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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가다 냄새나는 쓰레기라도 볼 때면 온갖 불평을 다 토로한다. 내 손으로 치워본다는 생각은커녕 그곳을 벗어나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 비방하기는 쉬운데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관대한 게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광경은 어떨까. 한때는 황폐했지만 지금은 나무들로 인해 풍요로워진 땅. 그 땅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곳이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기억할까? 그곳에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그 땅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진 않을까?
스스로 변화를 꾸리기보다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일이 더 쉽다. 더군다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더 빠르다. 이기적이기 쉽고 타인의 행복보다 내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 그런 편견을 철저히 깨뜨려 주는 사람이 있다. 평야지대에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았던 엘제아르 부피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뜨자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던 사람.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31쪽)
황폐한 땅에 아름다운 숲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는 한마디였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고 있고,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없었기에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했다는 말. 그 말이 가슴 속에 이내 파묻혔다. 나는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며 살기에 아주 사사로운 일들조차 미루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원인을 알면서도 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몇 십년을 살아온 걸까? 한 사람의 결심 앞에서 일어나는 뻔한 반성이 아닌 분명 나에게도 숲을 형성할 정도의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데서 오는 의문이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70쪽)
결심으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이 되고 결과가 드러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한 사람의 노력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의 위대한 아름다움.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만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지만 마음 깊이 일렁이는 자랑스러움도 있었다. 이 책 내용을 동영상으로도 본 적이 있는데 황무지의 그 황량함과 사나워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런 황무지가 숲이 되자 사람들도 달라졌다. 밝고 건강해졌고 숲에서 치유 받는 듯 했다. 그곳을 아름답게 만든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의 일상에 쪼들리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어떤 모습의 축적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참 무색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5분만 투자해서 매일 꾸준히 한다면 3년, 5년 후에 뭔가가 드러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만다. 무언가 실천한다는 것은 포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고 늘 익숙해져 있는 생각과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숲으로 만든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명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희생이 있어서 고마워한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이 있을까? 뜬금없는 생각일지는 몰라도 잠든 아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너로 인해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희망을 품게 된다고. 다음에 딸아이가 고맙다고 말해준다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