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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길게 자란다면 ㅣ 내 친구는 그림책
타카도노 호오코 글 그림, 예상렬 옮김 / 한림출판사 / 2003년 1월
평점 :
내 머리가 진짜 진짜 길게 자란다면--
여자 아이 셋이 머리 기르는 이야기를 하다가, 어깨 아래로 늘여뜨릴만큼 긴 생머리의 두 여자아이 말고, 깡총한 단발머리인 수진이가 "겨우 그거야? 나라면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더 길게!" 기를 거라고 장담을 한다. 정작 혼자 딸랑한 단발머리면서, 얼마나 길게 기를 건지를 보여주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서서 한껏 키를 늘려가면서 호기롭게.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그 끝간데 없는 상상력의 소유자, 수진이가 하는 말은 이렇다. 머리를 엄청나게 길게 기를 건데, 얼마나 길 거냐 하면, '다리 위에서 땋은 머리를 늘어뜨려 강에 있는 물고기를 잡을 만큼!' , '양 옆으로 땋아서 팽팽하게 나무에다 묶으면 우리집 빨래를 모두 한꺼번에 널 수 있을만큼!' 이고 (빨래가 마를 동안 심심할까봐 책을 열 권이나 읽는다는데, 지금은 <개구쟁이 해리>를 읽고 있다), ''추운 날 밖에서도 잘 수 있는데, 그건 긴 머리를 김밥처럼 둘둘 말면 훌륭한 이부자리가 되니까!' 그렇고, .... 수진이의 막힘없는 상상에 동화되어 친구들은 걱정을 한다. "근데 머리 감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거기서 또 수진이의 생각이 뻗어나간다. 도대체 주저함도 없고 뭐가 문제가 되냐는 듯, 머리 감는 이야기와 손질하는 이야기, 파마한 머리가 작은 숲을 이루어 작은 새, 다람쥐, 벌레들이 모두 모여 함께 사는 환상적인 상상에 이르자, 급기야 그걸 듣던 두 아이는 걱정은 사라지고 꿈을 꾸듯 말한다. "음! 그렇게 되면 진짜 좋을 것 같아!" 그림에는, 가운데 수진이가 자랑스런 얼굴로 앉아있고, 양 옆에 두 여자 아이들이 꿈꾸는 듯한 얼굴로 수진이를 우러러보듯 보고 있다. 아, 한없이 귀여운 아이들, 놓치고 싶지 않은 너무 사랑스러운 순간!
수진이의 상상으로 펼쳐지는 그림들이 다- 환상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강가에 팬티만 입고 누워 구불구불한 강물에 그 긴 머리 타래를 물살에 싣고 있는 그림에 압도되었다. 빛나는 상상력이 아닌가! 물론, 샴푸를 네 통이나 쓰고 절대로 강물에 그 머리를 담그면 안 되는 거지만... 상상 속의 샴푸는 환경 오염이 없다고나 할까. ^^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자연스럽게 "우리라고 가만 있을 수 없지!" 가 되었다.
엄마: 양쪽으로 길게 땋아 묶어놓으면, 줄넘기를 할 수도 있어!"
딸(중1): 미술 시간에 붓을 안 가져왔다, 그래도 안 혼나고 붓으로 쓸 수 있어!
아들(초2): 자전거타고 다닐 때 추운데 목도리로 칭칭 감으면 되겠다. (야야, 균형잡기 어렵겠다!)
엄마: 샛별학교 도서실 갈때, 땋은머리 휙, 던져서 창문에 걸고 그것 잡고 그리로 올라가면 되겠다! (엄마, 계단 놔두고 왜 그리로 가? 야야, 재밌잖아! 운동도 되고...^^)
딸: 우리집 대따 추운데 방석도 하고 그 안에 발도 쏙 넣으면 진짜 좋겠다!
엄마: 우리집(13층)에 불나면, 끝을 걸어놓고 창문으로 타고 내려가면 돼! (엄마, 끝이 불에 타버리면 어떡해! 앗, 그럼 그건 안되겠다!)
아아, 재밌다. 재밌는 그림책은 우리를 이렇게 엮어준다. 내친 김에 그 긴머리로 줄넘기를 하는 수진이를 그려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재미있게 노는 걸 알면 작가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