마미를, 영국에서 미나코를, 하코테 미술관에서 요리코를 그리워 하는 네명의 남자를 만난다.
제각각의 추억과 사랑과 고뇌를 간직한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도 하고 과거에 빠져 있기도 하지만 미래는 꾸리지 않는다. 그들이 이야기 하기 전에는 그들의 미래를 알아 차릴수가 없다. 참을성 없는 현대사회에 그들은 긴 시간을 넘나들며 태연히 말을 걸어 온다. 그래서 그들에게 미래를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들의 수십년전의 과거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래를 감히 꺼낼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나는 안타까움이나 절망은 느끼지 않았다.
왜 과거를 그리는 현재를 보면 과거의 안타까움, 현재의 절망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시간과 공간의 넉넉한 틈 속에서도 그들의 덤덤함을 닮았다고나 할까...
늘 후회를 하면서 살기에 후회를 없애려 순간의 작는 감정이라도 하고 싶은대로 하려고 애쓴다. 늘 아둥 바둥 거리며 후회를 몰아내고 있는데 그들도 분명 후회를 할만한대도 무언가 할말이 있을텐데도 침묵한다.
그리고 비로소 오랜시간이 지난후에 꺼내어 본다.
후회를 안타까움으로 돌릴 수 없도록 가능성 부여를 최대한 낯춘 시점에서 말이다. 내 내면의 깊은 고뇌는 주욱 늘어 놓으면서 그녀들에겐 왜 그리움이란 여운을 남긴 것일까.
여기서 난 주춤거릴 수 밖에 없다. 범접할 수 없는 차분함이 나의 방종을 잠식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뱅뱅 돌아서 안착하는 그들의 그리움과 추억이 그녀들이 들러리가 아닌 주연임을 인정하기에.
단지 그들은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세세한 복선을 깔았는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이 중심이 아닌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뱅뱅 도는 듯한 느낌, 그리고 쉽게 인정하지 않고 헷갈리게 하는 그들의 심중을 알아채기 전까지 나도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사랑얘기라 말하고 싶다. 상대를 두고 하는 사랑이 아닌 현재 그 사랑을 지켜가고 느껴가는 현재 진행형인, 그녀들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고 추억으로 분류해 버릴 수 있겠지만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을 뿐 그런 사랑이였다.
삶 곳곳에 깃든 사랑.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누었던 모든 것이 떠오른 만큼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랑.
그래서 저자는 추억을 곳곳에 뿌려 놓는다. 그러나 배경은 비슷하다.
가장 눈에 띄는 배경은 직업과 음악이였다.
한결같이 주인공들은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 철자 교정 아르바이트였든, 잡지사를 그만 두었든, 작가였든 말이다.(9월의 4분의 1에서 주인공 나는 글을 쓴다. 그래서인지 그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밥통 판매원이였다. 독특함을 주려 했을까?)
그 사실이 억지인 것 같으면서도 이젠 자연스러워진건 오사키 요시오의 작품을 세권째 읽어서라는게 먹힐까?
여튼 그런 직업과 마찬가지로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면 음악이였다.
왠지 음악이라고 하면 클래식, 재즈 이런 음악과의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데 과거의 대중 음악이 주류다. 전작의 폴리스 음악이라든가 '슬퍼서 날개 없어서'의 레드 제플린이라든가 그런 음악의 등장이 의외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세삼한 짜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클래식이였다면 고전이라는 전제하에 시간의 뛰어넘음을 무의미하게 했을 테고 재즈였다면 그것 역시 음악의 깊이로 인해 헷갈렸을 테니까. 추억으로의 여행에서 그 시절을 회상시켜 주는게 대중음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으로 이루어진 총 4편의 단편은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골라먹듯한 느낌이였다.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맛과 느낌. 4가지의 독특한 맛과 함께한 추억 속으로 쉽게 빨려들었다.
9월이기에. 여름과 가을을 넘나드는 그 경계선에서 마치 환절기 감기를 앓듯 쓸쓸함에 몸무림 쳤기에.
이런 나를 달래주는건 추억으로의 회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