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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글씨라곤 하나도 없고 연필로 그냥 쓱쓱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보니 지우개로 지우면 지워질 것 같은 생생함이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림 속의 개가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진짜 같아 내 눈앞으로 툭 튀어나올 것 같다. 길을 가다 떠돌이 개를 보면 선뜻 만지지 못하는 망설임이 이 개를 보면서도 느껴져서 마음이 찡했다. 글도 없고 색감도 없이 형태만 그려진 개의 모습인데도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혼자임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그리고 종종 외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었을까? 이 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큰 사고를 낸다. 도로에서 이 개를 피하려던 차들끼리 서로 피하면서 사고가 났고 인명피해도 났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개.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서 마음이 울컥했다.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이 개의 존재에 대해선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만약 그 사고의 원인이 이 개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람들의 분노가 엄청 났을 것 같다. 나라도 죽일 듯이 쫓아가 해코지를 했을 것이다. 그 상황들이 마음 아파 생생한 그림을 보면서 지우개로 지우고 싶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만 겪을 수 없듯이 이 개에게도 이왕이면 좋은 일들이 있었으면 싶었다.
이름도 없는 떠돌이 개. 밥은 먹고 다니는 지 잠은 제대로 자는 지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곁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개에 빙의 돼 내 모습도 저럴 때가 있었다며 스스로 울적해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그냥 떠돌이 개 한 마리의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외로움 때문일까?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평생 털어 낼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그런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책의 말미에 나오는 개와 한 아이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어릴 때였다면 떠돌이 개에게 선뜻 다가갔을지 모르나 책 속의 아이처럼 개를 관찰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개를 거부하지 않을 용기가 지금은 없다. 자신에게 몸을 부대끼는 개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손은 선뜻 내밀지 못하는 아이지만 곧 그 개를 쓰다듬어 줄 것을, 밥은 먹었냐며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걸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개를 보니 어쩔 수 없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키웠던 개가 생각난다. 내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의 역할까지 해주었던 개.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개. 우리 집에서 살면서 그 개는 외롭거나 쓸쓸한 적은 없었을까? 괜히 그 시절 키웠던 개까지 생각나면서 마음이 스산해진다. 처음으로 그 개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보고 싶다고. 어린 시절 통학하는 그 먼 거리를 나를 따라와 주어서 고마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