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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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하면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와 『아Q정전』 『광인일기』 등 대표소설이 떠오른다. 대표작품이 뚜렷해서인지 루쉰의 소설 이외의 작품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루쉰을 이해하려면  『들풀』을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처음 듣는 작품이었고 산문시집이었다. 게다가 '중국 근대문학사 최초의 산문시집'이라고 하니 그 의미에 더 주눅이 들었다. 다행히 『아Q정전』과 동시에 자오옌녠의 판화가 들어간 책이 출간 되어 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Q정전』을 다시 읽고 내친 김에  『들풀』까지 읽었는데, 깊이 있는 문장에 반하고 말았다. 분명 고전이라고 불릴 만큼 오래된 작품임에도 나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산문시집이라고 해서 어려울 거란 생각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상의 자잘함 들로 독자를 이끄는 초반의 작품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루쉰이라는 거장의 문장이라는 사실도 잊고 문학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희망>이라는 글 앞에서 멍하니 시선을 멈추게 되었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 이 문장 때문이었고, 저자의 고뇌와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별도 없고, 달도 없다. 죽은 나비도, 웃음의 아득함도, 사랑의 춤도 없다. 그런데 청년들은 아주 고요하다.'며 내면의 고통을 그대로 표현한다. 이유인즉 루쉰이 이 작품을 쓸 당시에 희망이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개인사도 그러했고 중국의 현실도 그러했는데 '내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이 허망함 속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사라진 저 슬프고 아득한 청춘을 찾으리라.'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이 절망적이었더라도, 작품 속에서 온전히 그것들을 말하고 있을지라도 저자는 끝끝내 희망을 이끌어내려 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 속에는 중국인들을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복수>라는 작품에서는 서로 칼을 겨누고 서있는 두 사람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구경하는 모습이 나온다. 절대 끼어들지 않고 구경만 하려는 행인들이었다. 왜 그렇게 겨누고 있는지 묻지도 않은 채,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행인들은 재미없다며 그 자리를 뜬다. 어쩌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중국인들의 내면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구경꾼에 지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무언가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화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총명한 사람과 바보 그리고 노예>에서는 한 노예가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불평하자 총명한 사람이 그의 삶을 바꿔주려고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하지만 노예는 오히려 그 사람이 일을 저지른다며 주인에게 고한다. 삶을 충분히 바꿀 수 있음에도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무르려는 근성을 버리지 못한 노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당시의 중국인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라고 해도, 어찌 그 대상이 중국인들만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모습에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얇은 책이고 길지 않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로 다양한 이야기 속에 방대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났는지 부끄럽기보다,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Q정전』과 마찬가지로 자오옌녠의 판화가 곁들여 있어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절망적인 내용이 많아 판화가 좀 어둡게 보일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흑백으로 이루어진 판화 속에서 글만큼이나 꿈틀대는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다. 단순히 저자의 글을 돋보이게만 하는 장치가 아니라 판화로 작품 이상의 것을 표현해 내려는 의도 속에서 형상화 된 의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저자의 개인적인 절망이든, 중국의 암울한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의학을 공부하다 의학으로는 국민정신을 계몽시킬 수 없다 생각하고 문학으로 전환한 그의 결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문학으로 중국뿐만이 아닌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니 그의 존재는 앞으로도 큰 의의로 남으리라. 루쉰을 이해하려면 『들풀』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온전히 와 닿은 느낌이다. 그의 대표작도 중요하지만 루쉰을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개인사부터 중국 현실을 드러내는 이 작품 속에서 내 곁에 좀 더 가까이 와 있는 저자를 만나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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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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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를 타고 퇴근을 할 때면 전에 살던 곳에서 혹시 내려 버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해진다. 지금 이사 온 곳이 전에 살던 곳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적응이 되지 않는 탓이다. 내가 살았던 곳은 어떤 풍경일지, 내가 향하는 집은 그대로인지 늘 조바심이 인다. 혹시 낯선 곳이 나타날까봐 나만의 공간을 빼앗겨 버릴까봐 조금 불안하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이 현실이 된 한 남자, 마틴 해리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고 교통사고를 당해 72시간의 코마 후 깨어났다고 한다. 바로 집으로 향한 그는 자신의 집에 또 다른 마틴 해리스가 살고 있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아내가 있는 현실과 맞닥뜨린다. 평범했던 식물학자 마틴 해리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택시 안에 있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72시간의 코마 후 깨어났다는 것이 의심쩍긴 했지만 그래도 그에겐 모든 기억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현재 식물학자로써 연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되돌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마틴 해리스를 고소하기도 하고,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자신과 같이 연구했던 학자에게 누가 진정한 마틴 해리스인지를 가려내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발버둥 치면 칠수록 자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더 알아갈 뿐이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자신을 증명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는 이런 현실에 개탄할 뿐이었다.

 

  마틴 해리스(아직까지 그렇게 믿고 있는)는 자신을 잃어 버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아는데,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해 줄 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기로에 놓여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숨어버리거나, 삶을 포기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틴 해리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까지 파헤쳐 보기로 했다. 절망감은 들었지만 내면에 깃든 기억과 그 동안의 삶을 이대로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증명해 줄 단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자신을 태우고 가던 택시 기사.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지만 처음엔 탐탁지 않아 하다 마틴 해리스의 절박함을 보고 돕기로 한다.

 

  단 하나 남은 도움마저 위협해 오는 손길. 그 손길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슨 이유로 자신을 그렇게 해하려 하는 것일까. 마틴 해리스에게 남아 있는 거라곤 기억이 전부인데.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을 모른다고 주장했던 아내가 며칠만 더 기다리면 이 모든 것이 밝혀질 거라는 의문스러운 말을 건네기도 한다. 아내의 행동으로 더욱 더 혼란스러운 가운데 예기치 않은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쳐온다.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마틴 해리스가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려 미국에 있던 자신의 조수가 직접 파리까지 날아와 주기로 한 것이다. 마틴 해리스만큼이나 조수가 그를 증명하고, 그 동안의 일을 파헤쳐 줄 거라 생각하자 흥분이 고조되었다. 책장을 펼칠 때부터 흡인력 있게 다가왔던 소설이 더 속도감을 낸 기분이었다. 지금껏 마틴 해리스를 좇아왔던 과정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일었다.

 

  드디어 조수가 파리에 도착하고, 마틴 해리스는 그를 따라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전말이 밝혀지는데, 마틴 해리스는 물론이고 독자도 상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마틴 해리스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을까? 자신 안에 뚜렷이 자리하고 있는 모든 기억들을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을지 잃어버릴지는 이 책을 접할 독자들의 손에 맡기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속도감 있는 소설을 만났다. 이렇게 속도감 있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칫 흥미위주로만 빠져 버릴 수 있는데, 마틴 해리스를 통해 내 자신이 누구인가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내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런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면 지금껏 살아온 내 자신을 지킬 의향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끊임없이 생각해 왔는데, 나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절망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럴 때일수록 지금껏 살아온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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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책이야! - 2024 개정 초등 1-2 국어 국정교과서 수록 도서
레인 스미스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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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방법으로, 온 집안에 책을 뿌려 놓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발에 책이 걸리면 "이게 뭐지?"하고 들여다본다고 한다. 그리고 큰 애가 책을 자주 보면 자연스레 동생들도 책을 보게 된다고 하는데, 언니네 에서 현장으로 느껴서인지 어느 정도 신뢰감이 가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그래, 책이야!』에 나오는 동키가 그런 예를 들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보고 있는 몽키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뭐냐고 묻더니, 요즘에 사용하는 온갖 소셜네트워크를 쭉 나열한다. 몽키는 '이건 책이야'라고 말하고 보라며 건네주는데, 그럼에도 동키는 반신반의한다. 글씨가 많다며 이모티콘으로 간단하게 정리를 하는가 하면, 책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비밀번호 같은 게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몽키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동키에게 "책이라니까"라고 강하게 말한다.

 

  그러다 동키는 몽키가 보고 있던 책을 보게 되는데, 시간이 흘러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보다 못한 몽키가 자기 책을 돌려달라고 하자 동키는 싫다고 한다. 온갖 질문을 퍼부어대다가 자기가 보던 책을 읽는 동키를 바라보다 몽키는 도서관에 간다며 나서자 동키는 다 보면 충전해 놓는다고 한다. 그때 동키의 모자 속에서 마우스가 튀어나와 그럴 필요 없다며, 이건 책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준다.

 

  책을 보고 있는 몽키, 동키의 수많은 질문에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 주는 몽키, 책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몽키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책을 읽을 때 누군가가 방해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겨우 인상 한 번 찡그리고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게 전부다. 오히려 스크롤이 되냐, 블로그를 하냐, 게임을 할 수 있냐, 메일, 트위터, 와이파이 같은 것을 할 수 있냐고 물어대는 동키에게 책이 어떤 것인지를 강조할 뿐이다. 책이 어떤 것인가를 장황하세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실수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닐까.) 질문을 다 받아주며 책을 직접 읽는 모습과 책에 무엇이 쓰였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동키와 몽키를 보고 있으면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동키는 온라인에 푹 빠져있는 요즘 아이들 같고, 몽키는 그런 아이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부모 같은 모습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사람은 부모인데, 그런 부모에게 몽키 같은 모습을 배울 수 있다면(선급하게 어떤 의미에 대해서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책이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과정을 유도하고 있다. 몽키가 동키에게 책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과정에 인내가 요구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 할 때 그만한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키가 나의 자녀라고 혹은 무언가를 알아가려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몽키처럼 직접 보여준다면,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알아가는 데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 사실을 알려준 동키와 몽키가 참 귀여우면서도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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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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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5년 전 『아Q정전』을 통해 루쉰을 처음 만났다. 좋아하는 작품이나, 읽어도 미심쩍은 작품들은 출판사별로 읽으며 비교해 본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아Q정전』이 새롭게 나왔다고 하기에 얼른 읽어 보았다. 단행본에다 중국을 대표하는 판화가 자오옌녠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라 읽은 작품임에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아Q란 인물에 대해 제대로 전해주고 있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Q에 대해 새롭게 정립한 기분이다. 소시민의 대표 격인 아Q를 생생히 보아서인지 그가 못 견디게 애달프고 애달팠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욕망과 좌절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자오예녠의 판화는 그런 아Q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자칫 흑백 판화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판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큐가 처해있는 상황 묘사라든가 내면의 변화들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아Q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얻어맞고, 억울함을 당하는 모습들이 드러나 있는데, 덕분에 아Q란 인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5년 전 텍스트로만 『아Q정전』을 읽었을 때는 변발머리의 보잘것없는 아Q만을 떠올렸는데, 판화로 인해 그런 아Q를 마치 주변의 인물처럼 가깝게 맞이했다. 그래서 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아Q가 더 짠했는지도 모르겠다.

 

  성(姓)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Q는 그냥 날품팔이 아Q로 불렸다. 부스럼 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얻어맞은 것으로 체면이 서는가 하면, 여자 하인에게 치근댔다가 온갖 모욕을 당한다. '반역'이라는 말까지 듣는 아Q는 당시의 중국사회가 어땠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루쉰은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사회를 배경으로 아Q란 인물을 그려내고 있는데, 당시에 혁명에 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Q는 여자 하인을 추문한 이유로 급기야 날품팔이마저 잃게 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먹을 것을 구하러 성안에 들어간 아Q는 그 곳의 소식들과 함께 물건들을 가지고 왔는데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게 된다. 아Q의 급변한 처지는 스스로를 으스대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대우에 독자인 나조차도 진실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Q는 그 순간들을 실컷 누리고 있었는데, 혁명당의 소식이 들려온다.

 

  혁명의 맛을 본 아Q는 당에 가입만 하면 새로운 세계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혁명당에 가입되는 것조차 거부당했고, 오히려 도둑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게 된다. 아Q가 결코 타인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의 행동거지로 알 수 있다. 비겁하기도 했고, 욕망에 휘둘리기도 했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대우해주면 기분이 좋아 선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휩쓸러 가려고 했다. 그럼에도 아Q는 피해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무기력한 날품팔이 아Q로만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가 석연치 않은 느낌. 그것은 저자가 아Q를 통해 중국인들의 현실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풍자에 가까운 아Q의 삶을 통해 혁명의 시기에 펜으로 변화를 꾀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의 의도가 이미 낱낱이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아Q란 인물을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아Q의 모습 안에 나의 모습이 없다고도 볼 수 없고, 앞으로 우리의 모습이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기에 『아Q정전』이 가지는 의의는 실로 넓고 방대하다. 과거에 쓰인 소설이지만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아Q정전』을 통해서 우리의 현실인식은 물론이고, 우리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과오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나아간다면 희망찬 미래를 꿈 꿔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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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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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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