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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평점 :
오늘은 올 여름 첫 휴가였다. 오롯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단 하루. 나름 계획은 세워뒀다. 아침에 운동만 하고 바로 카페로 달려가서 글도 쓰고, 책도 실컷 읽고, 거기서 밥도 다 해결하고 오겠다는 계획. 하지만 아침 일찍 수영장이 정전되어서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문자를 시작으로 녹록치 않은 하루를 보냈다. 자잘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았고, 모든 걸 챙겨서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데, 마음이 급해서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읽다 만 책부터 완독하고 싶어서 이 책이 눈에 띄자마자 들고 왔다. 그렇게 호기롭게 카페에 왔건만 스마트폰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배터리는 간당간당하고,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도 챙겨와놓고 손톱을 깎고 오지 않아서 키보드 위에 내 손톱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도착한지 30분쯤 지나자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버렸고, 집에를 갈까 하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카페같이 백색소음이 있는 곳은 복잡한 소설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에세이가 제격이다. 물론 혹시 몰라 소설책도 챙겨오긴 했지만 에세이를 먼저 읽고 싶었다. 그렇게 읽다 중단한 「번역: 황석희」를 꺼내 읽었고, 완독을 조금 남겨두고 너무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서 밥도 먹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떼우다 보니 이대로 있다간 하루가 그대로 저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일으키기 싫은 몸을 세워 다시 버스를 타고 카페에 왔다. 이번에는 충전기를 꼭 챙겨서. 그렇게 힘들게 와서 노트북을 켰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도 그대로 들고 왔기에 다시 이 책을 꺼냈고 금세 읽어버렸다. 그런 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노트북을 열었지만 이미 저물어 가는 내 휴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해 무슨 감정이 담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황석희 번역가에 대한 소문(?)은 듣고 있었다. <데드풀> 영화도 안 봤지만 ‘병맛’을 살린 번역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몇 개의 짤을 알고 있었다(이 책을 읽다가 <데드풀 2>에서는 원문 속 ‘Pumkin fucker’를 표현할 말이 딱히 없어서 글자 크기를 이용해 표현한 적이 있다며 ‘씨호박 새끼’란 번역을 보고 혼자 빵터져서 왜 사람들이 번역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대부분 글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은 습관답게 저자의 번역으로 된 영화를 보려는 게 아닌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3~4쪽의 해당하는 분량의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의 양을 조절하는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글을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을 때도 있고, 더 적을 때도 있을텐데 균일한 양의 글을 읽도록 하는 게 글을 조절하는 걸로 보였다. <띄어쓰기좀틀리면어때요>란 글에서 ‘공적인 문서가 아닌 이상 띄어쓰기를 갈캍이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 자막에서 그러지 않는 건 스페이스를 한 칸이라도 줄여서 가독성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크다.’고 밝혔는데, 글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 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100쪽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성격이라던지 성향을 파악해보기도 하는데, 황석희 번역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건 곁을 잘 주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일에 대한 정확함에 대한 고집도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소심하고 여린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혼자 하는 번역은 없다’란 제목의 글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특수함에서도 나름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게 글에서 묻어났다.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건 이 책이 다이기 때문에 나의 느낌이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고, 나중에 또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글에 따라 저자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여전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도 좋다. 저자와의 만남이 나로서는 처음이기 때문에 글로 만나는 저자가 어떨지 기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알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어를 못하지만 번역서를 나름 많이 읽어서 저자가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책 번역으로 대입해 보았다. 물론 두 분야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새로 번역이 되어서 출간되면 다시 구입해서 읽는 것처럼 영화번역도 ‘못해도 5년은 숨이 붙어 있게 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완벽한 번역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처럼 짧은 대사 하나를 번역하기 위해 뉘앙스까지 고민하고 온라인상의 모든 밈을 수집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단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 정도가 되려면 정말 운명이든, 밥벌이의 목적이든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적절한 선을 지키며 자신을 드러낸 저자의 글에 나또한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며 읽었다. 그 선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느낌은 분명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