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책장에 들어온 유일한 만화책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최초로 대여점에서 빌려 본 『꽃보다 남자』 마지막 권이 꽂혀있긴 하다. 그러나 온전한 형태로 내 책 꽂이에 자리한 책은 『신과 함께』가 유일하다. 주변에서 재밌다는 평 때문에 들인 책인데, 막상 읽으려고 펼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만화책도 정독하는 스타일이라서 읽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회피하고 있던 내게 과연 『신과 함께』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걱정과는 달리 책을 펼치자마자 한 호흡에 마지막 권까지 다 읽고 말았다. 피곤함이 몰려옴에도 무엇에 홀린 듯 새벽 2시까지 쉼 없이 읽어댔다. 역시 정독하고 말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무엇보다 눈물을 줄줄 흘러 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처음에는 흡인력 있게 펼쳐지는 저승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마흔도 안 돼 결혼도 못해 보고 술병으로 죽은 소시민 김자홍의 49일 동안 치러지는 저승재판에 마음을 홀딱 뺏겼다. 또한 저승삼차사 해원맥, 강림도령, 이덕춘과 김자홍의 변호를 맡게 될 염라국 국선 변호사 진기한의 활약이 돋보였다. 현대에 맞춰 저승차사들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하며, 지하철을 타고 저승으로 가는 것, 저승에도 국선 변호사가 있다는 것, 그 이외의 저승의 다양한 모습들이 신선했다. 『신과 함께』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김자홍을 저승재판에서 무죄를 받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기한 변호사와 이승을 떠돌고 있는 원귀를 쫓는 저승삼차사의 이야기였다. 즉 저승과 이승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는데, 어떤 부분도 허투로 지나칠 수 없었다.

 

  저승의 이야기 속에는 이승에서 지었던 죄나 선한 일을 가지고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쳐야 했다. 진기한의 목표는 49일 안에 재판을 끝내서 이후의 재판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판의 과정을 모두 알아야했고, 소시민 김자홍을 어떤 곳에서 어떻게 통과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독특하면서도 무언가 믿음직스런 진기한을 따라 재판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분이 들었다. 죽음이 임박해 오면 나타난다고 하는 삶의 파노라마가 7번의 재판 속에서 조목조목 짚어졌다. 재판의 한 과정을 거칠 때마다 김자홍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김자홍은 특별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고,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하면서도 착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 구석구석을 보며 재판을 하기 때문에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요소는 어디든지 있었다. 그럴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진기한이었다. 위기를 발판 삼아 극적인 승리로 끌어 올리는 능력과 인간미를 자극하는 매력이 그에겐 있었다.

 

  한편 이승에서는 녹색 판초를 뒤집어 쓴 원귀가 저승삼차사를 골치 아프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원귀를 잡고 보니 역시나 억울한 죽음을 당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원귀는 다름 아닌 군인이었고, 제대를 보름 앞둔 시점에서 총기 사고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승진을 앞둔 소대장이 그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살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도 땅에 묻어버려 하루 동안 살아 있다 죽음을 맞는다. 억울한 죽음 때문에, 자신만 기다리는 홀어머니 때문에 도저히 이승을 떠날 수 없는 그의 사연을 듣고 저승삼차사는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부대 앞에서 홀대를 받는 것을 본 원귀는 분노 때문에 악귀가 되고 마는데, 악귀가 된 그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주고, 어머니의 꿈속에 들어가 작별인사를 하게하고,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후임을 설득해 진실을 드러내게 하는 과정 모두에 저승삼차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원귀가 군인인 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에서 제대하지 못한 내 조카가 생각나 눈물이 흘렀다. 조카 역시 근무했던 곳이 파주였고, 조카의 죽음으로 언니와 형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 허전함과 억울함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벌써 3년 전 일이라고, 많이 편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만난 『신과 함께』속의 군인 이야기에 조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깊은 밤에 펑펑 울고 말았다. 가슴 속에 박혀 있을 조카로 인해 언니와 형부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어디선가 마주치는 군인들을 보며 분노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책을 읽은 다음 날 출근길에 본 군인을 보자 이제 내 마음 속에서도 분노가 일지 않음을 느꼈다. 조카가 그렇게 된 후 군복만 봐도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내 조카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저릿해짐과 동시에 나 또한 조카를 아픔으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저승의 김자홍은 진기한의 뛰어난 능력과 변호로 선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이 드러나면서 그는 무사히 7개의 재판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환생의 문 앞에 서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진기한과 헤어질 때 나누었던 감격의 포옹과 뜨거운 눈물이 김자홍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황량하고 두렵기만 할 것 같았던 죽음의 세계에서 변호사를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처음에는 웃겼으나 점점 드러나는 감동과 따뜻함으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진기한은 첫 변호인인 김자홍의 재판을 무사히 마쳤고, 두 번째 의뢰인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그는 바로 저승 삼차사로 인해 저승으로 무사히 들어온 원귀였고, 그가 텅 빈 정류장에서 변호사 없이 쓸쓸하게 서 있을 때 진기한이 짠 하고 나타나 주었다. 그의 운명이 자못 신경 쓰였는데, 진기한이 그를 맡는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를 더 좋은 곳으로, 이승에서의 억울함을 모두 풀어줄 곳으로 데려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미있다는 말만 믿고 무심히 들여온 만화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저승이건 이승이건 사람과 사람이 따뜻함을 잃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저승이라고 해서 마음이 차갑고 이승이라고 해서 따뜻하다는 틀에 박힌 설정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예습한 기분이다. 상상력과 재미로 덧대어진 저승 이야기에 인간미가 흘러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해 중심을 잘 잡아 준 것 같다. 오로지 삶과 죽음만을 다뤘다면 웃고 떠들다 끝나 버렸을 만화를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신과 함께』저승편에 이어 올해는 이승편, 내년에는 신화편이 연재된다고 하는데, 그 감질맛 나는 기다림을 어째야 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