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관찰 도감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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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봄이나 가을이면 들로 산으로 들꽃을 보러 다닌지 얼추 세 해가 되었다. 활동하고 있는 지역내 환경모임에서 계절마다 아이들 서른명 쯤을 모아 생태탐사를 가는 일이다. 물론 그 아이들 새에는 우리 아이들도 언제나 함께 간다. 그렇게 다녀서인지 6학년이 된 딸은 일기에도 들꽃 이야기를 쓰고 집에 와서는 그날 본 조그맣고 놀라운 들꽃 이야기를 자주 화제로 올린다.

손에 쏙 들어가는 야생화 관찰 도감들을 한 손에 들고, 때로 돋보기로 살펴보며 냄새를 맡기도 하는 아이들을 이끄는 것도 행운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진득진득한 진득찰, 가시가 많아 아플 것 같은 며느리밑씻개, 줄기를 꺾으면 노란 즙이 나오는 애기똥풀, 꽃잎이 열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쪽씩 갈라진 다섯개의 꽃잎이라는 별꽃... 이런 얘기들을 곁들이며 아이들과 산과 들을 누비다보니 두터운 식물 도감 종류만도 집에 열가지가 넘게 되었다.

어떤 책은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어떤 책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어 져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책들로, 어떤 책은 꽃마다 나무마다 저마다 가진 이야기로 술술 풀려져나오는 문학의 향기 넘치는 책으로... 진선출판사에서는 아름다운 사진 한 컷 한 컷으로 승부하는 듯한 편집을 해 왔다. 지금 윤주복씨가 지은 이 <식물 관찰 도감>뿐 아니라 다른 책들-예컨데 식물일기, 바다일기, 나비일기 등-도 그 한 컷마다 아름다움에 혹할 만한 무수한 사진들이 빛을 발한다.

꽃을 찾기 어려워도, 설명이 상세하지 않아도, 그냥 사진으로 보는 생물들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반해 이것 저것 갖추게 된 책들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가 아예 식물의 사진을 찍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된 윤주복 님의 이번 책은 더 만족스럽다. 김태정 님이 지은 우리꽃 종류의 책들도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언제나 사진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색깔별로 찾기 좋게 되어 있어 언제나 들고 다니지만, 막상 들판의 꽃과 사진 속의 꽃이 같은지 다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울만큼 사진은 명쾌하지 않았다(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또 실제로 들판에서 꽃을 찾아보기에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정보들.. 백과사전에나 나옴직한 내용들이 반드시 덧붙여진 것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윤주복 님이 지은 이 책은, 실제로 초등학교에 계시면서 아이들과 함께 꽃을 찾으러 나가보고 느낀 아쉬움과 불편함을 반영해서인지, 정말 살뜰하게 편집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싶은 내용들이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쏙 들어있다. 들꽃과 나무꽃이 함께 있어서 좋고, 꽃집이나 친구집들, 학교 마당에서 보기 쉬운 꽃들도 모두 모아서 좋다.

그외에도 논밭을 지나다보면 자주 마주하게 되는 흔하디 흔한,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던 풀들도 드디어 이름을 찾아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흔히 보이나 따로 모아 책으로 나온 것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니,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궁금해할 만한 식물들을 거의 모아놓은 셈인데, 이런 모음이 얼마나 유용한지는 들과 산으로 식물 도감을 들고 다녀본 사람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들고 다닐 책은 아니다. 집에서 곁에 두고 자주 꺼내 보기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고, 들과 산으로 나가기 전이나 다녀온 후에 눈에 박아 온 것들을 찾아내는 데는 좋으나, 아무래도 들고 다닐 책은 아니라 아쉽다. 실물만큼 또렷하고 재깔재깔 꼭 필요한 설명이 들어있는 이런 책을 들고 다니며 볼 수가 없다니!

그래서 출판사에 제안하고 싶다. 일곱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이 책을, 과감히 일곱개로 쪼개서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얇고 말랑말랑한 일곱개의 속 책들이 하나의 통일된 묶음으로 조금 딱딱한 종이 상자(책장에 꽂아두고 낱권씩도 꺼낼 수 있도록 한 쪽이 틘)에 들어갈 수 있는 형태면 되지 않을까? 정말로 이 두꺼운 책을 쪼개서 들고 다니고 싶다. 부제에서 보여주듯,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의 모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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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니콜라이 포포프 지음 / 현암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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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말이 안되는 이유다. 속에 감추어진 이유라는 것도 정말 말이 안되는 이유다.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가? 그만큼 어이없는 전쟁이다. 그야말로 법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나온 대사, '광기, 광기다!'라는 말 그대로다. 한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오더니 그예 전쟁을 터뜨리고 만다. 물론 이곳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전쟁의 포성이 울리지 않는다. 오직 TV에 갇힌 채, 마치 게임처럼 다루어진다. 강산에의 노랫말처럼 그 뉴스는 저녁 식탁에 오른다...

이렇듯 어이없는 전쟁이 일어나자 생각나는 책이 이 책이다. 어린 시절 처참한 전쟁을 겪은 작가 니콜라이 포포프가 쓰고 그린 책. 이 책을 읽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전쟁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책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자라서 평화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썼다 한다. 글자가 없다. 그러나 백마디 말보다 말없음이 더 효과적이라고 느껴진다.

평화로운 들판 조그만 바위 위에 앉은 행복한 표정의 개구리 한 마리.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그 자리, 그 꽃을 빼앗아 가지고는 만족해 하는 쥐 한 마리.(나쁜 놈이다. 한 마디 양해도 구할 줄 모르나.) 그러자 다시 동족을 불러와 되찾는 개구리, 개구리들. (이쪽도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의 평화공존의 제안이 아쉬운 거다.) 그리고 다시 그 쥐, 쥐들. 이렇게 점점 커진다. 으르렁거리며 싸운다.

온갖 수단 방법이 동원되고 무기가 등장한다. 이쯤되면 얘기는 점점 필요없어진다. 오로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전투만 남는다. 포포프가 선택한 엷고 고요한 연두와 초록은 점점 어두워지고 파괴되더니 결국은 짙은 회색과 검정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잿빛, 죽음만이 남은 듯. 푸른 들판과 그 들판에 넘치도록 만발했던 꽃들은 아무도 가질 수 없도록 사라져버렸다. 오두마니 앉은 밉살스런 쥐와 어리석은 개구리에게 남은 것은 시든 꽃과 부서진 우산. 그들의 민망한 시선.

첫 시작의 장을 다시 열어보면 그 따순 온기와 평화의 냄새가 이제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평화의 들판에 있던 모든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번갈아 들추어보면 그 잃어버린 것들에 눈이 시리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 그토록 맹목적으로 일어났던가. 말 없는 그림책의 깊이는 더 안타깝게 온다.

우리처럼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온 민족은 개구리의 입장에 더 민감하다. 원래 개구리의 땅인지, 아니면 공존의 땅인지가 궁금해진다. 원래 개구리 땅이라면 나쁜 침략자인 쥐를 물리쳐야 개구리도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를 지킬 만큼의 힘은 가져야 된다고 백범 김구 선생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민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공존의 공간을 생각해본다. 하나뿐 아니라 둘이 함께 갖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그 너른 들판을, 심술궂은 쥐란 녀석이 함께 하자는 말도 없이 독차지 하려고 할 때, 개구리는 쥐와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는 것 말고 좀더 다른 시도를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심술궂고 막되먹은 쥐라는 녀석도 조곤조곤 이야기해보면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같이 즐기자, 이 향기를-' 이렇게.

어이없는 전쟁과 그 허망한 끝을 보며 아들과 함께 그런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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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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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정말, 여전히 가슴이 막막해지는 나라다. 때때로 온갖 고생만 하다 결국 조금 허리 펴고 눌 자리 찾은 시점에 돌아가시고 마는 우리네, 혹은 나의 어머니를 보는 것만 같다. 얼마전 읽은 책 <지구로부터의 귀환> 이라는 책을 보면 전 우주적인 시각에서 지구를 보면 그 민족, 국가간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데... 요즘에는 심심찮게 내셔널리즘을 국수주의 쯤으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긴, 민족, 국가라는 개념보다 인류, 혹은 전 생물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더 보편적이고 오히려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내 민족 내 국가만 잘 되어서 어디 될 일이던가? 하지만 말 안되는 전쟁을 일으키는 거대하고 부도덕한 제국이 여전히 말이 되고, 오늘도 생명이 스러져간다. 부여받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자들 그 누구인가? 이렇듯, 우리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과 따로이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전 지구적 모순의 온갖 형태가 이땅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실험되고 있는 마당에, 민족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스스로의 숙연함을 지닌다.

이진선이라는 혁명가의 지난 삶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출렁인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보장되기 위한 전제조건인 인류적 자유와 행복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놓고 한 생애를 고스란히 내맡길 수 있었던 그의 순정한 삶은, 그의 삶의 무대가 되었던 이땅,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실질적 역사와 함께 깊은 울림을 준다. 분산되어 오던 사건 중심의 역사가 한 개인에게 거미줄과 같이 연결되어 당위와 우연, 필연으로 엮어진다.

결코 따라걸을 수 없는 길이었겠지만, 그의 뒤를 따라밟으며 선명히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한 인간의 양심과 신념의 족적을 밟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최소한 한발짝 건강해지리라. 허구인지 사실인지 하는 궁금함이 들었지만, 수많은 각각의 이진선들의 삶을 이리저리 엮은 픽션이라한들, 그것이 어찌 허구이기만 하랴 싶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훌쩍 뛰어넘는, 진실하기 위해 노력한 삶의 기록이 한동안 내마음에 쿵! 하고 내려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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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6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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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창작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구나.. 그렇게나 많은 재밌는 그림책들을 읽었는데 또다시 이런 즐거운 그림책을 보게 되다니! 그림도 익히 보던 그림들과 또 다른 새로움이 있고, 내용도 유쾌하고 따뜻하기 이를데 없다. 어쨌거나 배고픈 늑대는 꼬마 돼지들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런데 배만 고픈 것이 아니라, 언제나 홀로인 듯하고 아마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을 법한 늑대는 심술이 가득하다.

'쳇! 신나는 크리스마스 좋아하네! 모조리 잡아먹어 버릴 테다... 고것 참 맛있겠군!'
그리곤 뛰어가더니 아기 돼지들만 잡는게 아니라 그저 부수고 망가뜨린다. 심술! 그러다 그만 꽈당! 하고 넘어지는데 바로 자기가 부러뜨린 것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심한 부상에 팔다리, 입에까지 붕대가 칭칭 감겨져있는 불쌍한 신세다. 여기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보호를 받게 된 힘세고 심술 가득한 늑대와 보호 하게 된 약하지만 태생적으로 착한 듯한 아기 돼지들. 일견 여기서 뻔한 결론이 날 것 같다. 늑대의 후회, 사과, 개과천선. 아기돼지들의 용서와 화해 등등..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때 되어가는 걸 보면 그게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지만, 거기로 가는 길이 너무나 유쾌하고 따뜻하다. 늑대는 묶여있어도 큰소리고 심술도 변함없다.

그러나... 정말로 기분좋은 오해를 통해, 억울하고 분해서 흘린 눈물은 그만 그대로... 마음속에 어쩌지 못하고 피어오르는 사랑의 눈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고 사라지는 늑대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정말 신기한 일을 이루어낸다. 아들과 엄마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그림, 따뜻하고 유쾌한 내용이 주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오해가 계속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해피엔드라고 해야되나?

이건 그림책의 주제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이야기지만,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지는 못했다. 배고픈 늑대는 남들 다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날, 그 고픈 배를 이제 어찌하나? 이제 돼지도 못 잡아먹게 되었는데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릴없이 했다. 늑대도 배부르고 기분좋은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작가의 다음 그림책 쯤에 나올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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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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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었다는 책이 보고 싶었다. 분야에 상관없이 대부분 장르를 넘나들며 잡다하게 또 깊지 않게 읽는 나에게, 그의 독서법을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의 잡다하게(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는 의미에서) 또 깊게 읽는 독서법에 관심이 갔다. 전문적인 글을 쓰기 위한 독서라...

지은이는 우선 우주, 우주 비행에 관해 즐거운 안내를 가볍게 시도한다. 상하-종횡-고저가 없는 우주라는 세계, 로켓의 발사와 우주선 내부의 신기한 현상들과 간단한 해설들, 우주의 오아시스라는 지구와 지구밖 전 우주의 판이한 상황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슬쩍 충족시켜준다. 난해할 정도로 전문적이지 않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우주적 사실들을 재미있게 풀어준다.

그리고는 우주 비행사의 우주 체험에 대해 반복적이다 싶을 만큼의 인터뷰를 통해 꼼꼼히 보여주고자 하는데, 뒤로 넘어갈수록 그 인터뷰는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차만별인 우주 비행사들의 체험에서 공통적이거나 차별적인 점들을 인터뷰로 드러낸다. 우주비행사로서 정신적인 큰 변화를 겪은 사람들, 혹은 나사에서 우주 비행사로 일한 사람들의 정치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지향, 그런 사람들의 신과 우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광기와 정사'라는 장으로 묶여진 앨드린의 일화들은, 어쩌면 개인적 특성으로 볼 수 있는 여러 반응들까지도 장황하게 나열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우주 비행사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라고는 보기 어려웠던 앨드린의 일화는 왜 그만큼 강조되는가 의아했다.

여러 길을 거쳐 마지막 장 '우주인으로의 진화'까지 보고나니, 처음 시작할 때는 대체 이 제목,<우주로부터의 귀환>이 보여줄 수 있는 것 말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너끈히 충족되었다고 느껴진다. 뇌사나 임사체험 등 작가의 관심분야인 영혼, 혹은 정신의 세계에 대한 집요한 물음이 이어진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마르지않는 탐구의 마음이 작가로 하여금 이 우주비행사라는 특별한 위치에서의 시선을 들여다보고 싶게 했으리라.

지구를 떠나 적막의 세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 그 시선의 느낌. 아마도 신의 눈과 같은, 적어도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작가의 호기심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우주에서 저 멀리 존재하는 지구를 본다. 엄지 손톱 하나에 다 가려질 만한 크기의 푸른 마블과도 같은 지구. 저 유일한 생명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끊이지않는 분쟁과 파괴, 무분별들에 대한 순간적 통찰이 가능한 공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그 통찰의 내용은 무엇이고 깊이는 어떨까 하는 질문을 떠올려본다.

마지막 슈와이카트와의 대담은 그런 질문에 답하는 한 지적인 우주 비행사의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간신히 우주 비행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완전히 무의미하게 끝내버린 우주 비행사도 많이 있다. 그들의 우주 비행은 비행 계획과 실험 계획만으로 끝난다. 스위치, 다이얼, 계기, 엔진 등을 조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모든 것이 기계적인 것으로 끝나고 의미 부여 따위는 생각한 적이 없다.'라는 말이 담고 있듯, 우주 비행의 한 측면은 실제로 이런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과 지구의 관계를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내 눈 아래에서는 마침 제3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간끼리 서로 죽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인간과 인간 관계도 중요하지만, 인간이라는 종과 다른 종과의 관계, 인간이라는 종과 지구의 관계를 더욱 생각하라는 것이다...'

지금도 푸른 지구 한 가운데 부도덕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해관계에 의한, 광기라고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파괴와 살상이 일어난다. 그냥 평화롭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아마 평생동안 우주 비행의 경험을 하지 못할 우리들에게는 푸른 생명의 별 지구를 온전히 이해할 기회가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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