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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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소중한 건 언제나 잃고 나서야 알아차린다는 걸. 옛날에 나는 빛났어.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달았지.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107쪽


잠시 상상해본다. 분명 나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겨준 사람이 있는데 어떠한 연유로 잊고 살고 있다면. 기억이 전혀 없지만 알게 된다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그 사람이 잊고 살고 있대도 그저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안심할 것 같다.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는데 잊고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고등학생 사쿠라 신지가 동급생 하나모리 유키에게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을 때부터 그런 의미는 아니라고 여겼다. 사신 아르바이트는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자들 즉, 사자의 소원을 풀어주고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이다. 게다가 시급 300엔에 조기 출근과 잔업이 있을 수 있지만 시간 외 수당은 없다. 하지만 사쿠라는 이 아르바이트를 수락했다. 근무 시간을 채우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사자가 된다는 것과 사자의 미련을 풀어주는 것. 서로 만만치 않은 사연과 현실을 마주해야 하지만 사쿠라가 첫사랑 아사쓰키를 만나고 끝내 하려던 말을 못했던 순간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분명 아사쓰키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하나모리가 밝힌 잔혹한 진실은 미련을 품고 죽은 사람 중에서 드물게 ‘사자’가 탄생하고, 이 세상에 갇힌 불쌍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탄생한 순간 세상은 가짜 모습 즉, 추가시간이 허락되는 모습으로 바뀌고 죽음은 무효화 된다. 사쿠라가 만나는 이들은 미련을 품고 사신으로 탄생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는 현실은 가짜 현실이다. 그걸 자각하는 사람은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사쿠라처럼 가까운 사람을 만날 경우 예상하지 못한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꼭 한 번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되지만 사쿠라처럼 실수할 수도 있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단순히 감상에 젖게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신으로 남아 있는 이유조차 모른 채, 혹은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이 세상의 ‘사신’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자들을 만나면 더 복잡해진다. 그저 소재가 좀 독특한 소설을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도대체 이 소설은 무얼 향해 가는지 알아가는 게 불안할 정도였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가독성 높게 한 것도,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 싶다가도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나이와 상관없음을, 그저 다른 세계를 미리 경험하고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달아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건대 추가시간은 애초에 미련을 버리게끔 하는 장치가 아닐까. 176쪽

미련이라는 게 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아르바이트 끝을 보게 될 사쿠라에게 사신, 미련, 저세상, 현재의 의미가 과연 어떻게 다가올까? 그렇게 긴장하고 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완전 다른 사쿠라를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 사쿠라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기억을 잃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오감으로 느끼게 되고, 시급 300엔의 시답잖은 아르바이트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작은 행복’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혹은 모든 걸 잃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할지라도 결코 그 과정이 헛되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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