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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 ㅣ 개암 청소년 문학 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제니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평화롭던 일상이 뒤집히고 익숙했던 사물들이 낯설게 보이는 시점은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부터다.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은 기쁨을 동반하기보다 대부분 혼란과 당황스러움 복잡함을 달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13살을 앞둔 베서니만 해도 그랬다. 일상의 변화를 맞이하다 못해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아무런 설명 없이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면식도 없는 마일리 이모 집에 오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베서니를 그곳에 맡겨둔 채 떠나버리고 만다. 과연 그런 현실은 베서니가 감당할 수 있을까? 베서니의 부모님은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답답한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궁금증은 끊이질 않았고, 책장은 더디게 넘어갔다.
책의 약 1/3 지점에서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으니 초반의 지난함은 당연했다. 그 후로 해일이 몰아치듯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순식간에 뒤바뀐 분위기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베서니의 부모님이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은 채 이모 집에 남겨두고, 핸드폰을 해지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 무척 답답했다. 베서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님의 행동에 대해 자책하거나 이모네 집에서 적응하는 것밖에 없었다. 마일리 이모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베서니의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엿듣고, 이모네 이웃들이 말하는 '엘리자베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해줄 뿐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언니였다는 사실만으로 충격을 받은 베서니에겐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의 언니인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자신에게도 사촌인 조스에게 전해들은 베서니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분명 엘리자베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에 이모네와 부모님은 단절된 생활을 해왔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사실을 부모님은 자신에게 철저히 숨겨왔고, 베서니를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심하게 과잉보호를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왜 자신을 이곳에 맡겨두고 떠나버렸는지 여전히 의문은 충족되지 않았다. 갑갑하고 답답한 상황만 이어질 뿐, 누구하나 속 시원히 사건의 전말을 말해주지 않았다. 모든 열쇠의 키는 부모님이 쥐고 있는데, 그런 부모님하고는 연락이 되지 않았고 최근 부모님의 행동에 이상이 찾아온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는 늘 울기만 하고 아빠는 더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자신은 낯선 이모네 집에 맡겨져 지금껏 몰랐던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언니와 베서니는 너무나 닮아 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모네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서니를 엘리자베스로 착각했다. 그런 베서니는 엄마부터 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은 엘리자베스 언니의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빠가 보낸 여러 개의 출생증명서와 거액의 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엄마의 말을 뒷받침 해 주고 있었다. 베서니는 정말 복제인간일까? 자신만의 고유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언니를 잃은 슬픔으로 채워진 부모님의 복제품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그때부터 베서니는 자신이 이곳에 와있다는 현실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청소년들이 겪는 혼란을 질풍노도라고 표현할 정도로 존재감에 대한 고민과 방황은 꼭 한번쯤 찾아온다. 그러나 그런 혼란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아래 이루어지는 감정이고,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큰 영향을 받는다. 과연 베서니에게 닥친 현실을 질풍노도라고 단순하게 규명지어 버릴 수 있을까?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 앞에 정체성은 물론이고 존재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동안의 자잘한 고민들과 의문들이 한낱 먼지처럼 느껴질 만큼 베서니에게 닥친 현실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혼란은 낯선 남자가 베서니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두려운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낯선 남자와 아빠의 과거 행적이 드러났지만 그의 곁에는 이모와 조스밖에 없었다. 그들이 과연 베서니를 그 남자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까?
한 편의 서스펜스를 만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더디게 넘겨지던 책장은 후반에 이르러 정신없이 넘어갔다. 과연 어떤 내막이 숨겨 있는지, 베서니의 정체는 그 동안의 사건과 어떻게 결부시켜질지 조마조마했다. 결국 부모님과 베서니를 뒤쫓던 남자가 대면하면서 그동안의 모든 사연이 밝혀졌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란 의문의 과녁에 베서니가 복제인간이라는 화살은 명중했다. 그 사실이 언론에 밝혀짐으로 돈과 과학의 발전, 명예만을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 베서니는 나름대로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는다. 자신을 괴롭혔던 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인격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능력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단다.' 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어 베서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출생에 아픔과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었지만 현재에 존재하는 자신을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베서니가 존재감을 찾아가는 과정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낯설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방황이야말로 그들에게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복잡다단한 시기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존재의 가치가 무너질 때,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절망이 밀려올 때 청소년뿐만 아니라 인간은 좌절하고 만다. 각자에게 주어진 존재의 가치의 농도가 다를 뿐, 베서니처럼 복잡하고 특별한 경우라도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만약 베서니가 혼자였다면 혼란함과 두려움을 잘 이겨냈을 거란 확신이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떠난 부모님은 제쳐두고라도 마일리 이모와 조스 언니가 곁에서 함께 그 시간을 견뎌 주었기에 베일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빨리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의 근원을 떠나 인간과 인간이 서로 기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고, 옮긴이의 말마따나 '지독한 안개 속을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된 소설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소설과 함께 추천된 베토벤의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을 들으며, 우리는 모두 고유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