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그녀는 : 바닷마을 다이어리 6 바닷마을 다이어리 6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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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다음 책을 기다리며 읽고 있는 만화다. 완간 된 책을 한꺼번에 읽는 걸 좋아하는데 우연히 이 책을 읽고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걸 즐기게 됐다. 이런 기다림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출간이 느리긴 하지만 그만큼 꼼꼼히 쓰고 있노라 여기는 수밖에. 그렇게 기다리다 드디어 여섯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오자마자 아껴가며 읽었다. 언제 다음 권이 출간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쉽게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배다른 언니 셋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스즈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언니들과 살아가는 게 스즈에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네 자매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핏줄이란 게 늘 이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언니들이 함께 살자고 했을 때 단박에 결정할 정도로 스즈에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런 스즈에게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축구부에서 나름 활약을 하고 있는 스즈였기에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신설되는 곳이긴 하지만 스즈에게 입학 추천서가 들어왔고 스즈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스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언니들과 친구들과 소중한 인연이 있는 이곳을 떠나기가 망설여진다. 집이 주는 안락함, 가족이라는 이름, 친구들과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안 어느새 깊게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주변에서는 모두 스즈의 선택을 따른다고 했지만 스즈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한 게 사실이다. 스즈를 좋아하는 후타는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해서도 안 되며 스즈가 선택을 할 동안은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스즈에게 중요한 선택이 남겨져 있지만 그러는 사이 소중한 인연도 생겼다. 유산 상속 절차 때문에 엄마의 고향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촌인 나오토 오빠를 알게 되었고 카마쿠라에서 찾고 싶은 가게가 있다며 함께 동행 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나오토가 왜 길치가 되었는지, 지도가 없는 곳을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 성큼성큼 나아가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나오토와 꼭 맞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연은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내가 더 설렜다. 한편으론 지금 내 남편이 나의 완벽한 인연일까 고민해 보지만 이미 고민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타인이 인연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자 했다(우리 남편은 내가 이렇게 자기 이야기 하는 줄 모르니 괜찮을 거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스즈의 언니들은 썸도 타고 자신들이 속한 곳에서 열심히 일도 하면서 스즈에겐 필요할 때마다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보기 좋은 광경들이 펼쳐질 때마다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일지만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점점 성장하고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유년 시절을 돌아봐도 이 시간이 언제 지나갈까 지겹게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 것 같아서 스즈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게 대견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모른다. 그때가 얼마나 싱그럽고 소소한 고민들이 별거 아니었음을,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들조차도 풋풋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특히 스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그렇게 살아내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후 현재의 내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지 않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 언제 또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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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ullv 2015-09-2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공감가네요. 과거를 후회하기보단 현재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겠죠ㅎㅎ 다른 사람의 성장기는 참 흥미로워요. 저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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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호기심이 일어 읽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시 꺼내지 못했다.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답답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암울했으며, 그 사실들을 알아가는 일조차 우울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의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이란 사실을 알고 더 좌절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란 말이 왜 이렇게 마음 깊이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힘겹게 다시 꺼내 순식간에 읽어 버린 이 책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피하기보다 정면 돌파해서 이겨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던지 간에.


  기자의 시선에서 본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은 사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건들도 있었고 어디선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사건들도 있었다. 청춘이란 이유로 각 개인의 조건에 맞지 않는 희망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저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처절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숨지고, 쇳물에 빠져 시신조차 거들 수 없었던 청년, 공부만을 강요하는 엘리트 의식이 빚어낸 자살과 끔찍한 살인 등 그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힘이 되고 권력이 삶을 가르는 틈바구니에서 평범하게 조차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답답하고 복잡한 심경인데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경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만약 나였다면 진작 나가떨어졌을 법한 삶의 치열함. 그 치열함을 너무도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당신도 여자라면’ 단락을 읽고 있을 때는 답답함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내가 여자이기에 느끼는 동질감도 있었겠지만 책을 읽다 현실을 인지하며 내 주변의 사물들을 보니 나는 행복한데, 그 행복을 못 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일부의 삶을 보면서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콜센터에서 욕을 얻어먹어야 하고, 성희롱을 당하고도 되레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며, 남자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소수의 여성들의 이야기는 내게 주어진 것들을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누리고 있는 이런 평범함조차 미안해졌다.


  그리고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 과 ‘쥐식빵 사건’, 자식을 죽인 부모의 이야기도 만났다.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가장 먼저는 잘못이지만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몰아가기에는 주변의 환경이 주는 안타까움 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가까이는 가족, 혹은 지인 중에 누구 하나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있었다면 이 책 속의 불행한 일들이 줄었을 거란 안타까움. 또한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을 이가 내 주변에도 있다고 생각하면 미안하고 미안해진다.


  그들 모두를 구제할 순 없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고 제도적인 변화가 그들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그 안에 갇힌 제약된 제도, 타인의 냉랭한 시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거대한 국가와 현실이라는 벽이 이러한 사건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뿌리 뽑을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엇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과연 개인의 소소한 관심과 도움이 변화를 열 수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한없이 나약하게 여겨지고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내 마음 속의 양심을 져버리지 않고 위기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변화를 가져다주는 어떠한 계기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로 인해 타인이 불행하고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게 이 책을 읽곤 난 뒤의 생겨난 간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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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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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였어? (152쪽)

 

정말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을 칼로 찌른 뒤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읽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 이전에 그 여자와 이미 사랑에 빠졌었던 남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 알’이 몸속으로 들어온 남자. 분명 이렇게 그는 실재하는데 실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를 지켜봤는데 한낱 꿈에 불과한 것 같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시공간연속체를 보는 존재’로 자신의 죽음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까?

 

오래된 나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며 서 있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 나무를 상상하면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그러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가 어떤 장소에 가면 그곳에 얽힌 역사가 보이는, ‘시공간연속체’의 능력(연장으로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나무를 보며 품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남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것처럼 느껴졌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였다. 어쩌면 그 자신도 이 세상에 잠시 머물고 있는 존재의 ‘연속체’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게 다 뭔 소린가 싶었다. 남자가 저지른 일이나 여자와 함께한 추억들은 특별하긴 했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주 알’이니 ‘시공간연속체’니 어떤 동네 이름부터 흘러 온 역사 이야기까지, 그 모든 게 엉켜버리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구별하려는 내 모습에 황망하게 웃고 말았다. 새벽녘에 떠서 곧 햇빛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믐달처럼, 아무도 그 남자를, 이 이야기를 관측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만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면 도무지 어떻게 전해야할지 난감해서 혼란스러웠다.

 

그 가운데 남자 이외의 인물에 대해선 어느 정도 또렷했지만 남자는 더 또렷하게 존재하고 있는데도 곧 사라져버릴 것처럼 불안했다.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예감했기에 그렇게 담담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섭진 않았을까, 슬프지 않았을까,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죽였던 동급생 어머니를 위해 남겨둔 장치조차도 너무나 쓸쓸해서 미래를 보는 능력이 다 뭐냐 싶었다. 자신 앞으로 남겨진 거액의 보험금을 탐탁지 않아하는 형사들 앞에서 ‘그냥 그 새끼가 제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고요!(150쪽)’ 말하는 여자의 절규만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정녕, 무엇이 어찌되었든 간에 그냥 여자 옆에서 함께 살아가면 안 되었던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서였지만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중략) 고마워. 진심으로.(148쪽)’ 이렇게 고백했으면서 도대체 왜!

 

어쩌면 그 남자는 이 세상에서 끝나 버렸지만 자신이 얘기했던 시작이 없다던 우주처럼, 볼펜의 모든 면이 다 끝이라고 말한 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시공간을 이동한 것 뿐, 그가 존재했던 시간들을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아무도 모르게 여자 곁에 혹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도무지 이 남자의 이야기를 흘려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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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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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 샤워하고 나온 직후에 쐬고 있는 선풍기 바람, 모기로부터 안전한 모기장 안, 그리고 그 안으로 쏟아지는 스탠드 불빛. 이런 최적화 된 환경에서 책을 펼쳤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펼쳤을 때가 그랬고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앞서 나온 시리즈에 관심이 갔고,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영역을 건드리는 듯한 신선함을 맛보았다.


  원작을 익히 알고 있기에 실재의 인물대신 곰 군, 백곰 양, 바다코낄 군이 등장하는 명화라니! 그 앙증맞음에 빵 터졌고 곁에 머물고 있는 진심을 드러내는 짤막한 글에 깊이 공감했다. 나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동안에 아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지만 뒤페이지가 너무나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읽기에만 한정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직접 참여도 해보고, 상상도 해보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게 거창하지 않다는 걸 느낀 셈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참신하고 산뜻하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적당한 무게감을 주는 글과 그림을 생각해 냈을까? 이런 글과 그림을 그리는데 엄청나게 치열했을지도 모르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본 바로는 뭔가 여유롭고 기분 좋은 자극을 시켜주는 것 같아서 편안했다. 한 때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나도 좀 독창성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원하는 독창성이란 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늘 자극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의 전환과 시선을 시도하지 않은 채 텅 비어있는 내 안에 것을 쥐어짜려고만 했으니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루는 지나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것처럼 하루도 시간 에너지에서 다른 에너지로 변하는 것일 뿐이다. (87쪽)


  조금만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런 글들이 더 와 닿았던 건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진심이 느꼈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험, 타인의 생각을 포장한 것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고 곱씹으며 뱉어내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는 수많은 생각과 단어들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아니며, 작은 것 하나를 붙잡고 끄집어내어 다듬고 좀 더 들여다본다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모호한 말 같지만 그렇게 끄집어 낸 것들이 꼭 창작물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쉽게 용기내지 못했던 것,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던 사소한 것들까지 무한했던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드는 시도가 어쩌면 굉장히 쉬울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을 반드시 해 보아야 한다. 두려움을 이기는 법까지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0쪽)


  그래서인지 나 또한 작은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최근에 호스피스 병동을 기록한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고, 영국 젊은이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한 에세이를 읽다 보니 나도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리뷰를 쓰다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각나 아는 동생에게 우리 합심해서 이러이러한 걸 해보자고 제안을 하니 흔쾌한 답변이 들려왔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은 어떠한 결과물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용기 내어 이제 끄집어내는 과정일 뿐이다. 이 책이 그런 용기의 마무리를 해주었고 소소하지만 내가 시도하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다.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이유도 있고, ‘나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기대도 하지 말고 실망도 하지 말며 일단 꾸준히 해보자’란 마음을 가지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역시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을 실천할 때야 사람은 활기를 찾는 것일까? 언제 또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질지 모르지만 이런 행동을 하게 해 준 이 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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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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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줌파 라히리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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