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잘 보지 않는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마침 읽고 있던 <순교자> 때문이었다. 뉴스에서는 6.25 전쟁 60주년을 알리는 동시에 미공개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읽다 말고 혹여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흔적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헛된 망상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TV를 봤다. 늘 감흥 없이 지나치던 한국전쟁을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된 것만도 생소했다. 6월 25일이 되면 한국전쟁을 얼핏 떠올리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60주년의 사실을 숙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교자>를 읽고 애국심으로 먹먹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쟁의 비극과 절망 앞에서 무너졌던 사람들, 기적 같은 힘으로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전쟁의 참혹함속에 절망감을 낱낱이 맛본 탓인지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양심을 저버린 건 당신이고, 양심을 지킨 건 또 다른 당신이라는 판단조차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무너질 수 있고,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다만 그에 대한 판단이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다는 것이 버거워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신의 존재여부와 영역에 대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시종일관 독자의 내면을 건드리는 소설을 따라갈 밖에는.

 

  저자의 이력이 독특해서 잠시 펼쳐본다는 것이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격렬한 흐름보다 담담한 차분함이 나를 이끌었다. 정보장교인 이 대위는 육본 정보국 평양 파견대장 장 대령의 지시에 따라 독특한 사건과 얽히게 된다. 전쟁 직전에 공산군에 끌려간 14명의 목사 가운데 12명이 총살당하고, 단 두 명이 살아남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한 목사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을 말하길 거부하는 신 목사가 있었다. 장 대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이 사건을 조사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진실을 감추고 선전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장 대령이 생각한 것처럼 계획적이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서의 충돌은 흥미진진하면서도 곧 무너져 내릴 건물을 붙들고 있는 것 마냥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 대위는 장 대령의 지시로 신 목사를 만나 처형 당시의 상황을 알고자 하지만 신 목사는 말을 아꼈다. 오히려 불편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사이는 팽팽하게 당겨지다 느슨해지기를 반복하며 신뢰가 쌓여간다. 서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종의 신뢰는 점점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 대위는 장 대령의 뜻도 신 목사의 뜻에도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을 밝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교인들은 12명의 목사를 순교자로 드높이고, 신 목사와 한 목사를 배반자 유다에 비유했다. 신 목사는 교인들이 자신을 비난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처형 당시의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런 위험한 발언이 교인들을 난폭하게 만들었음에도 스스로를 배반자라고 칭했다. 장 대령과 이 대위는 신 목사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12명의 목사가 순교자처럼 숨을 거두고 남은 두 명의 목사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둘의 의견이 엇갈리기만 한다. 



  장 대령은 신 목사가 열두 명의 목사를 미화시키는 데 진실을 말해버릴까 전전긍긍하고, 이 대위는 장 대령이 진실을 은폐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며 자주 충돌한다. 신 목사는 열두 명의 목사가 순교자가 아니고 그 안에 배반자가 있으며 부역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처형당할 때 그곳에 없었다고 말했다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고 번복하면서 끝내 그들이 순교자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장 대령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혼란스러움은 장 대령의 생각을 뛰어넘는 계획 밖의 행동과 신념이어서 장 대령 또한 신 목사를 존경하게 된다. 한편 이 대위의 친구이자 열두 명의 목사 가운데 한 명의 아들인 박인도는 아버지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궁금해 한다. 광신도인 아버지와 연을 끊다시피 살아온 그였기에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할 때 신 앞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 한다. 처음엔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해주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장 대령의 추진 하에 함동추도예배가 진행되고 열두 명의 목사를 미화시키는데 신 목사, 박인도 등이 참여하게 된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 또한 진실의 중요함의 유무를 떠나 신의 자녀임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 그들의 팽팽한 논쟁과 일련의 사건 흐름은 독자로 하여금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독자의 질문을 이 대위와 장 대령을 비롯한 다른 인물이 해 주었고, 신 목사는 그들의 질문과 협박,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현실을 초월한 듯한 태도로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었다. 분명 신앙적인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소설임에도 신(神)에게는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느낌이 든다. 또한 신 목사의 최후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껏 보여준 신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좋은 인연으로 만나 인연을 지속시킬 수 있지 않았을 까란 안타까움이 일기도 했다. 결국 "신은 과연 우리의 고난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얻지 못했지만, 그 물음에 모든 것을 바쳐 대답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기억의 잔재가 명확해지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해의 선물>의 줄거리를 읊던 지인의 말을 중단시키고, 내 기억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버찌씨 6개를 사탕 값으로 치르던 꼬마의 모습만 간직하고 책 제목은 기억하지 못했었다. 우연히 중학교 교과서 이야기가 나와 얘기하다 제목이 <이해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흥분은 책이 손에 쥐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닳아질까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며 아껴 읽었다. 도저히 손에서 놔지지 않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여행을 멈출 수 없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 중에서 <이해의 선물>과 <큰 바위 얼굴>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해의 선물>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엉뚱하게 <큰 바위 얼굴>안에 포함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헷갈림을 이제라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싶다. 이 책의 존재를 알려준 지인에게 너무너무 고마웠다. 버찌씨 6개를 들고 가(이 책에는 체리 씨로 번역이 되어있었다.) 사탕을 사던 아이의 순수함. 조심스레 "돈이 모자라나요?" 라고 묻던 아이에게 돈이 남는다며 잔돈을 거슬러 주던 위그든 씨 모두 사랑스러웠다.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한 채 사탕가게의 박하 향을 기억하던 지은이는 훗날 그 날의 추억을 그대로 되돌려준다. 열대어 가게를 하고 있던 그에게 어린 남매가 와서 물고기를 잔뜩 고른 후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처럼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잔돈까지 남겨준 후 젖은 눈을 훔치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의 조각이 맞춰지자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졌다. 책을 읽고 나면 감동이 밀물 듯이 밀려와 주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대가 무너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잔잔함이 온 마음에 고루 퍼졌다는 뜻이다. 한동안 멍하니 책장에 손을 고정한 채 다음 이야기를 읽지 못하다, 지은이의 어린 시절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르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잊지 못할 여행담이 수수하게 펼쳐지기도 했고, 좋아했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아프게 남아 있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 어쩔 수 없었던 일들, 즐겁게 노닐었던 추억은 성장과 함께 지은이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은이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잘 이끌어 낸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집에 전화기가 생겨 전화 교환원과의 특별한 추억과 어른이 되었을 때의 재회는 보는 이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지은이가 이사 갈 때 양배추 아저씨가 준 선물도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참 뛰어놀 때라 그런지 이런저런 말썽도 많았다. 낚시하러 갔다 극적으로 구조되고, 롤로코스터를 만들어 타다 병원 신세를 지고, 감자를 굽다 산불을 내는 등 장난으로 사고 친 기억들도 많았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지듯 지은이의 어린 시절도 파란만장한 가운데 진정성이 묻어나 마음에 더 와 닿았다.

 

  한 가지 마음이 아렸던 것은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였다. 어떤 추억 가운데는 아버지와 다정하진 않더라도 종종 등장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을 터놓지 못한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동안 엄마와 함께 과자를 구워 판 것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아버지. 별 것도 아닌 일에 집을 나가라고 하자 그대로 집을 나온 지은이. 갈등이 깊어질수록 어두운 기억으로 자리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갈등을 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갈등으로밖에 못 푸는 것 같아 나까지 침울해졌다. 그러다 책의 마지막에 <이해의 시작>이라는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며 소통해 가는 모습에 갈등의 응어리가 쌓여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쉽게 풀리지 않겠지만 그런 시도로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책 속에 푹 빠져서 달게 읽은 책이다. 마치 시간이동을 해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성장 과정에서 있을법한 일들이라 동질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더군다나 모든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순수함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서 더 솔직한 글을 보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잊고 있었던, 정말 알고 싶었던 책을 찾게 되어 그 사실이 너무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전집 4 (양장) - 공포의 계곡 셜록 홈즈 시리즈 4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상이 무기력하고 좋아하는 책마저 읽히지 않을 때 꺼내는 비상약은 추리소설이다. 완성도 높은 셜록 홈즈의 작품이라면 나의 무기력함을 떨쳐 줄 거라 확신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작가로 인해 셜록 홈즈를 읽고 만족하게 되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기대를 무너뜨려주지 않길 바랐다. 9권의 전집 중에서 4권을 펼친 순간, 셜록 홈즈 책을 선택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는 믿음이 새어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재미나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홈즈의 번뜩이는 기민함에 매혹 당했다. 그 앞에선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했으므로 마치 홈즈 곁에서 지켜보는 것 마냥 빠져들었다.

 

  사건은 홈즈와 왓슨의 작은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홈즈 앞으로 날아온 암호를 풀기 위해 왓슨과 머리를 맞대던 중, 암호를 보낸 이로부터 소용없는 일이니 암호문을 없애달라는 서신이 도착한다. 하지만 홈즈와 왓슨은 벌스톤이라는 곳에 더글라스라는 사람을 상대로 잔인한 일이 계획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맥 경감이 도착해 '벌스톤 영주관의 더글라스씨가 처참하게 살해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 와중에 천재 수학자 모리어티 교수가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일은 잠시 제쳐두고 사건 현장으로 가게 된다.

 

  벌스톤에 도착한 그들은 죽은 사람의 끔찍한 시신과 마주했다. 경찰은 창문으로 난 발자국을 보며 범인이 도주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경찰과는 달리 홈즈 나름대로 조사를 하며 자신의 생각이 확신이 들 때까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이 더글라스의 절친 바커의 발자국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더글라스의 부인과 바커에 대한 주의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바커와 더글라스 부인의 다정한 모습과 더해져 홈즈는 그들에게 어떠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경찰이 용의자로 떠오른 한 신사를 주목하고 추적하는 사이에도 홈즈는 방안에서 사라진 아령을 찾는 데 주력한다. 늘 엉뚱하게 행동하는 홈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홈즈는 범인이 나타날 거라 확신하고, 영주관에 서신을 하나 보낸 후 경찰과 함께 감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서재에서 영주관 해자에 뛰어들어 다시 서재로 사라졌다. 홈즈를 비롯한 사람들은 즉시 서재로 가서 아령에 묶인 물건과 물에 젖은 바커씨와 마주했다. 그들의 사연을 듣고 나니 벽에서 죽은 더글라스가 튀어 나왔고, 자신은 오래전부터 쫓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침입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상대방이 총에 맞자 이러한 일을 꾸미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왜 쫓기게 되었고, 죽은 사나이는 누구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선 20년 전 미국으로 거슬러 가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더글라스에게 일어난 진상을 알게 될 것이고,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곳엔 탄광촌을 배경으로 맥머도라는 젊은이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는 대자유인단 회원으로 시카코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온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스카우러단이란 살인 조직으로 악명 높은 곳과 서서히 인연을 맺게 되는데, 자신이 묵을 하숙집의 딸인 에티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를 탐내는 스카우러단 간부인 볼드윈과의 충돌을 비롯해 조직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범죄 속으로 빠져드는 그는 도저히 에티의 짝으로도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무고하게 살인하는 집단 안에서 맥머도는 점점 명성을 높여갔다. 갈수록 스카우러단의 횡포는 줄어들 줄 몰랐고, 맥머도는 조직에서 완전히 적응해 도무지 빠져나올 것 같지 않았다.

 

  더글라스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너무나 어두운 이야기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홍색 연구> 에서와 비슷한 구조로 어떤 조직의 병폐와 그 안에서의 사랑과 과거의 이야기가 2부에 자리했지만 그것을 접하는 내내 씁쓸했다. 살인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안타까웠고, 이런 침울한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했다. 분명 이 책 속의 인물들이 더글라스와 어떠한 상관이 있기에 등장했듯이 좀 더 참고 읽어나가자 했으면서도, 살인과 돈에 점철된 무뢰한들 앞에서 재미를 한껏 더할 수만은 없었다.

 

  맥머도는 다음 후계자로 지목될 정도로 조직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어갔다. 그러다 유명한 탐정 사무소에서 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버디 에드워즈란 탐정이 흘러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 소식은 스카우러단 내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맥머도를 포함한 그들은 탐정을 없애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그리고 탐정을 계획대로 끌어들여 살해하려는 찰나, 함께 갔던 조직원들은 모두 체포된다. 버디 에드워즈란 탐정이 맥머도였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범죄자인 척 꾸며 조직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의 기지로 조직의 중요인물들이 체포되고 조직은 해체되었다. 그 가운데 몇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몇 명은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맥버도는 에티와 함께 탈출해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지만 여전히 쫓기고 있었고 에티가 죽자 어느 외진 협곡에 들어가 일했다. 그곳에서 바커를 만나 영국으로 피신해 재혼했고 존 더글라스란 시골 신사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홈즈의 충고대로 존 더글라스는 남아프리카로 피신하다 강풍 속에서 갑판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다. 여전히 더글라스를 쫓는 무리가 있다는 것과 소설의 시작에 등장한 배후의 인물 모리어티 교수와의 만남을 예견한 채 끝이 났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끝난 것 같으면서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모리어티 교수와 어떠한 만남을 이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여파에 힘입어 셜록 홈즈 전집 5권을 바로 꺼내들었지만, 단편으로 채워진 작품이라 아직 모리어티 교수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2부의 이야기가 조금은 진부해 멈칫거리긴 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셜록 홈즈의 이야기를 당분간은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셜노믹스 - 세계를 강타한 인터넷 문화혁명, 트위터와 소셜미디어 에이콘 소셜미디어 시리즈 1
에릭 퀄먼 지음, inmD 옮김 / 에이콘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온라인 세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 거의 온라인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핸드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꾸면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 공간을 맘껏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종종 현실세계와 온라인 세계가 헷갈릴 정도로 감각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소셜미디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퀄먼은 그런 변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재미나게 풀어냈다. 미디어를 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에게 미로 같은 소셜네트워크 속을 편안하게 누비게 해 줄 것이다.

 

  책의 시작은 인터넷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사람들의 습관과 의식이 바뀐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온라인 세계에 퍼져있는 훌륭한 무료 컨텐츠로 정보 검색이 빨라지고, 광고 효과는 물론 선거 운동까지 할 수 있는 변화가 느껴졌다. 핸드폰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거나 짧은 글로 웹에서 대화와 정보 교류가 이루어짐으로 다양한 컨텐츠가 형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타인과 나눌 때 사용하는 도구'가 소셜미디어라고 말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기존의 비즈니스가 타파되고, 출판물과 뉴스를 더 이상 찾아보지 않고 찾아오게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선 온라인 세계에서의 변화를 감지해야 한다.

 

  온라인에서는 네티즌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치를 감안하면서 개방에 대해서 과감해야 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보면서 소셜미디어를 절대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네티즌들은 유권자로, 고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정보망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에게 자신을 공개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도구로 소셜미디어를 이용했기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미디어가 꼭 편리함과 이득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의 복잡하고 거창한 것들을 온라인이 흡수하다 보니 그에 상응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책은 '사회경제적인 측면, 특히 마케팅과 비지니스 측면에서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그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다. 오프라인에서 소통되던 음악이나 동영상, 게임 등이 온라인으로 옮겨오면서 발생되는 변화와 문제를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사례들. 좀 더 광활한 세계에서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음에도 예전 방식을 고수하며 진취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었다. 소셜미디어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과 대응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이런 예시로만도 충분했다. 동떨어진 세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이동이 이뤄지고 보다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마케팅과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쪽박을 차기 쉬웠다. 반면 잘만 따라간다면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칠 수 있는 곳도 바로 온라인 세계였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지켜보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우리도 그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었고, 내가 알지 못한 또 다른 공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넘어 분과 초를 다투는 정보 안에서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소셜미디어 세상이 어떤 곳이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려 주어서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괜히 나만 고립되어 있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흐름을 읽고 많은 사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가고 있다는 것과 삶의 깊숙이 소셜미디어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조건 어떠한 사례를 나열하고,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고 읊어대는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가능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도 알려주고 있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플롯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넣으라는 말부터,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이미 앞서서 신물 나게 들어온 터였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한 세계이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크게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많은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왔는데 그만큼 빠져 나간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의 이야기이기에 흘려버렸을 수도 있으나 책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을 감지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드러났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흥미롭게 책을 대했고, 소셜미디어 속에서 앞으로 나가가야 할 방향과 현재의 흐름만을 감지한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은 나의 온라인 세계를 이 책을 통해 현실로 많이 끌어 올리게 되었다.

 

  나는 완연한 소셜미디어 세대는 아니다. 그렇기에 소셜미디어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 이전의 세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소셜미디어를 대해온 세대와 지금 그런 세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라오는 세대들에겐 앞으로 인터넷으로 뻗어가는 세계가 얼마나 방대해 질지 알 수 없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소셜미디어를 접하게 될 것이고, 더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갈 것이다. 지금 행해지는 흐름을 인식하고 간파한다면, 이 안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세대들에게도 제외되는 견해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과 온라인 세계를 구별하면서 공존의 영역을 넓혀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긍정적인 세계가 펼쳐질 거라 확신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언자의 집에서 범우문고 184
토마스 만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토마스 만의 단편집을 읽었음에도 범우문고본을 구입하게 된 것은 접하지 못한 단편 때문이었다. 다른 판본과 번역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겸 읽기 시작했는데, 정독한 탓인지 얇은 책이었음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다른 출판사 책에 실린 똑같은 단편을 바로 읽어 보았다. <예언자의 집에서>를 읽는 내내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아 느낌을 알고 싶었다. 내게 온 책은 2003년에 발행된 개정판이었는데도 어휘들이 걸리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세 권의 토마스 만 단편집을 꺼내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조금은 귀찮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여서 그런지 여러 판본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에서 읽은 단편을 빼고도 <예언자의 집에서> <신동> <철도 사고>는 낯선 단편이었다. 그 단편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어 구입했음에도 처음 실린 <작은 프리데만 씨>를 읽으니 옛 추억에 떠올랐다. 민음사 책으로 읽으면서도 인상에 남았던 단편이었는데, 다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어 새로웠다. 분명 이런 결말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우울해서 좋아하지 않는데, 토마스 만의 작품에서는 결말이 비극적이어도 우울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폰 린링엔 부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름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프리데만 씨는 그녀를 사랑한 대가로 죽음을 선택했다.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의 일상과 삶은 그녀의 등장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그런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읽은 내용은 복선이 되어 점진적으로 향해가는 흐름을 만끽시켜 주었다.

 

  <행복에의 의지>는 읽은 단편이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몸이 약한 파올로가 사랑하는 연인과 오랫동안 행복을 이어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느껴졌다. 아니다 다를까 5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연인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들은 결혼을 하지만 결혼식을 치르고 파올로는 죽는다. 파올로의 친구인 화자는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죽음을 정복해 온 것은 오로지 의지의-행복에의 의지가 아니었던가. 그 행복이 충족되었을 때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독자인 나도 화자처럼 그의 죽음을 수긍하고,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밀려왔다. 사랑과 죽음이란 주제가 중복되는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토마스 만의 단편을 읽는다는 느낌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예언자의 집에서>를 가장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접하지 않은 단편 중에서도 제목으로 올라와 있어 어떤 내용인지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두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몽롱함 속으로 밀어 넣는 흐름 때문에 조금씩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다니엘의 선언서'의 낭독이 중심이 된 에피소드는 예언자의 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끝을 맺고 있었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에 기대감을 가져 오히려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신동>에서는 비비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독주회가 주된 사건이었다. 소년의 천재성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면서도, 연주회장 안에서 각자 갖고 있는 생각들이 드러난 소설이었다. 소년의 내면보다 소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드러났고, 소년의 모습에 감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철도 사고>에서는 무슨 이야기라도 하라는 질문으로 여행 중에 일어난 사고를 들려주고 있었다. 일등칸에서 일어났던 기이한 일들과 사고 후의 혼란스러움, 잃어버린 가방에 대한 얘기였다. 이야기의 시작처럼 체험담을 듣는 것 같아 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고본으로 엮어서인지 부족한 것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았고, 문고본의 특징상 완역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다섯 편의 단편은 제 색깔을 내고 있어 묘한 연결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세세한 소설을 읽다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며, 생생한 체험담은 피부로 느껴졌다. 그 이야기에 빠져 현실의 세계는 잠시 제쳐둘 정도였다. 또 다른 판본으로 토마스 만의 단편들을 만날 테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이 되고 이렇게 비교할 수 있으므로 부족한 것은 살짝 덮어두기로 했다. 앞으로도 토마스 만과의 만남을 쭉 이어가고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 진다.

 

 

오탈자

 

 

55쪽

만약 여러분 가운데뜰에 나가 -> 가운데 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