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집에서 범우문고 184
토마스 만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토마스 만의 단편집을 읽었음에도 범우문고본을 구입하게 된 것은 접하지 못한 단편 때문이었다. 다른 판본과 번역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겸 읽기 시작했는데, 정독한 탓인지 얇은 책이었음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다른 출판사 책에 실린 똑같은 단편을 바로 읽어 보았다. <예언자의 집에서>를 읽는 내내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아 느낌을 알고 싶었다. 내게 온 책은 2003년에 발행된 개정판이었는데도 어휘들이 걸리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세 권의 토마스 만 단편집을 꺼내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조금은 귀찮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여서 그런지 여러 판본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에서 읽은 단편을 빼고도 <예언자의 집에서> <신동> <철도 사고>는 낯선 단편이었다. 그 단편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어 구입했음에도 처음 실린 <작은 프리데만 씨>를 읽으니 옛 추억에 떠올랐다. 민음사 책으로 읽으면서도 인상에 남았던 단편이었는데, 다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어 새로웠다. 분명 이런 결말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우울해서 좋아하지 않는데, 토마스 만의 작품에서는 결말이 비극적이어도 우울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폰 린링엔 부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름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프리데만 씨는 그녀를 사랑한 대가로 죽음을 선택했다.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의 일상과 삶은 그녀의 등장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그런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읽은 내용은 복선이 되어 점진적으로 향해가는 흐름을 만끽시켜 주었다.

 

  <행복에의 의지>는 읽은 단편이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몸이 약한 파올로가 사랑하는 연인과 오랫동안 행복을 이어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느껴졌다. 아니다 다를까 5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연인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들은 결혼을 하지만 결혼식을 치르고 파올로는 죽는다. 파올로의 친구인 화자는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죽음을 정복해 온 것은 오로지 의지의-행복에의 의지가 아니었던가. 그 행복이 충족되었을 때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독자인 나도 화자처럼 그의 죽음을 수긍하고,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밀려왔다. 사랑과 죽음이란 주제가 중복되는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토마스 만의 단편을 읽는다는 느낌을 잊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예언자의 집에서>를 가장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접하지 않은 단편 중에서도 제목으로 올라와 있어 어떤 내용인지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두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몽롱함 속으로 밀어 넣는 흐름 때문에 조금씩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다니엘의 선언서'의 낭독이 중심이 된 에피소드는 예언자의 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끝을 맺고 있었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에 기대감을 가져 오히려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신동>에서는 비비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독주회가 주된 사건이었다. 소년의 천재성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면서도, 연주회장 안에서 각자 갖고 있는 생각들이 드러난 소설이었다. 소년의 내면보다 소년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드러났고, 소년의 모습에 감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철도 사고>에서는 무슨 이야기라도 하라는 질문으로 여행 중에 일어난 사고를 들려주고 있었다. 일등칸에서 일어났던 기이한 일들과 사고 후의 혼란스러움, 잃어버린 가방에 대한 얘기였다. 이야기의 시작처럼 체험담을 듣는 것 같아 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고본으로 엮어서인지 부족한 것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았고, 문고본의 특징상 완역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다섯 편의 단편은 제 색깔을 내고 있어 묘한 연결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세세한 소설을 읽다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며, 생생한 체험담은 피부로 느껴졌다. 그 이야기에 빠져 현실의 세계는 잠시 제쳐둘 정도였다. 또 다른 판본으로 토마스 만의 단편들을 만날 테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이 되고 이렇게 비교할 수 있으므로 부족한 것은 살짝 덮어두기로 했다. 앞으로도 토마스 만과의 만남을 쭉 이어가고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 진다.

 

 

오탈자

 

 

55쪽

만약 여러분 가운데뜰에 나가 -> 가운데 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