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6
마크 트웨인 지음, 강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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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재미난 책을 읽고 싶은 생각뿐이다. 맛있는 간식거리를 갖다 놓고 현실을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을 읽으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 보통 이런 겨울에는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장편이나, 모험과 탐험에 관한 책을 주로 고르게 된다. 이때 내 손에 잡힌 책은『톰 소여의 모험』이었다. 그동안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 만나보았을 뿐 이 작품을 못 읽은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되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장을 쉼 없이 넘겨댔다.


톰을 보고 있노라면 ‘방학’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방학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놀기 바빴는데, 그때의 나를 추억하게 된다. 톰처럼 모험을 계획하거나, 리더가 되어 이끌진 않았어도 그렇게 놀다 말썽을 부릴 때도 많았다. 혼날까봐 전전긍긍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어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특히 톰 소여도 그랬는데, 자기 또래의 아이들 앞에서 으스대거나 사람들 앞에서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좋아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면 받는 스티커로 단상에 나가기, 담장에 페인트 칠하기, 법정에서 증언하기 등등 상황은 각각 다를지라도 톰 소여의 으스대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톰 소여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았다. 물물교환을 해서 스티커를 교환하거나, 친구들을 꼬드겨 담장 칠하는 일을 시키고, 영웅이 되고 싶어 변호사에게 고백을 하는 등(양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꾀도 많고 리더십도 있는 아이였다. 전형적인 개구쟁이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막상 우리가 해보지 못한 말썽을 부려주어 약간의 대리만족도 있었다. 이모의 속을 많이 썩이고 동네에서는 평판이 안 좋을지라도 톰 소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오늘은 이 녀석이 무슨 일을 벌려 줄까, 어떤 꿍꿍이가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 톰은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줬고, 거기다 연애며 모험이며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있으면 으스대기로 관심을 일으켰고, 밀고 당기기까지 할 정도로 새침하면서도 능글맞았다. 그런 톰에게는 항상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인디언 조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크와 함께 묘지에 갔다가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했는데, 인디언 조는 그 사건을 동네의 부랑아 머프 포터에게 뒤집어 씌웠다. 아무도 인디언 조의 발언을 의심하지 않던 차에 포터씨가 불쌍하기도 하고, 양심에 걸리기도 해서 톰 소여는 재판 전날 변호사를 찾아가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그 사건으로 톰은 마을에서 영웅이 되었지만 인디언 조가 재판장에서 도망치는 바람에 밤마다 복수를 당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허크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시 인디언 조와 만나게 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꿈꾸게 된다. 늘 도망만 치던 인디언 조는 톰 소여와 베키의 실종으로 의외의 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의 보물은 톰 소여와 허크의 차지가 된다. 그들에게 큰 돈이 생겼을 때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한 가운데 저자는 재치있게 적절한 선에서 소설을 끝낸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도 그들이 성장한 모습으로가 아니라 현재의 그런 말썽쟁이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의 경험과 친구의 모습을 모델 삼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톰과 저자의 모습이 교차되어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면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배경을 알려주는 내용들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의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검둥이’란 표현, 노예와 함께 밥을 먹고, 검둥이 피와 백인 피가 반반 섞인 인디언 조를 표현한 것 등이 소설의 표면에 깔려 있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들에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면이 드러나 저자의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너무 얽매이다 보면 재미를 놓칠 수 있으므로 저자가 이끄는 대로 당시의 톰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시시피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책인 이 작품을 통해 저자의 명성을 느끼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를 찾아보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따뜻한 방안에서 톰과의 만남을 자처한다면 이 겨울이 조금은 훈훈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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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6
마크 트웨인 지음, 강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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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처럼 추운 날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재미난 책을 읽고 싶은 생각뿐이다. 맛있는 간식거리를 갖다 놓고 현실을 잊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을 읽으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 보통 이런 겨울에는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장편이나, 모험과 탐험에 관한 책을 주로 고르게 된다. 이때 내 손에 잡힌 책은『톰 소여의 모험』이었다. 그동안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 만나보았을 뿐 이 작품을 못 읽은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되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장을 쉼 없이 넘겨댔다.

톰을 보고 있노라면 ‘방학’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시골에서 자란 나도 방학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놀기 바빴는데, 그때의 나를 추억하게 된다. 톰처럼 모험을 계획하거나, 리더가 되어 이끌진 않았어도 그렇게 놀다 말썽을 부릴 때도 많았다. 혼날까봐 전전긍긍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어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특히 톰 소여도 그랬는데, 자기 또래의 아이들 앞에서 으스대거나 사람들 앞에서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좋아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면 받는 스티커로 단상에 나가기, 담장에 페인트 칠하기, 법정에서 증언하기 등등 상황은 각각 다를지라도 톰 소여의 으스대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톰 소여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았다. 물물교환을 해서 스티커를 교환하거나, 친구들을 꼬드겨 담장 칠하는 일을 시키고, 영웅이 되고 싶어 변호사에게 고백을 하는 등(양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꾀도 많고 리더십도 있는 아이였다. 전형적인 개구쟁이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막상 우리가 해보지 못한 말썽을 부려주어 약간의 대리만족도 있었다. 이모의 속을 많이 썩이고 동네에서는 평판이 안 좋을지라도 톰 소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오늘은 이 녀석이 무슨 일을 벌려 줄까, 어떤 꿍꿍이가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 톰은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줬고, 거기다 연애며 모험이며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가 있으면 으스대기로 관심을 일으켰고, 밀고 당기기까지 할 정도로 새침하면서도 능글맞았다. 그런 톰에게는 항상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인디언 조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크와 함께 묘지에 갔다가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했는데, 인디언 조는 그 사건을 동네의 부랑아 머프 포터에게 뒤집어 씌웠다. 아무도 인디언 조의 발언을 의심하지 않던 차에 포터씨가 불쌍하기도 하고, 양심에 걸리기도 해서 톰 소여는 재판 전날 변호사를 찾아가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그 사건으로 톰은 마을에서 영웅이 되었지만 인디언 조가 재판장에서 도망치는 바람에 밤마다 복수를 당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허크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시 인디언 조와 만나게 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꿈꾸게 된다. 늘 도망만 치던 인디언 조는 톰 소여와 베키의 실종으로 의외의 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의 보물은 톰 소여와 허크의 차지가 된다. 그들에게 큰 돈이 생겼을 때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한 가운데 저자는 재치있게 적절한 선에서 소설을 끝낸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도 그들이 성장한 모습으로가 아니라 현재의 그런 말썽쟁이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의 경험과 친구의 모습을 모델 삼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톰과 저자의 모습이 교차되어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면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배경을 알려주는 내용들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의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검둥이’란 표현, 노예와 함께 밥을 먹고, 검둥이 피와 백인 피가 반반 섞인 인디언 조를 표현한 것 등이 소설의 표면에 깔려 있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들에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면이 드러나 저자의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너무 얽매이다 보면 재미를 놓칠 수 있으므로 저자가 이끄는 대로 당시의 톰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시시피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책인 이 작품을 통해 저자의 명성을 느끼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를 찾아보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따뜻한 방안에서 톰과의 만남을 자처한다면 이 겨울이 조금은 훈훈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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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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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지켜볼 때 나는 어디쯤을,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곤 한다. 내 자신이 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갈 때는 모든 것의 중심이 나의 시선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이 세상에 어떠한 점(點)도 남기지 않음에 허무해질 때가 있다. 아무런 존재가 되지 못함을 느낄 때처럼 내 자신이 작아 보일 때가 없다. 하지만 그런 작아짐이 어떠한 영향 때문이라면 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자신의 선택이 역사의 흐름 때문에 전혀 다른 효과를 만들어 냈다면, 어느 정도라도 위안을 삼으며 안타까워 할 수 있는 것일까? 『울분』은 나에게 이런 고민들을 던져주었다. 역사의 흐름을 개인이 어떻게 떠안게 되는 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과거를 회상할 때,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 거란 후회를 하게 된다. 『울분』은 우리가 자주 하는 그런 후회처럼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서 주인공 마커스가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커스가 그 모든 것을 회상하다 분노를 터트리고, 환희를 맛보는 시점은 독자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중간 중간 복선이 깔려 있었지만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마커스의 회상이 책 제목을 그대로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인생이 무상함, 역사의 소용돌이에 서 있는 인간의 나약함, 선택의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책을 덮고 나서도 무엇으로 이 마음을 달래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마커스가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멋진 인생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온통 지배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었다.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린 아버지는 마커스를 사사건건 보호하려 든다. 늦은 밤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가 싶으면, 세상은 위험하다고 늘 조심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쉴 새 없이 해 댄다. 사랑과 걱정이 집착이 된 아버지는 지나치게 아들을 보호하려 들어, 마커스는 집 근처의 학교에서 아주 먼 곳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법률가로써의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지만 삶은 마커스에겐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룸메이트 때문에 기숙사 방을 두 번이나 바꾸고 매력적인 올리비아에게 빠지지만 그 모든 것이 위험요소인 듯 하나하나 마커스를 옥죄어 온다. 방을 바꾼 것 때문에 면담을 하게 되고, 자살 경력이 있고 무언가 위험한 매력을 지닌 올리비아는 점점 마커스가 걸어온 길이 아닌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 초다.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었고, 이 책에도 전쟁의 어두움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의 젊은이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전쟁터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반대로 평안함을 누리고 있다는 안정감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리비아가 성적 호기심을 넘어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 그녀가 자살한 경험이 있고 이혼한 부모를 뒀다는 것은 지금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갈 때마다 마커스가 불안해 보였는데, 그의 엄마나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나 보다. 엄마는 그녀와 헤어질 것을 강요하고, 친구들도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어떠한 사건 이후로 학교에서 모습을 감춰 버린 올리비아를 보며 힘은 들더라도 다시 자신의 길을 갈 거라 생각했던 마커스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운명의 짓궂음과 마주하게 된다. '채플을 견디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었다면' 마커스는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채플을 듣지 않았고, 학장 앞에서 격정적인 말을 뱉어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최후의 곳으로 가게 된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마커스로 인해 처절히 보여준 셈이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회상하는 시점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마커스의 모습은 언제든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선택과 역사의 흐름 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을 속속들이 경험했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소설의 배경이 1950년대 초라고 해도, 현재의 우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아님에 저자의 위력을 느낀다. 철저히 '필립 로스 식'으로 써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펼쳐진 저자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그라지는 이 청춘 앞에 다가온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자꾸 마커스의 선택을 내가 더 후회를 하게 만드는 소설의 반전은 내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러다가도 이 달랠 길 없는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희미하게 깨닫게 해준다.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 운명의 짓궂은 장난이 밀려오더라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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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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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엉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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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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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 들어온 유일한 만화책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최초로 대여점에서 빌려 본 『꽃보다 남자』 마지막 권이 꽂혀있긴 하다. 그러나 온전한 형태로 내 책 꽂이에 자리한 책은 『신과 함께』가 유일하다. 주변에서 재밌다는 평 때문에 들인 책인데, 막상 읽으려고 펼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만화책도 정독하는 스타일이라서 읽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회피하고 있던 내게 과연 『신과 함께』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걱정과는 달리 책을 펼치자마자 한 호흡에 마지막 권까지 다 읽고 말았다. 피곤함이 몰려옴에도 무엇에 홀린 듯 새벽 2시까지 쉼 없이 읽어댔다. 역시 정독하고 말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무엇보다 눈물을 줄줄 흘러 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처음에는 흡인력 있게 펼쳐지는 저승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마흔도 안 돼 결혼도 못해 보고 술병으로 죽은 소시민 김자홍의 49일 동안 치러지는 저승재판에 마음을 홀딱 뺏겼다. 또한 저승삼차사 해원맥, 강림도령, 이덕춘과 김자홍의 변호를 맡게 될 염라국 국선 변호사 진기한의 활약이 돋보였다. 현대에 맞춰 저승차사들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하며, 지하철을 타고 저승으로 가는 것, 저승에도 국선 변호사가 있다는 것, 그 이외의 저승의 다양한 모습들이 신선했다. 『신과 함께』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김자홍을 저승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기한 변호사와 이승을 떠돌고 있는 원귀를 쫓는 저승삼차사의 이야기였다. 즉 저승과 이승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는데, 어떤 부분도 허투로 지나칠 수 없었다.

 

  저승의 이야기 속에는 이승에서 지었던 죄나 선한 일을 가지고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쳐야 했다. 진기한의 목표는 49일 안에 재판을 끝내서 이후의 재판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판의 과정을 모두 알아야했고, 소시민 김자홍을 어떤 곳에서 어떻게 통과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독특하면서도 무언가 믿음직스런 진기한을 따라 재판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분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해 오면 나타난다고 하는 삶의 파노라마가 7번의 재판 속에서 조목조목 짚어졌다. 재판의 한 과정을 거칠 때마다 김자홍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김자홍은 특별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고,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하면서도 착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 구석구석을 보며 재판을 하기 때문에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요소는 어디든지 있었다. 그럴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진기한이었다. 위기를 발판 삼아 극적인 승리로 끌어 올리는 능력과 인간미를 자극하는 매력이 그에겐 있었다.

 

  한편 이승에서는 녹색 판초를 뒤집어 쓴 원귀가 저승삼차사를 골치 아프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원귀를 잡고 보니 역시나 억울한 죽음을 당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원귀는 다름 아닌 군인이었고, 제대를 보름 앞둔 시점에서 총기 사고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승진을 앞둔 소대장이 그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살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도 땅에 묻어버려 하루 동안 살아 있다 죽음을 맞는다. 억울한 죽음 때문에, 자신만 기다리는 홀어머니 때문에 도저히 이승을 떠날 수 없는 그의 사연을 듣고 저승삼차사는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부대 앞에서 홀대를 받는 것을 본 원귀는 분노 때문에 악귀가 되고 마는데, 악귀가 된 그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주고, 어머니의 꿈속에 들어가 작별인사를 하게하고,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후임을 설득해 진실을 드러내게 하는 과정 모두에 저승삼차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원귀가 군인인 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에서 제대하지 못한 내 조카가 생각나 눈물이 흘렀다. 조카 역시 근무했던 곳이 파주였고, 조카의 죽음으로 언니와 형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 허전함과 억울함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벌써 3년 전 일이라고, 많이 편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만난 『신과 함께』속의 군인 이야기에 조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깊은 밤에 펑펑 울고 말았다. 가슴 속에 박혀 있을 조카로 인해 언니와 형부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어디선가 마주치는 군인들을 보며 분노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책을 읽은 다음 날 출근길에 본 군인을 보자 이제 내 마음 속에서도 분노가 일지 않음을 느꼈다. 조카가 그렇게 된 후 군복만 봐도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내 조카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저릿해짐과 동시에 나 또한 조카를 아픔으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저승의 김자홍은 진기한의 뛰어난 능력과 변호로 선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이 드러나면서 그는 무사히 7개의 재판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환생의 문 앞에 서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진기한과 헤어질 때 나누었던 감격의 포옹과 뜨거운 눈물이 김자홍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황량하고 두렵기만 할 것 같았던 죽음의 세계에서 변호사를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처음에는 웃겼으나 점점 드러나는 감동과 따뜻함으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진기한은 첫 변호인인 김자홍의 재판을 무사히 마쳤고, 두 번째 의뢰인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그는 바로 저승 삼차사로 인해 저승으로 무사히 들어온 원귀였고, 그가 텅 빈 정류장에서 변호사 없이 쓸쓸하게 서 있을 때 진기한이 짠 하고 나타나 주었다. 그의 운명이 자못 신경 쓰였는데, 진기한이 그를 맡는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를 더 좋은 곳으로, 이승에서의 억울함을 모두 풀어줄 곳으로 데려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미있다는 말만 믿고 무심히 들여온 만화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저승이건 이승이건 사람과 사람이 따뜻함을 잃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저승이라고 해서 마음이 차갑고 이승이라고 해서 따뜻하다는 틀에 박힌 설정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예습한 기분이다. 상상력과 재미로 덧대어진 저승 이야기에 인간미가 흘러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해 중심을 잘 잡아 준 것 같다. 오로지 삶과 죽음만을 다뤘다면 웃고 떠들다 끝나 버렸을 만화를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신과 함께』저승편에 이어 올해는 이승편, 내년에는 신화편이 연재된다고 하는데, 그 감질맛 나는 기다림을 어째야 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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