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의 소원 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소피 블랙올 그림, 시린 임 브리지스 글, 이미영 옮김 / 비룡소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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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빨간 책, '루비'라는 중국의 당찬 여자아이가 만들어내는 밝고도 길한 분위기의 그림책이다. 그냥 있을 법한 이야기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난데없이 오래된 사진이 나타나고, 그게 이 책을 지은 이의 할머니의 '살아있는 이야기'였다는 걸 들으면 더 솔깃하다. 오래된 액자 틀에 끼워진 두 개의 인물, 하나는 주인공 루비의 어린 시절을 그림작가가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쪽은 할머니가 되어 살고있는 진짜 루비의 당당한 사진이다. 그 대비가 주는 공감이 신선하고 호기심을 갖게 한다.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로 하여 부자가 되어 돌아온 중국인 할아버지,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아이들만 해도 백 명이 넘을 만큼 대가족에 큰 집의 주인이다. 너무 많아 펼쳐진 양면의 그림책에 다 들어오지도 못할만큼 많은 식구들이 중심에 할아버지를 두고 가족 사진을 찍는 것처럼 앉아있는 게 재밌다.   

루비는 백 명 중의 한 아이에 불과했고 게다가 여자 아이였지만, 그 당시 보통의 여자 아이들이 걷는 길을 걷지 않는다. 공부를 좋아했고, 남보다 더 많이 노력했고, 스스로 남자애와 여자애한테 주어지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느꼈으며, 할아버지가 기회를 주자 당당하게 그걸 이야기한다. 또 그런 루비의 이야기를 내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깨인 할아버지 덕에 대학 입학을 허가받는다. 루비가 다니게 된 대학에서는 루비가 첫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큰 갈등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루비의 고민을 받아들인 할아버지는 선선히 루비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니까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건 오래된 관습에 반하는 것이었으므로 루비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실은 큰 고민과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게다. 조금 아쉽게, 그런 고민의 흔적이 이 그림책에서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루비의 행운은 그저 선구적인 할아버지 덕분이었을까?  실제의 루비는 단지, 이제 곧 자기도 결혼을 해서 이 집을 떠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 설날을 맞지 않았던가. 미래의 선택에 대한 루비의 갈등과 걱정, 그리고 자신의 희망을 위한 노력 들이 좀더 생생하게 드러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거니까 실제로 안 그랬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면 루비 할머니에 대해서는 존경심은 약간 감해지고 행운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걸.

그림을 그린 소피 블랙올이라는 작가는 이 그림책으로 에즈라 잭 키츠 상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을 정확히 모르니 이 그림이 어렴풋이 중국적이라는 건 알아도 얼마나 정확하고도 섬세하게 잘 표현했는지는 나로선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꽤 익숙하게 보이니, 작가가 중국을 표현해야 하는 그림책을 맡으면서 중국의 그림 양식을 여러모로 관찰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림마다 빨간 선으로 테두리를 해둔 것이 인상적이다. 루비가 좋아한 색이 빨간 색이고, 그 빨간 색은 중국에서 길한 색이니 일부러 택한 것일까? 아니면 중국의 전통적인 그림 양식 중에 그런 게 있는 것일까? 가족 사진에서 보여주는 빨간 테두리는 아주 특징적으로 보인다. 여러 무채색 중에 루비의 빨간 옷이 확 도드라져 보인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한자 붓글씨는 아마도 직접 쓴 건 아니겠지?' 이름이나 출생지나 이력으로 보아선 전혀 중국과 연관이 되지 않아 이런 상상까지 하면서 보게 되었다. ^^

표지는 아주 호감이 간다. 호기심에 가득찬 한 아이가 빨간 문을 빼족이 열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 순간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걸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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