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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한참 활자에 중독되어 있을 때, 오로지 읽는 것에만 치중해 사진으로 채워진 책이나 데생 집 같은 책은 멀리했었다. 읽을거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고, 느낌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글에서 맛볼 수 없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사진집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읽을거리가 없다는 편견은 깨진지 오래였으나 여전히 느낌을 남겨야 하는 부분에서는 어려움이 따른다.
국내에서 굵직한 사진가로 알려져 있음에도 사진에 관해서 문외한인 내게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책을 읽다 여기저기서 그에 관한 정보를 듣고는 그제야 약간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와의 조우는 처음이니 이 만남으로 인해 온전한 시간이 되길 바랐다. 저자는 중국 시안에서 찍은 사진들로 채워 짧은 글과 함께 <얼굴>이라 책제목을 붙였다. '사람의 표정을 사진에 담는 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라고 말한 저자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시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70~80년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우리도 저런 표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한 웃음이 배어나는 얼굴이 많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는 얼굴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특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 또한 그런 사람들의 통해 '삶이란, 그 존재로 이미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들의 무심한 표정에서 배운다.' 라고 했듯이 일상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 같았다. 무심한 표정의 이면에는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웃음.' 도 담겨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가족은 몇 명이나 될까, 자신의 삶에 행복해 할까 등 나름대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활자로 읽지 않고 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글이 없다고 투덜대며 쉽게 넘기던 책장을 오랫동안 붙들면서 사진이 찍힌 순간의 찰나와 사진 속에 담겨지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저자도 '구구절절한 문장들을 거둬내고 간결한 한마디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작업의 묘미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했으니, 그 사진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묘미가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혹은 찍히지 않은 곳을 마음에 담으면서 사진가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곳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있음을 불쑥불쑥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사진을 찍는 일에 앞서 마음을 여는 일일 것이다. 풍경 속에 자신이 녹아들게 만들고, 마음에 따라 사진의 양상이 달라지듯이 사진을 찍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삶의 찰나를 살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그 모든 것이 잘 녹아 있는 것이 시안 사람들의 얼굴이 찍힌 사진집이었다. 얼굴을 보며 단순하게 표정만 지나칠 때도 있고, 흔적을 추측하기도 하며, 사진 속 배경을 탐문하기도 했다. 잘 찍힌 사진집이 만들어졌다는 생각보다 마음과 마음이 얽혀 보는 이에게도 얽힘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며 때문에 사진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고 한다. 사진에 대해 잘 알아야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사진가가 좋은 사진가이고, 사진을 보면서 찍는 이의 시선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독자가 깊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