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1
홍석중 지음 / 대훈닷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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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창 인기 있었던 '황진이'인줄 알았다.

그 황진이가 북한 작가의 것이라니... 생소하고 놀라웠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황진이를 검색해 보니 내가 알고 있던 황진이는 전경린 작품이였고 내가 놀랬던 만큼이나 북한 작가의 작품 황진이였다. 그 유명한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손자라니...

모든것이 생소했다. 그러나 거리낌없던 한가지 반가움은 북한소설을 읽는다는 것이였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생각할때 이런 소설 자체가 얼마나 반갑고 신기한지 또 문학적인 면에서도 얼마나 기쁜지 구구절절 다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 속에서 첫번째 장벽은 언어였다. 방송에서 우스갯 소리로나 접할 수 있는 북한 언어처럼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언어 쓰임새와 표기법처럼 황진이의 언어는 낯설었다.

16세기의 배경인데다 북한작가의 글이니 1권의 읽힘이 더딜 수 밖에 없었다. 한시간을 낑낑대고 읽어도 겨우 40페이지 정도 였고 모르는 말뜻이며 낯선 언어들을 건너뛰어도 여전히 그작 저작이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2권에서는 1권에서의 막힘없이 술술 읽혀졌는데 1권에서나 2권에서나 저자의 역량을 볼 수 있었던건 이런 낯섬의 앞에서도 글의 흐름은 막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내가 모르는 언어.. 알 수 없는 비유인데도 읽기의 막힘이였지 흐름의 막힘은 아니였다.

 

또한 황진이라는 소설 자체 부터가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북한에서 이런 소설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속에 이런 작품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무참히 깨트려준 증거였다. 특히 노골적인 성묘사나 음담패설 그리고 양반과 관리들을 비꼬는 의미부여가 놀라웠다. 내가 북한의 문학을 너무 경시하고 있었지만(읽은적이 없으니.. 그리고 나만의 잣대로 그어 버렸으니..) 이번 계기로 무지함을 깨트려 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황진이 하면 벽계수 서경덕과의 일화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일화도 내게는 희미해서 이 책에서는 에피소드로만 끝나 버렸을때야 비중은 서경덕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을 정도였다. 우리가 보통 아는 것과는 다르게 놈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추가해 놈이와의 사랑의 중점에 황진이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초반에 놈이와의 어린시절.. 그리고 황진이가 기생으로 나서면서 놈이에게 처녀를 주었을때도 그들이 중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황진이가 깊이 사랑할 그와 문학적,예술적 깊이가 통하는 누군가가 나올거라는 기대를 했었고 황진이의 화려한 기생의 삶이 부각 될거라며 상상했다.

그러나 결말은 식상했다. 황진이가 놈이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닫고 사랑하게 되었을때 놈이는 목숨을 잃어버린다.

이런 스토리의 뻔함에도 이 책을 가볍게 여기며 무시할 수 없는게 책 속의 또하나의 문학적 소재였다.

언어는 걸쭉했고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시조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시조들을 통해 또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를 경험한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사투리의 뜻풀이가 나와 있었지만 그런 뜻은 읽으면서 일일이 찾을 수도 없었고(찾다보면 흐름도 깨지고..) 오로지 상상에 의해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상의 나래속에 날개를 달아준게 시조였다. 고리타분하다 느꼈던 시조가 그리 정갈할 수 없었다. 시에 대한 깨어 있음이 많은 도움을 준거라 생각하지만 여튼 황진이를 읽는 내내 일반 소설에서 느꼈던 가벼움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시대속의 사람이 될수 있게 인도해 준 작가의 문체며 창작성에 빠져들었고 여운이 오래 남았던 것이다.

 

이렇게 북한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읽는 내내 반갑고 신기했고 기뻤다. 또한 끝없이 북한과의 문학적 교류를 시도하는 무리가 있다는 데에 놀랐고 그 열정앞에 부끄러워 졌다.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북한의 문학을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멀리한채 공상의 문학만.. 편리한 문학만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단과 함게 단절된 것이 어디 문학뿐이랴..

그러나 그 단절의 연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영원한 단절은 없을 듯 하다.

접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북한문학을 많이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소설에서 새롭게 만난 황진이와 북한 문학의 만남은 즐거웠다라고 말하고 싶다.

역시 문학은 즐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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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마음을 움직이는 힘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1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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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랑은 무엇 일까요?' 라는 질문에 배려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그 당시 나의 생각으로는 배려하는 사랑이야 말로 평형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뿐만이 아닌 모든면에서 배려를 하면 적어도 상대방에서 상처를 주지 않을거라 자신있어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모습은?

그런 희미한 기억력을 지닌채 한없이 휩쓸리며 살아가고 있다.

뚜렷한 확신과 주관도 없이 그날 기분에 따라 되는대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또 마주치고 말았군'이라는 생각이 들자 당황스러웠다.

주인공 '위'가 행했던 언행과 행동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참 이기적인 사람이였구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껏 숱하게 그런 언행을 내 뱉어 왔지만 '위'의 경험앞에 왠지 그런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위'보다 더 큰 만행을 저질러온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나.. 나.. 나... 나의 모습이다.. 나의 모습이야' 라는 말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위'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이였다. 고속승진을 하게 되었고 그 승진 안에는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짓밟은 티가 역력했다. 자신을 정당하게 자신의 할일을 통해 승진을 했고 그런 행진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라는 생각앞에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승진과 함께 발령받은 곳은 내부의 압력에 의해 구조조정을 시키려는 팀이였다. 자신의 상사로부터 적당한 시기에 자연스레 빠져 나오면 자신의 자리는 유지 시켜준다는 조건을 받지만 '위'는 왠지 그게 꺼림직했다.

구조조정에 의해 해체될 팀안에서의 자신의 활약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순간 위의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꿈틀댄다. 양심이였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아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양심의 소리가 꿈틀댔던 것이다. 전혀 '위'답지 않은 모습이였다. 그런 마음의 변화속에는 회사내에서 인도자라 불리우는 퇴직한 중직자의 만남이 있었다. 그러한 만남과 모두 괴상하고 안일하다고 생각되는 팀원들 속에서 부인과의 갈등 그리고 구조조정 시키려는 무리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서서히 양심을 넘어선 배려를 배우게 된다. 현장에서 뛰면서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되고 욕심만 채우려는 무리속에서 얼마나 소박하고 열심인 사람들이 그 희생양이 되어 가는지 혼란과  깨달음 속에서 '위'는 값진 것들을 얻어간다.

부인과의 갈등해소 속에서 그 동안 무관심 했던 것들을 깨달아 가고 자신이 갖는 일이며 그 외 여러가지 면.. 아니 자신의 삶의 많은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 과정은 인간적이였다. 감정과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음을 알기에 더 인상깊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적자생존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더 쉬운 일터에서 맛보지 못한 끈끈함의 주역이 내가 되고 그걸 만들어 가는 과정속의 끈끈함은 사회생활의 삭막함을 몰아내줬다.

팀원 하나 하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찾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변화를 마련하는 것.... 인간의 욕구의 높은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이제 중요한건 나의 변화다.

그런 도전을 받았다면 과감히 나를 깨트려야 한다.

일터에서의 나의 소망을 생각해 보았다.

즐겁게 일하기, 보람 느끼기, 원만한 인간관계, 친절 등등...

지금껏 포기해버렸던 나의 소망들이 하나 하나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저것들을 과연 실행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앞선다.

아니 그 두려움 앞에 귀찮음과 포기가 앞선다. 그러나 지금 내게 당면해 있는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언제까지 시간만 죽이며 끔찍한 일터를 외면하고 살텐가..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조건 내게 주어진 삶인데 그것들을 더이상 포기해버리고 싶지 않다. 완벽한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현재 나의 일안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끌어 올리고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만족감이 만들어 내는 뿌듯함을 이젠 정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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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이야기
쉬타오 지음, 장연 옮김 / 고려원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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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겉표지의 모습이 왠지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내 멋대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전혀 내가 생각한 책이 아니였다.

작가의 말부터 가슴에 와 닿았고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나의 마음을 어느새 느슨하게 해주었다. 그 느슨한 마음 속으로 또다른 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귀중한걸 깨달았다. 내가 흘러버린 마음의 소리들.. 머리에서 생각한 것들이 마음으로 내려오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생각들이 진정한 사라짐이 아니라는 것!

그걸 누군가는 늘 붙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들이 뜻밖의 결과를 낳고 그 행위의 행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 보고 있으니 아직까지 세상은 따뜻하다는 걸 느꼈다.

그 행위를 하는 사람만이 아닌 그 행위를 알게 된 이들 마음 속에도 그 따스함이 전해지니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전위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느낌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편안함 속에서 서서히 외치는 나를 변화시키는 말들이 정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적이 있다면 그 상처를 다 치유해 주고 싶을 정도의 감언이였다.

나 자신 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공유된 삶의 고리를 더 조여주는 이야기와 조언 속에서 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늘 나를 깨트려도 깨어지지 않는 후회들...

그 후회의 상처들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위로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허물들이 무너지면 맥이 탁 풀린채 눈물이 흐르듯...

나의 상태도 그러했다. 맥이 풀리면서 나를 돌아보니 내가 안쓰러웠다.

늘 내자신을 다독이며 꾹꾹 참아왔던 것들 안에서 그건 나만이 아니였다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기쁨의 순간보다 힘들고 상처 투성이의 일들을 더 기억하고 망각의 속에서도 존재시키는 것 같다. 그 망각의 상처들까지 위로해 주는 책한권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하나의 주제를 만날때마다 나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위로의 말들이 이런 스타일로 씌여질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감동적인 얘기속에..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고 허황되기까지 생각되어 지는 얘기속에서 어느새 나는 스며들어 버린 것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네고 내가 먼저 용서와 사과를 하고 남이 나를 위로해 주길 기다리기 보다 내 자신을 내 스스로가 위로하고.. 그게 오직 나에게만 할당되는 가치가 아니였다.

내가 그런 마음을 뿌리면 그 마음들이 널리 널리 퍼졌다.

그런 마음의 힘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가 보일지는 몰라도 그 형태나 움직임 크기는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의 힘의 위대함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위대함의 가운데 내가 있다. 어느순간 놓아버렸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결코 놓아버림이 아니였다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감동은 많이 받았다 자부하지만 깊은 위로를 받은 적이 몇번이나 있을까... 분명 감동으로 시작된 책이였지만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위로의 손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진부한 사실이 진실임을 깨닫는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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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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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벌써 책 얘기라는 것이 묻어나지만 지금껏 만났던 책들에 관한 책들 중에서 이 책은 독특함이라는 매력을 더 발산시킨다.

책속에 등장하는 책 얘기들이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과 좀 더 가까운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조금은 거만한듯한.. 그리고 박식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려지는 난해함만을 추구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발설한다는 다중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공감이라는 감정의 유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기에 저자에 대해 조금은 뒤틀리려는 못된 심보를 눌러 버렸다. 저자와의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18편의 수필속에는 다양한 책으로의 접근이 시도된다. 이야기가 아닌 접근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건 내가 썼더라면 한가지로 일축되었을(나는 어쨌든 책이 좋다 라고..) 소재들을 다양하게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 다양함을 보면서 작가가 미칠듯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그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모습이 그래도 우리는 책을 좋아한다라는 공감대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로 귀결되었다.

책을 사랑하는 부모밑에서 책과 함께 자라온 저자는 책을 통해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다. 결혼한지 5년이 지나면서 남편과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서재만은 따로 쓰던 부부는 서재의 결혼을 이행한다. 여기서부터 나의 혼란이 시작된다. 과연 다음에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서재를 따로 쓸 것인가 같이 쓸것인가에서부터 이 부부의 서재 합치기에서 불거져 나오는 책분류.. 중복된 책의 소장 여부등을 자신있게 처리할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이 부부도 서재 합치기에서 많은 문제들을 만나지만 결국 잘 이행시켰고 책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만나게 될 일이라 에피소드로 넘겨지지 않았다. 당장 나의 책분류(좋아하는 작가순으로 이어지나 책들의 키높이로 끝나는...)에 심한 고민이 왔다.

'책장을 다시 뒤집을까? 작가별로 나눌까? 시대별로 나눌까? 아니면 내용별로 나눠?' 이런 식의 고민이 거듭되었다. 책이 그다지 넘쳐나지 않는 적정 수준을(280권정도)지키고 있지만 나의 책 분류를 무척 단순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별로의 분류에서 다른 책들과 섞일때는 책의 키높이라니.. 깔끔함만을 추구하는 취향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의 남편과의 현장 독서는 상당한 부러움을 유발시켰다. 나도 폭풍전야의 언덕에서 폭풍의 언덕을.. 폭설속에서는 설국을 읽어 보고 싶은데 그랜드케니언 급류에서 야영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탐험일지를 읽었다는 저자가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꼭 다짐했다.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꼭 현장독서를 해보기로....

 

 

또한 자신이 쓴 헌사를 헌책방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가나 헌사의 씌임 여부에 따라 고서적의 가치가 나뉘어지는 부분 또한 지나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책을 사게 되면 책 머리에 날짜와 그날의 기분이나 책에 대한 기대등등을 적고 책꽃이로 옮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을 선물할때도 책 선물을 받을 때도 책 머리에 헌사를 쓰게 되는데 그런 행동은 다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며칠전에 헌책방에서도 보았듯이 책 머리에 헌사가 있음에도 팔아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선물한 책을 발견하게 되면 부딪힐 두려움과 서운함이 교차되었다. 헌사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지만 역시나 그래도 나는 계속 끄적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나의 독서 습관에서 조금씩 장애가 되어오는 문제도 이 책에서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책의 보존이였다. 책을 좋아하면서부터 책을 깨끗하게 보면서 책을 거칠게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책을 빌려주는 경우가 드문데(주변 사람들에게 아예 못 박아 버렸다. 나는 책 안빌려 준다고... 인간관계에서 이건 상당히 불편하다.) 여기서 저자 가족의 독서 습관을 보고 경악해 버렸다.

저자의 남편은 사우나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이 벌어질 정도로 쫙 펴서 보고 저자는 수많은 메모를 달며 보고 저자의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읽은 장들을 찢어서 휴지통에 버린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만큼 책을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나는 책을 깨끗이.. 더 깨끗이 보는 편이라서 이런 방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책을 거칠게 읽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마 태연할 것이다...)

책의 겉모습보다 내용이 더 중요한 거겠지만 책을 보는 방식이 다양하다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에 책을 사랑하면서 책도 깨끗이 보는 사람들의 예도 나와 다양함으로 인정하는 나의 생각은 그럭 저럭 타협이 되어 갔다.

 

이렇듯 저자의 생활과 가족속에서의 책의 의의와 모습속에 많은 것을 느끼고 나의 실생활과 비교해보며 변신을 꿰할것은 꿰하는 실행의 독서가 되어 가기도 했다. 어린시절 책을 사랑하는 가족의 틈에서 자라난 에피소드들이 부럽기도 하고 독특하게도 다가왔다. 퀴즈대항이며 책벌레 게임 그리고 맞춤법 짚고 넘어가기(이건 나도 조금씩 이행한다.^^)며 책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모였을때는 온통 책으로 시작한다는 걸 간접경험을 한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의 유별난 책사랑.. 그리고 책에 대한 지식.. 색다른 관념.. 일상에서의 많은 연결성을 재미나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공감하고 반대하고 사색했던 것들을 다 옮기지 못했다. 그것들을 옮기려면 나 또한 책한권을 써야할 정도이고 정리한다고 해서 꼭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그리하면 무한함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새로운 부분들을 분명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큰 영향력은 나의 독서습관과 책사랑.. 분류 정리등 실생활에 좀 더 현실적인 것들이 아니였나 생각되어진다.

우선 책 분류부터 다시 해야 겠다.

키높이가 아닌 나만의 분류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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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빵
이철환 지음 / 꽃삽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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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두께임에도 금방 읽어지는 책과 더딘책이 있다.

글의 양에서 현저한 차이가 보이는데도 양이 적은 책이 훨씬 나의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이 있다. 책을 양과 두께로 말한다는게 왠지 우스워 지지만 금방 읽어 버리는데서 오는 가벼움을 무거움으로 말하고 싶었다.

무거움이란 무엇일까? 마음속에 응어리를 담아 주는 것일까? 아니면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한 사색을 잔뜩 머리속에 담아두는 것일까?

아니였다. 내가 느낀 무거움은 나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쓸쓸함이 였다.

그 쓸쓸함이 꼭 나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 쓸쓸함 속에 언제나 내가 들어있는 기분이였다.

 

무언가를 처음 만날때 그 느낌은 오래간다. 그러나 익숙함이라는 만남이 그런 처음의 설레임을 두리뭉실하게 만들어 버린다.

소박함.. 감동.. 우리 이웃의 이야기... 나와 가까이 있는 나의 이야기..

이런 스타일을 말해주는 이철환님의 글을 처음 읽었을때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참 많이 울었고 가슴 뭉클했고 밤 깊도록 잠들지 못했던 나의 첫 마음...

이제는 왠만한 감정이입이 아니고서는 이런 글들을 읽어도 잘 울지 않는다. 마음이 저릿해도 순간적인 것일뿐 오래가지 않는다.

늘 책을 읽는 속도로 읽다보니 글을 마음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만 담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몇번을 덮었는지 모른다.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음미하면서 읽고 싶었는데 너무나 빨리 쌓여가는 페이지에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마음을 닫은채 읽는 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자신이 싫어졌다.

내가 욕하고 비난하는 다른 사람과 다른게 무어냐고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마음 가득 슬픔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그렇게 나는 내 자신과의 다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순간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뿐..

그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자격이 없었다.

이런 자기비하의 번복도 내게는 과분했다.

감동과 소박함을 느낄 것 같던 책 속에서 나는 이기적인 싸움과 동시에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라는 생각이 들어 의외라는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번지르르하게 감동적이고 세상은 따뜻하다라는 말을 쏟아 내기가 이제는 싫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이젠 덮을 것 조차 없는 가식의 덩어리인 나를 가리려 한단 말인가...

 

머리에서 멤도는 독서를 하고 싶지 않다.

머리에서 멤도는 삶을 들여다 보고 싶지 않다.

감정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오기까지 평생이 걸리는 어리석은자가 되고 싶지 않다.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가지 않는 답답함이라도 내 머릿속에 묶어두는 건 이젠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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