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니콜라이 포포프 지음 / 현암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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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말이 안되는 이유다. 속에 감추어진 이유라는 것도 정말 말이 안되는 이유다.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가? 그만큼 어이없는 전쟁이다. 그야말로 법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나온 대사, '광기, 광기다!'라는 말 그대로다. 한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오더니 그예 전쟁을 터뜨리고 만다. 물론 이곳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전쟁의 포성이 울리지 않는다. 오직 TV에 갇힌 채, 마치 게임처럼 다루어진다. 강산에의 노랫말처럼 그 뉴스는 저녁 식탁에 오른다...

이렇듯 어이없는 전쟁이 일어나자 생각나는 책이 이 책이다. 어린 시절 처참한 전쟁을 겪은 작가 니콜라이 포포프가 쓰고 그린 책. 이 책을 읽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전쟁의 어리석음을 이해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책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자라서 평화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썼다 한다. 글자가 없다. 그러나 백마디 말보다 말없음이 더 효과적이라고 느껴진다.

평화로운 들판 조그만 바위 위에 앉은 행복한 표정의 개구리 한 마리.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그 자리, 그 꽃을 빼앗아 가지고는 만족해 하는 쥐 한 마리.(나쁜 놈이다. 한 마디 양해도 구할 줄 모르나.) 그러자 다시 동족을 불러와 되찾는 개구리, 개구리들. (이쪽도 이럴 수 밖에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의 평화공존의 제안이 아쉬운 거다.) 그리고 다시 그 쥐, 쥐들. 이렇게 점점 커진다. 으르렁거리며 싸운다.

온갖 수단 방법이 동원되고 무기가 등장한다. 이쯤되면 얘기는 점점 필요없어진다. 오로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전투만 남는다. 포포프가 선택한 엷고 고요한 연두와 초록은 점점 어두워지고 파괴되더니 결국은 짙은 회색과 검정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잿빛, 죽음만이 남은 듯. 푸른 들판과 그 들판에 넘치도록 만발했던 꽃들은 아무도 가질 수 없도록 사라져버렸다. 오두마니 앉은 밉살스런 쥐와 어리석은 개구리에게 남은 것은 시든 꽃과 부서진 우산. 그들의 민망한 시선.

첫 시작의 장을 다시 열어보면 그 따순 온기와 평화의 냄새가 이제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평화의 들판에 있던 모든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번갈아 들추어보면 그 잃어버린 것들에 눈이 시리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 그토록 맹목적으로 일어났던가. 말 없는 그림책의 깊이는 더 안타깝게 온다.

우리처럼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온 민족은 개구리의 입장에 더 민감하다. 원래 개구리의 땅인지, 아니면 공존의 땅인지가 궁금해진다. 원래 개구리 땅이라면 나쁜 침략자인 쥐를 물리쳐야 개구리도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를 지킬 만큼의 힘은 가져야 된다고 백범 김구 선생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민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공존의 공간을 생각해본다. 하나뿐 아니라 둘이 함께 갖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그 너른 들판을, 심술궂은 쥐란 녀석이 함께 하자는 말도 없이 독차지 하려고 할 때, 개구리는 쥐와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는 것 말고 좀더 다른 시도를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심술궂고 막되먹은 쥐라는 녀석도 조곤조곤 이야기해보면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같이 즐기자, 이 향기를-' 이렇게.

어이없는 전쟁과 그 허망한 끝을 보며 아들과 함께 그런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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