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미스터리 박스 1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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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덩...! 이, 뭐란 말인가!

정말 무시무시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이 정도까지... 지구 상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인간도 있구나, 싶었다. 너무 심하게 잔혹하니까, 나중에는 오히려, 그저 딴세상 이야기처럼 현실성없이 들렸다. 그래서인가, 기시 유스케의 무작스레 잔혹한 책 <검은 집>같은 책보다 오히려 덜 무서웠다. 훨씬 강도높고 또 기상천외의 잔혹인데도 한발짝 물러나서 읽히는, 그래서 오히려 감정 이입과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어쨌든, 천만다행이었다. 감정이입까지 되게 써 놓았으면 첫번째 이야기를 못 넘어갔을테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 깜짝 놀랄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지구상의 일이 아니라 마치 먼먼 어느 우주의 일인 것처럼 여유만만하게 말이지. (그래서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으리.) 그렇게 읽으니 기가 막히게 재미있었다. 가슴이 써렁해지는 차가움,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행동만의 섬세한 아름다움, 마치 암흑의 우주를 방향도 없이 유영하듯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가끔 덜커덕, 하고 어둔 밤에 발에 걸리듯 하는 깜짝스러운 공포. 그런 예측 불허의 짜릿함이 내게 주는 맛이 생각보다 꽤 컸다. ...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실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혼란스러움의 정체는?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즐길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반쯤까지 읽으면서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중반을 넘었을 때, 정말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빠져드는 상황, 대체 끝은 어디인가? 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지 뭔가.  

담대한 하드코어. 책이어서 다행이다. 영화였으면, 뭔가 진짜로 보여준다면, 정말이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절대로 안 보고 싶다.  

에그 맨
C10H14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
Ω의 성찬
소녀의 기도
오퍼런트의 초상
끔찍한 열대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이 여덟 편의 짧지만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 하나하나 제목을 떠올려보면 다 새롭다. 특히 'Ω의 성찬' 의 끔찍한 상상력은 가히... 경지라 하겠다. '오퍼런트의 초상'도 역시,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은 엽기성이 아니라 역시 스토리텔링인 것. 그러고보면 끔찍한 묘사를 빼버리고 나면 이 책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참신함으로 넘치는지 모른다. 물론 '재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세세한 내용은 다행히도 대부분 기억에서 지워지겠지만, 또 다행하게도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저릿저릿하던 느낌은 끝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거야말로 꼭 한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것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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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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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르조 바사리가 썼다는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이 있다 한다. '고대의 재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썼고,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던 200여명의 예술가의 전기를 기록한 책이라는데.  

물론 그 책을 본다면, 많은 정보와 그 당시를 알게 해줄만한 생생한 지식이 담겨 있겠지만, 막상 내가 그걸 얼마나 즐기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며 또 그 안에서 얼마만한 양의 정보를 건져내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려나?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십자군 이야기> 이래 내가 좋아하게 된, 박학다식한 데다: 보는 각도 공감가고: 유머 감각있는 김태권 작가가 그걸 풀어 보여주겠다는데, 어찌 안 볼 수가 있으랴! 기대하고 보았는데(도)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유익했다.  

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안젤로의 이야기, 보티첼리의 변천사, 도나텔로의 살아있는 듯한 조각품, 위대한 자 로렌초가 이루어내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과 그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예술가들의 관계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이야기들은 종종 시대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비견될 만한 거리로 함께 등장해서 이해를 돕는다. 작가가 미학을 전공했을 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그리스, 라틴 문헌을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고나면 어째서 이렇게 종횡무진 르네상스를 오갈 수 있는지도 수긍이 간다. 요즘은 신문을 통해 에라스무스의 라틴어 격언을 소개하는 것도 보고 있다.  

현재와는 딱히 접점을 갖기 어려웠던 고대 그리스 로마와 중세, 또 르네상스 시대, 어쩌면 학교에서 세계사와 미술사를 통해 딱 그만큼만 알았을, 당연 복잡하고 의미도 못 찾겠고 재미조차 없다 생각하고 말았을 수도 있는 그 시대들이 그를 통해 이렇게 다가오는 게 신기하고 좋은 느낌이다. 지난 겨울 피렌체에서 보냈던 단 하루, 오랫동안 우피치 미술관의 보티첼리 방 안에 있는 커다란 작품들 앞에서 설레며 서성댔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때 어째서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가 있는 두오모 미술관에 들르지 않았던 것인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겉 모습에만 감탄하며 그냥 지나쳤던 것인지, 이 책을 보면서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른다. 마사초가 그린 브랑카치 예배당의 <낙원에서의 추방>은 또 어떻고...

어쨌든, 미술사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 15,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의 여행을 김태권이라는 가이드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건 행운임에 틀림없다. 뒷면 미술사연표에 등장하는 더 많은 작가들과 얽힌 이야기들, 예컨데 미켈안젤로와 라파엘로의 시대, 뒤러의 판화 이야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티치아노를 통해 보는 베네치아 미술 들에 관한 이야기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그러나- <십자군 이야기 1,2>를 차마 잇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볼 때,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피렌체 편> 다음의 이야기는 언제서야 빛을 볼 지 저으기...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열혈 독자된 이의 사명 혹은 운명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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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2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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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유명한 책이지만 이제야 읽었다. 아무래도 단편에는 길게 몰입하지 못하는 성정 탓이다. 이야기에 좀 얽혀들라치면 금세 끝인가 싶은 허무함, 그리고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종이 한 장만 넘기면 새로 이어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이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갔다 오고나니까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는 갑자기 낯선 이- 이런 느낌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단편을 잘 집어들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답답한 이야기지만, 좋은 장편이 선사하는 몰입의 맛에 길들여진 탓이다. 

그런데도, 깜짝 놀랄만큼 이 단편집은 멋졌다. 작가는 종횡무진 이야기의 세상을 넘나든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의 여러 꼬락서니, 때론 처절하게 때론 알싸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편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는 것처럼,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군데의 이야기를 탁 잡아채서 풀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들. (정말, 작품집 안에 하나둘은 끼어있음직한 허투른 이야기가 어째 하나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점도 자유로이 넘나든다.  

때론 단 여섯 쪽에 불과한 문장으로 한 편의 가감없이 완벽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건 정말... 내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짧아서가 아니라 너무 완벽하게 느껴져서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그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장편의 줄거리만 같다. 단 여섯 쪽에 그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그런데도 부족하거나 넘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짧은 글을 쓴 사람은- 어쨌든 단편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구나, 싶다.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모험의 상상, 인간 세상이 품고있는 함의, 잔인하고 심술궂은 심성, 무모한 희망과 절망, 아이러니, 그리고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기막힌 맞물림. 문장도 아름답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었어. 모래 위에 당신 이름을 쓰지. 난 사막이 좋아. 당신 이름을 쓸 자리가 많으니까. 목이 몹시 마르지만, 우리는 기운을 잃지 않고 있어. 구원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온다는 걸 여행가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거든. 습도가 높아서 당신 어머님이 고생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평생에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싶었던 편지가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한 인간의 시적인 상상에서 비롯된 향긋한 거짓말이었다. 그저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을 걸고 만들어낸 역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거짓말이 주는 감동도  잠시, 일반의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심술궂고 무지, 단순한 일상은 쉽게 거기에 재를 뿌린다. 작의 말마따나 '그런 식으로 영원을 제멋대로 축소시키면서.'  

한 편 한 편이 모두, 어쩔 수 없이 다음 장을 바로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금방 읽은 짧은 이야기들을 곱씹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가의 힘, 그것이 단편집을 제대로 읽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한 편은 침대에서, 한 편은 지하철에서, 또 한 편은 도서관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서, 또 한 편은 일터에서 잠깐, 이렇게 가방에 이 작은 책을 넣어갖고 다니며 어디서나 한 편 씩 읽었다. 그러다보니 금세, 아쉽게도 끝이 나 버렸다. 심지어 가장 짧고 강렬했던 한 편은 마음이 따뜻하고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조용한 술집에서 만날 때 읽어주기도 했다. ^^ 

유태인인 작가가 이차대전을 겪었으니 어쩌면 그 이야기가 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결말은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인간의 심성이 들여다보여서이다.  

<고상함과 위대함>에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도 전쟁의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그 역설, 그 풍자와 해학, 그 기막힌 발상에는 어떤 진부함의 흔적도 없다. 언제나 들어왔던 익숙한 시점을 훌쩍 넘어서서, 아무도 생각지 않았지만 과연 한 편에서는 그랬음직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건 로맹 가리의 큰 장점이다. 그의 역발상은 참신하여 읽는 즐거움을 주면서도 오히려 그 표면 속의 깊이를 느끼게 하니 참 매력적이다.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도 놀랍다. 그건, 인류에 대한 작가의 비전인가? 특별히 책 서두에 사샤 치포츠킨의 "달빛 산책" 중에서 뽑아낸 말을 붙여둔 걸 눈여겨 볼 만하다. 

"인간이라- 우리로서는 물론 이의가 전혀 없고말고. 언젠가는 인간이 될 게 아닌가! 좀더 참고 좀더 버텨야 해. 일만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 친구들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뭐니뭐니 해도 크게 보고, 지질학적 시대 단위로 시간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네. 그러면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인간의 시대가 올 때 그 자리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자취와 몽상과 예감 뿐이지만- 지금 인간은 그 자신의 선구자일 뿐,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벽>,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비둘기 시민>, <어떤 휴머니스트>,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 들, 모두모두 짜릿한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정말로 덮어두고 한동안 가만 있고 싶어졌다. 그림이 그려지고 영상이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럴 시간이 필요했다. 이 강렬한 제목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진다. 우리말로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다>가 아니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것만해도 갑자기 그것은 다른 말 색을 띈다. 프랑스 어 <Les Oiseaux Vont Mourir Au Perou> 란 과연 어떤 제목인가? 내가 공부해서 알아내기 어려우니 나중에 프랑스어를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류트>도, <몰락>, <가짜>, <본능의 기쁨>, <지상의 주민들> 도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던져버릴 것 하나 없는 알짜배기 단편들의 모음집, 그 무게가 상당하다. 보고 덮고 하기를 되풀이하며 다 읽었으니 이젠? 마치 생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를 스치듯 읽고 곱씹으며 읽고 하기를 거듭했듯, 이 책 또한 한동안 가방에 넣어다니며 다시금 하나씩 읽고싶다. 때로 스치듯, 때로 곱씹으며 하나씩 우려내 그 맛을 음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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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의 소원 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소피 블랙올 그림, 시린 임 브리지스 글, 이미영 옮김 / 비룡소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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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빨간 책, '루비'라는 중국의 당찬 여자아이가 만들어내는 밝고도 길한 분위기의 그림책이다. 그냥 있을 법한 이야기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난데없이 오래된 사진이 나타나고, 그게 이 책을 지은 이의 할머니의 '살아있는 이야기'였다는 걸 들으면 더 솔깃하다. 오래된 액자 틀에 끼워진 두 개의 인물, 하나는 주인공 루비의 어린 시절을 그림작가가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쪽은 할머니가 되어 살고있는 진짜 루비의 당당한 사진이다. 그 대비가 주는 공감이 신선하고 호기심을 갖게 한다.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로 하여 부자가 되어 돌아온 중국인 할아버지,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아이들만 해도 백 명이 넘을 만큼 대가족에 큰 집의 주인이다. 너무 많아 펼쳐진 양면의 그림책에 다 들어오지도 못할만큼 많은 식구들이 중심에 할아버지를 두고 가족 사진을 찍는 것처럼 앉아있는 게 재밌다.   

루비는 백 명 중의 한 아이에 불과했고 게다가 여자 아이였지만, 그 당시 보통의 여자 아이들이 걷는 길을 걷지 않는다. 공부를 좋아했고, 남보다 더 많이 노력했고, 스스로 남자애와 여자애한테 주어지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느꼈으며, 할아버지가 기회를 주자 당당하게 그걸 이야기한다. 또 그런 루비의 이야기를 내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깨인 할아버지 덕에 대학 입학을 허가받는다. 루비가 다니게 된 대학에서는 루비가 첫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큰 갈등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루비의 고민을 받아들인 할아버지는 선선히 루비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니까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건 오래된 관습에 반하는 것이었으므로 루비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실은 큰 고민과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게다. 조금 아쉽게, 그런 고민의 흔적이 이 그림책에서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루비의 행운은 그저 선구적인 할아버지 덕분이었을까?  실제의 루비는 단지, 이제 곧 자기도 결혼을 해서 이 집을 떠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 설날을 맞지 않았던가. 미래의 선택에 대한 루비의 갈등과 걱정, 그리고 자신의 희망을 위한 노력 들이 좀더 생생하게 드러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거니까 실제로 안 그랬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면 루비 할머니에 대해서는 존경심은 약간 감해지고 행운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걸.

그림을 그린 소피 블랙올이라는 작가는 이 그림책으로 에즈라 잭 키츠 상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을 정확히 모르니 이 그림이 어렴풋이 중국적이라는 건 알아도 얼마나 정확하고도 섬세하게 잘 표현했는지는 나로선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꽤 익숙하게 보이니, 작가가 중국을 표현해야 하는 그림책을 맡으면서 중국의 그림 양식을 여러모로 관찰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림마다 빨간 선으로 테두리를 해둔 것이 인상적이다. 루비가 좋아한 색이 빨간 색이고, 그 빨간 색은 중국에서 길한 색이니 일부러 택한 것일까? 아니면 중국의 전통적인 그림 양식 중에 그런 게 있는 것일까? 가족 사진에서 보여주는 빨간 테두리는 아주 특징적으로 보인다. 여러 무채색 중에 루비의 빨간 옷이 확 도드라져 보인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한자 붓글씨는 아마도 직접 쓴 건 아니겠지?' 이름이나 출생지나 이력으로 보아선 전혀 중국과 연관이 되지 않아 이런 상상까지 하면서 보게 되었다. ^^

표지는 아주 호감이 간다. 호기심에 가득찬 한 아이가 빨간 문을 빼족이 열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 순간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걸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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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35
김승희 지음, 최정인 그림 / 비룡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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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바리공주, 버리데기라는 제목으로, 혹은 오구대왕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만큼, 바리의 이야기는 여러 전승이 있고 요즘 들어 나와있는 그림책, 옛이야기책도 무척 많다. 여러 책으로 바리 이야기를 보았지만, 이 책이야말로 정말 소개하고 싶은 바리데기 이야기이다. 그림, 이야기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데다가 서로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고 익숙한 이야기다. 수없이 많은 그림책, 이야기책,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박재동 화백이 애니메이션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한참 되었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 널리 '인구에 회자'될 만큼, 스토리는 드라마틱하고 무대는 광대무변하다.  

한 나라의 대왕이 나라를 이어 갈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점술사의 예언대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줄줄이 딸이어서 일곱 째가 되니 그만 더 보기도 싫어져서 그 아기를 버리라고 이른다. 이 책에서는 왕이 스스로 서둘러 혼례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 '올해 혼례를 올리면 칠 공주를 두시고, 다음 해 혼례를 올리면 세 왕자를 보실 거다' 라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하고 그해 혼례를 올려 스스로 우를 범하고 있으니, 대왕이라고는 하나 인간적인 약점을 가져 화를 부른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죽으라고 울 밖에 산 밖에 던져진 딸은 학이 내려와 날개로 덮어주고 뱀은 다리를 감고도 물지 않아 죽지 않으니, 다시 천길만길 열두 바다에 버려진다. 그러나 귀한 운명을 타고 난 아이라, 지나가던 할미, 할아비가 구하여 결국은 총명하게 자란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는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이야기가 이루어진 시대는 아들을 원하나 이야기는 딸의, 그것도 버림받은 딸의 인성과 효심과 수행에 촛점을 맞춘다. 결국은 온갖 역경을 넘어서 생과 죽음의 길을 인도해주는 무조신이 되니 그 시대적 가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 또한 적지 않다.   

천륜을 저버리고 일곱째 공주를 버린 죄로 왕은 약이 없는 병에 걸리고 만다. 거두어 기른 여섯 딸에게 수양산 큰 바위 밑에 있는 약물을 구해와 아버지의 목숨을 살릴 것인가 물어보니, 모두모두 못 가겠다 한다. 염치는 없지만 마지막 남은 딸 하나, 이미 죽으라고 버린 일곱 째를 찾아나서고 결국은 깊은 산중에서 살던 바리공주의 탄생에 얽힌 비화가 밝혀진다. 그러나 부모를 만난 것이 기쁨이기만 하랴, 탄생에 얽힌 이야기만 해도 마음이 무너질 법한데, 자기를 버린 아비를 구하러 갈지 못갈지도 모르는 수양산에 가라 하고 구할 수 있을 지 없을지도 모르는 약물을 구해오라 하니, '못 가오 못 가오' 하며 한참을 울다가는 고개 들고

'여섯 언니 못 가는 길 어찌 제가 가오리오만은, 이 세상 태어나게 한 부모 은혜 입었으니 제가 가겠습니다.' 라 말한다. 그렇게 바리의 기약없고 정처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여러 가지 전승을 보면 그렇게 나선 바리가 가는 길은 서천 서역 길,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사람들의 생의 경험에서는 가장 멀고 가장 가없이 펼쳐진 길이었으니, 이야기의 스케일은 한없이 커진다.

보통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면 천리를 가고, 두 번 세 번을 짚으니 삼천리라, 우리 강산을 순식간에 지난다. 그리고 신선을 만나고 극락과 지옥을 지나고 무지개를 타고 간다. 신선에게 받은 낙화 한 송이를 던지니 바다가 육지가 되고 다시 한 송이를 던지면 가시문이 열린다. 무장승은 약수를 구하는 바리에게 밑 빠진 독 꽃밭에 물을 삼 년 길어주고, 불씨 없는 불을 삼 년 때어 주고, 무장승과 부부가 되어 일곱 아기를 낳아 주기를 요구하고, 바리는 그걸 들어주고 석 삼 년 아홉 해를 보낸 끝에 약수를 구한다.  

하여간, 한 번 읽기 시작하고 듣기 시작하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이 그림책의 장점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바리데기 이야기는, 무조신의 원류를 찾는 것이어서 원래 신화적인 색채가 강한데, 최승희 시인이 쓴 이 책의 글은 마치 노래같기도 하고 중얼거림 같기도 하여 따라 읽다보면 내가 한판 굿에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하다.  

"던지어라 던지어라 울 밖에다 던지어라 울대 밭에 던지어라. 

던지어라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산대 밭에 던지어라.   

이름은 버렸다 버리데기로 지어 놓고 던졌다 던지데기로 지어 놓고 

울 밖에다 던지어라, 산 밖에다 던지어라." 라든가, 

 

"버렸다 버리데기, 던졌다 던지데기, 죽으라고 버린 아기 어디 가서 찾겠느냐. 

산에다 버렸으면 산에서 찾겠지만 바다 용왕께 바친 아기인데 어디 가서 찾겠느냐. 

천길 만길 버린 자식, 아 아 ....."  

같은 구절들에서는 노래가 느껴진다. 바리공주의 원형인 무가 형식을 살려 쓴지라, 강렬하고도 생생하다. 원형의 느낌이 아름답다.

그림 또한 그 선명한 원색의 색감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면마다 펼쳐지는 그림들은 그 이야기에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이 한편의 독립적인 작품인 양 과감하고 창조적인 구성으로 살아 있다. 어느 쪽을 펼쳐도 한 편의 작품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받쳐주고 있다(아니, 글이 먼저인가 그림이 먼저인가. 누가 누구를 받쳐준다고 할 수 없으리라. 마치 오페라의 혼성 듀엣처럼, 서로 다른 악기의 이중주처럼 그들은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끌어간다). 그 신화적인 내용에 달리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을 그림이다.  
 

여러 바리데기 이야기의 전승 가운데, 이 시대에 새로이 태어나 이렇듯 강렬한 원형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김승희와 최정인의 <바리공주>, 여럿에게 권해 나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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