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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책장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취향과 한참 색깔이 다른 책이라는 걸 감지했다.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보고 나름대로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이었다. 그렇더라도 무조건 책을 덮어 버릴 수 없는 노릇이라 나름 정독하면서 완독을 했는데, 충격적인 결말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휘감고 돈다. 책을 읽는 동안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이라는 데서 오는 충격이기도 했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독특한 구성과 소재에 호기심이 일었으나, 내가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풀이 죽었음에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힘이 들었을지 모르나 결말 앞에서 망연자실한 내 모습이 수습이 되지 않았다. 힘겨웠던 과정은 일순간 사라지고 결말 앞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남길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강렬했음에도 결말을 알고 난 후에는 나름대로 할 말이 많게 느껴졌다. 그것은 상실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 속의 배경이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의식이 사라져 버리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인간미를 잃어버리고, 인간화 되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떨지 주인공 아낙시맨더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책 속에 내포된 의미는 많은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나 보다. 띠지만 살펴보아도 인지과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플라톤 철학을 한 권에 담아냈다고 했으니, 나와 거리가 먼 소설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주제를 어떻게 섞었을지, 그런 분야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읽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드문드문 이해를 하다가도 대부분 헤매기 일쑤였다.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공화국의 최고기관인 학술원에 들어가려는 아낙시맨더(아낙스)와 시험관의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은 소크라테스의 문답 형식을 빌리고 있었다. 총 네 시간동안 구술로 시험을 보는 아낙스와 시험관의 대화의 주제는 아담 포드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간으로써 공화국에 나름대로 맞선 인물인 그를 연구한 아낙스는 시험관과의 대화를 통한 시험으로 학술원의 합격여부를 가르게 되어 있었다.
네 시간동안 시험이 치러지고 잠깐의 쉬는 시간이 있는 가운데 아담 포드의 삶, 아낙스가 아담 포드에 갖고 있는 생각을 뛰어넘은 논리와 이상, 시험관들은 아담 포드의 삶을 통해 아낙스가 품고 있는 생각을 엿보려 했다. 시험 시간 동안 단순히 아담 포드의 삶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담 포드가 한 작은 행위의 이면까지 간파하며 추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안에는 미래의 모습에 대한 변화와 공화국의 배경,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지와 의식, 인간미까지 모두 드러나 있었다. 아담 포드가 인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아낙스가 아담 포드의 삶을 연구하고, 그 안에 숨은 뜻을 시험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아낙스가 인간이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대전쟁 이후 오랑우탄을 본떠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과 아낙스도 시험관들도, 자신이 학술원에 지원할 수 있도록 지도해준 펠리클레스 선생님도 모두 인간이 아닌 오랑우탄과 가까운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이 밝혀지는 한 시간을 제외한 3시간 동안 인간의 감성을 내세워 자유를 갈망했다는 아담 포드의 삶에 대해 왜 저렇게 파고드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때론 따분했고 지난했으며 아무리 학술원에 들어갈 수 있는 과정이라고 해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험을 통해 아담 포드의 짧은 생애가 낱낱이 밝혀지다 기계인 아트와의 생활과 대화가 주된 주제로 떠올랐다. 기계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끝없는 갈등과 신뢰를 낳다 아담 포드와 아트가 동시에 탈출하는 것에서 소설은 일단락되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시험관들은 술수까지 동원해 그런 아담 포드의 행동과 사고 속에서 아낙스가 갖고 있는 생각을 도출해 내려 애썼고, 아낙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드러내야만 학술원에서 역사학자의 길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함정에 지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 앞에서 아연실색한 것은 비단 아낙스 뿐만이 아니었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시험이 끝날 때마다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때마다 아낙스는 페리클레스 선생님을 만난 것부터 지금 이 자리에 온 것까지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랬기에 독자인 나도 온전히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고, 독특한 구성으로 소설이 씌였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낙스가 아담 포드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위험(아담 포드의 삶을 옹호하는)이 감지되자 시험관과 학술원, 페리클레스 선생님의 정체까지 모두 드러난다. 철저하게 기계로 살아가야 하는 공화국에서 아담 포드와 같은 의식을 가진 오랑우탄은 허용할 수 없었다. 그 시험은 학술원으로 가장해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을 걸러내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고, 4시간의 시험은 그런 자들을 분별해내는 과정이었다. 페리클레스 선생은 아담 포드와 같은 의식이 농후한 자들을 골라 학술원 시험을 준비시켰고, 판단은 시험을 보는 동안 가려졌으며 지원자의 최후 또한 결정되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아낙스의 마지막 말은 감정을 가진 모든 생명체의 최후를 보는 듯 했다. 미래의 세계가 그렇게 메말라가고 획일화 되어 간다 생각하니 끔찍하면서도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무척 미미한 존재로 느껴졌다. 아낙스와 시험관이 아담 포드의 삶에 빗대어 드러낸 모든 논쟁 속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간파할 능력도 없거니와 아낙스의 최후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인간의 의미'만이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하잘것없는 내 모습이라고 해도 이런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세계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감정을 가진 인물이 바이러스처럼 퍼질 것을 우려해 철저히 제어를 가하는 공화국의 모습은 상상하기 싫은 세계다. 그런 모습이 현재에 이미 잠재해 있다 해도,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 속에서 내가 찾은 것은 겨우 이것뿐임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