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주사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4
마크 앨퍼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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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을 다닐 때 불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뭘 할까 늘 고민하면서 즐겁게 보내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주부가 된 이후로 불금이란 단어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미혼일 때의 불금을 떠올려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나마 칼퇴근을 해서 직장동료들과 껍데기에 사이다를 먹으러 가서 늦게까지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게 남다르게 보내는 금요일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끔이었고 나의 불금은 대체로 퇴근하자마자 밥만 먹고 누워 뒹굴 거리는 거였다. 홀로 자취하던 시절,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기에 내 뒹굴거림의 친구는 늘 책이었다. 금요일 저녁만큼은 한주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속도감 있는 재밌는 책을 읽는 것. 그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금요일의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두툼한 책도 순식간에 읽어버릴 수 있는 속도감. 그런 책을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책장을 넘기기 바빠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배고픔과 졸음도 이긴 채 마주하고 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일단은 철저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 현실을 도피할 수 있었고 그런 재미에 빠지다보니 스스로도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밀려드는 현실감에 허탈할 때도 있지만 그런 공간이동(책을 통한 공간이동이지만)야 말로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인 셈이다.

 

  『신의 주사위』도 금요일에 읽기 좋은 속도감과 재미를 가져다 준 책이었다. 두툼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결말이 궁금해서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인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는 20년 전 스승이었던 물리학과 교수 클라인만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클라인만 교수는 데이비드에게 열쇠라며 일련의 숫자를 알려주고 숨을 거둔다. 그 열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데이비드는 FBI에게 체포되고,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의 숨겨진 비밀을 캐려는 사이먼에게도 쫓긴다. 그 사이에서 스승이 알려준 비밀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데이비드의 숨 막히는 추적이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이 세 명의 수제자에게만 남긴 비밀은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FBI와 사이먼이 데이비드를 쫓는 목적은 같으나 사이먼의 배후의 인물은 이 책의 최고의 반전 인물로 다가온다.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이 시종일관 흥미롭게 펼쳐진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OCN 채널을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데 꼭 그 채널 속에서 방영할 법한 이야기였다. 물리학과 연관된 소설이라 자칫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 흐름을 읽는데 문제가 없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고 아인슈타인이 지키려 했던 비밀이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독자에게 궁금증을 자극시켰으며 쫒기는 자와 쫒는 자가 삼박자를 이루어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반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듯이 조금은 빤한 흐름이 이어진 게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다. 결말에서 그나마 독자의 예상을 깨고 온전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게 한 점, 새 출발을 하게 된 점들이 중심을 지켜주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중반부가 넘도록 통일장이론에 숨겨진 비밀의 언급이 별로 없이 쫓고 쫒기는 것만 반복해서 조금 부진한 감도 있긴 했지만 이런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물리학에 관련 된 책을 들춰나 봤을까 싶다. 관심이 있어 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몇 권 구비해 놨지만 통 책장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소설을 통해서 완전히 이해는 안가더라도 과학에 관한 호기심도 조금은 생겨났다. 기회가 된다면 쉬운 과학책부터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 스릴러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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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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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길을 가다 냄새나는 쓰레기라도 볼 때면 온갖 불평을 다 토로한다. 내 손으로 치워본다는 생각은커녕 그곳을 벗어나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 비방하기는 쉬운데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관대한 게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광경은 어떨까. 한때는 황폐했지만 지금은 나무들로 인해 풍요로워진 땅. 그 땅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곳이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기억할까? 그곳에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그 땅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진 않을까?

 

 

  스스로 변화를 꾸리기보다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일이 더 쉽다. 더군다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더 빠르다. 이기적이기 쉽고 타인의 행복보다 내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 그런 편견을 철저히 깨뜨려 주는 사람이 있다. 평야지대에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았던 엘제아르 부피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뜨자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던 사람.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31쪽)

 

 

  황폐한 땅에 아름다운 숲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는 한마디였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고,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없었기에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는 말. 그 말이 가슴 속에 이내 파묻혔다. 나는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며 살기에 아주 사사로운 일들조차 미루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원인을 알면서도 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몇 십년을 살아온 걸까? 한 사람의 결심 앞에서 일어나는 뻔한 반성이 아닌 분명 나에게도 숲을 형성할 정도의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데서 오는 의문이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70쪽)

 

 

  결심으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이 되고 결과가 드러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한 사람의 노력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의 위대한 아름다움.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만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지만 마음 깊이 일렁이는 자랑스러움도 있었다. 이 책 내용을 동영상으로도 본 적이 있는데 황무지의 그 황량함과 사나워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런 황무지가 숲이 되자 사람들도 달라졌다. 밝고 건강해졌고 숲에서 치유 받는 듯 했다. 그곳을 아름답게 만든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의 일상에 쪼들리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어떤 모습의 축적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참 무색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5분만 투자해서 매일 꾸준히 한다면 3년, 5년 후에 뭔가가 드러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만다. 무언가 실천한다는 것은 포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고 늘 익숙해져 있는 생각과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숲으로 만든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명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희생이 있어서 고마워한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이 있을까? 뜬금없는 생각일지는 몰라도 잠든 아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너로 인해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희망을 품게 된다고. 다음에 딸아이가 고맙다고 말해준다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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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립니다... 속 깊은 그림책 2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즈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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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기다리는 것에 굉장히 느긋했었다. 특히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거나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기다려야 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느긋하게 기다림을 견뎠다. 가방 속에 늘 들어있는 책 때문이었다.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책을 꺼내들었고 그 책들을 읽고 있으면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고 내 순서가 돌아와 볼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다림에 대해 조바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스불에 무언가 얹어 있으면 안절부절 못해 앞에서 기다리다 꺼야 안심이 되었고, 남편과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엘리베이터를 먼저 부르러 나가고 조금만 남편이 늦게 오면 재촉하거나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내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조급증과 참을성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이 책속의 기다림을 보면서 근래의 나의 해동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무언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걸까? 내 의지대로 사람이나 시간이 움직여 준다고 해도 나에게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말이다. 그런 조급증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보다 내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릴 때면 헐레벌떡 뛰어와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며, 책을 읽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핸드폰으로 닦달하고 불평을 내지른다. 배려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현상은 나도 상대방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나에게도 분명 좋은 기다림이 있었다. 책에서처럼 빨간색의 무언가를 떠올리며 기다린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길 기다렸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길,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어서 빨리 봄이 오길 기다렸던 순간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결혼식을 기다리게 되었고, 아이가 생기자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아이가 7주나 빨리 태어났을 땐 어서 건강해져서 내 품에 안아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다. 건강하게 크는 아이를 보면서 기다림은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낼 때에 지루할 틈과 조바심 없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뒤집고, 기고, 앉고, 잡고 일어서려는 과정을 보면서 기다림에 대가가 이렇게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빨간 실에 빗대어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되새겨 보았다. 아마 ‘아이들이 자라기를’ 이 단계쯤 와 있는 것 같은데 그 뒤에 이어지는 아이들이 크고 배우자를 보내고 또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단계를 차근차근 거쳐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것에 순응하며 산다고 해도 남들과 같은 인생도 없고 무난하고 평범한 삶도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들이 특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가 이어갈 ‘빨간 실’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훗날 내가 노인이 되어 내 삶을 되돌아 봤을 때 발자취를 연결 지어 되돌아 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큰 위기없이 무난히 이어갈 수 있다면 그럭저럭 잘 산 인생이라고 되뇔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불평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4년째의 인생을 돌아보면 시간이 정말 빨랐음을 실감하기에 미래에 안착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보다 현재를 돌보기에 더 빠듯하기 때문이다. 인생엔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살아볼만 하며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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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문학동네 동시집 18
정연철 지음, 이우창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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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갈까? 아마 이기적인 마음을 가득 담은 채 나보다 낮은 곳보다 높을 곳을 보며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을 것이다.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 스스로 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면 재빨리 내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지만 분명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며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행복을 주기도 하는 곳인데 왜 자꾸 이렇게 편협한 생각만 가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안타깝다는 듯 순식간에 녹여버린 책이 있다. 거창한 고전문학도 아니고 메시지를 가득 담은 자기 계발서나 삶을 돌아보는 인문학 책도 아니다. 바로 동시집이다. 한참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할 때는 이런 동시집에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었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어대며 동시라면 초등학교 때 읽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고 하자 이런 동시집도 조금씩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동시집에서 너무나 가슴 찡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나 버렸다.

 

애기 할머니

 

할머닌 나하고 똑같아요 / 입속에 사탕 두 개나 넣고서 / 또 내 사탕을 탐내요 / 한 해 지나니 내 동생이 되었어요 / 기저귀 차고 칭얼대기도 잘해요 / 아빤 그래도 / 아이고, 우리 어무이 똥 싸싰네 / 똥도 우찌 요리 애뿌노, 해요 / 그러다가 할머닌 진짜 애기가 되었어요 / 얼마 뒤엔 엄마 배 속으로 들어가고 / 그다음엔 별이 된대요 / 난 할머니가 별이 되는 게 싫어요 / 할머닌 날마다 날 업어 키웠는데 / 난 아직 할머닐 한 번도 업어 드리지 못했거든요 / 어부바, 하고 업을 때까진 / 기다려 줘요 / 할머니 / 꼬옥요

 

  애기가 되어 버린 할머니를 보면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아이. 그런 할머니를 지극정성 모시는 아빠. 요즘에는 흔하게 만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도 늙어가고 있는데 늙음을 부정하며 늙은 사람들을 고리타분하고 귀찮게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게 부모님이라도 그럴 때가 허다해 내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할머니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어머니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가족이 나온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의 시선에 경외감이 들 정도다.

 

좋은 시인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그늘진 곳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지닌 분이 아닐까 합니다. (중략) 또한 좋은 시인이란 그 그늘을 빛으로 바꿀 줄 아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100쪽, 해설)

 

  좋은 시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 시들은 참 좋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마음으로 시를 쓸 수 있는 저자가 좋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영상 시인은 이 시집을 향해 ‘힘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눈과 그들의 아픔을 빛으로 바꾸려는 몸짓이 숨어 있는 시집’이라고 했다. 해설로만 읽을 때는 이 말이 어렵고 먼 얘기로 들릴 수 있으나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게 된다. 이미 시집을 읽은 마음속에 빛이 환히 밝혀 있기 때문이다.

 

그늘 손

 

한여름 한낮, / 걸음도 무거운 할머니 / 횡단보도를 걸어가더니 / 헌옷 수거함 옆에 보따리 놓고 / 신문지 깔고 앉아 / 마늘을 까다가, / 땡볕에 시든 깻잎 같은 얼굴로 / 파를 다듬다가, / 머릿수건 벗어 땀을 닦을 때 // 헌옷 수거함 / 주춤주춤 그늘 손을 내밀며 /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이 시를 읽을 때만해도 길을 가다 종종 보는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휙 넘겨 버렸다. 그러다 해설을 보고 헌옷 수거함이 그늘을 만들어 할머니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마음이 툭 끊어질 듯한 안도감과 따뜻함이 밀려들었다. 할머니에게 어느 누구도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하던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헌옷 수거함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니. 해의 위치에 따라 그늘이 생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할머니의 고루함까지 덮어 주는 헌옷 수거함의 마음 씀씀이로 느껴졌다.

 

  지금껏 동시라함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주제들이 일상의 사건이나 사물을 보는 시선의 변화가 전부라고 여겼었다. 이 시집을 읽고 나니 거기에 더 나아가 ‘세상의 그늘진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도 있음을 깨달았고 그런 시선이 이렇게 뭉클하게 다가올 줄도 몰랐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세상에 맞춰서 살지 못하면 어떠랴. 끈끈한 가족이 있고 그런 가족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 시들처럼 종종 마음은 아플지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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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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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라곤 하나도 없고 연필로 그냥 쓱쓱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보니 지우개로 지우면 지워질 것 같은 생생함이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림 속의 개가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진짜 같아 내 눈앞으로 툭 튀어나올 것 같다. 길을 가다 떠돌이 개를 보면 선뜻 만지지 못하는 망설임이 이 개를 보면서도 느껴져서 마음이 찡했다. 글도 없고 색감도 없이 형태만 그려진 개의 모습인데도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혼자임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종종 외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었을까? 이 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큰 사고를 낸다. 도로에서 이 개를 피하려던 차들끼리 서로 피하면서 사고가 났고 인명피해도 났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개.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서 마음이 울컥했다.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이 개의 존재에 대해선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만약 그 사고의 원인이 이 개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람들의 분노가 엄청 났을 것 같다. 나라도 죽일 듯이 쫓아가 해코지를 했을 것이다. 그 상황들이 마음 아파 생생한 그림을 보면서 지우개로 지우고 싶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만 겪을 수 없듯이 이 개에게도 이왕이면 좋은 일들이 있었으면 싶었다.

 

  이름도 없는 떠돌이 개. 밥은 먹고 다니는 지 잠은 제대로 자는 지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곁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개에 빙의 돼 내 모습도 저럴 때가 있었다며 스스로 울적해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그냥 떠돌이 개 한 마리의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외로움 때문일까?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평생 털어 낼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그런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책의 말미에 나오는 개와 한 아이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어릴 때였다면 떠돌이 개에게 선뜻 다가갔을지 모르나 책 속의 아이처럼 개를 관찰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개를 거부하지 않을 용기가 지금은 없다. 자신에게 몸을 부대끼는 개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손은 선뜻 내밀지 못하는 아이지만 곧 그 개를 쓰다듬어 줄 것을, 밥은 먹었냐며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걸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개를 보니 어쩔 수 없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개가 생각난다. 내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의 역할까지 해주었던 개.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개. 우리 집에서 살면서 그 개는 외롭거나 쓸쓸한 적은 없었을까? 괜히 그 시절 키웠던 개까지 생각나면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처음으로 그 개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보고 싶다고. 어린 시절 통학하는 그 먼 거리를 나를 따라와 주어서 고마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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