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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립니다... ㅣ 속 깊은 그림책 2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즈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예전에는 기다리는 것에 굉장히 느긋했었다. 특히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거나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기다려야 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느긋하게 기다림을 견뎠다. 가방 속에 늘 들어있는 책 때문이었다.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책을 꺼내들었고 그 책들을 읽고 있으면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고 내 순서가 돌아와 볼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다림에 대해 조바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스불에 무언가 얹어 있으면 안절부절 못해 앞에서 기다리다 꺼야 안심이 되었고, 남편과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엘리베이터를 먼저 부르러 나가고 조금만 남편이 늦게 오면 재촉하거나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내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조급증과 참을성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이 책속의 기다림을 보면서 근래의 나의 해동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무언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걸까? 내 의지대로 사람이나 시간이 움직여 준다고 해도 나에게 크게 달라질 건 없는데 말이다. 그런 조급증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보다 내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릴 때면 헐레벌떡 뛰어와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며, 책을 읽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핸드폰으로 닦달하고 불평을 내지른다. 배려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현상은 나도 상대방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나에게도 분명 좋은 기다림이 있었다. 책에서처럼 빨간색의 무언가를 떠올리며 기다린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길 기다렸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길,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어서 빨리 봄이 오길 기다렸던 순간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결혼식을 기다리게 되었고, 아이가 생기자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아이가 7주나 빨리 태어났을 땐 어서 건강해져서 내 품에 안아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렸다. 건강하게 크는 아이를 보면서 기다림은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낼 때에 지루할 틈과 조바심 없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뒤집고, 기고, 앉고, 잡고 일어서려는 과정을 보면서 기다림에 대가가 이렇게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빨간 실에 빗대어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되새겨 보았다. 아마 ‘아이들이 자라기를’ 이 단계쯤 와 있는 것 같은데 그 뒤에 이어지는 아이들이 크고 배우자를 보내고 또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단계를 차근차근 거쳐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것에 순응하며 산다고 해도 남들과 같은 인생도 없고 무난하고 평범한 삶도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들이 특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가 이어갈 ‘빨간 실’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훗날 내가 노인이 되어 내 삶을 되돌아 봤을 때 발자취를 연결 지어 되돌아 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큰 위기없이 무난히 이어갈 수 있다면 그럭저럭 잘 산 인생이라고 되뇔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불평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4년째의 인생을 돌아보면 시간이 정말 빨랐음을 실감하기에 미래에 안착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보다 현재를 돌보기에 더 빠듯하기 때문이다. 인생엔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살아볼만 하며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