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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클라우디아 슈라이버 지음, 임정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지만, 젊은 여자 엠마는 마치 오지에서 사는 듯한 삶을 혼자서, 산다. 알고보면 그 여자의 어린 시절은 냉혹하고 비열하거나 무력한 어른들에 둘러싸인, 지리멸렬한 것이었다. 농장과 도축을 함께 하는 그녀의 집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은 동물들, 그 중에서도 암퇘지였다. 어느날 우연히 우리 속의 돼지 위로 떨어진 그녀를 내치지 않고 새끼처럼 받아준 암퇘지가 그녀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그런 어린 시절을 살았던 여자이다. 야차같은 어른들의 생도 세월이 끝내고, 그녀 엠마는 혼자서 농장과 도축을 함께 하는 삶, 그녀가 아는 유일한 방식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날것에 가깝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한 순간, 시인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털보' 아저씨로 인해 엠마의 생은 틈새를 벌린다. 털보는 물 위의 집을 공권력에 의해 빼앗기자 생을 거둬버리지만, 엠마는 그가 죽자 말을 잃는다. 털보로 인해 가족과는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 엠마는, 그가 죽자 동물들과 식물, 돌들을 유일한 친구로 느끼고 산다. 그녀는 어떤 고상함과도 상관이 없지만, 본질적으로 우아한 삶을 산다. 그녀가 기르던 돼지를 골라 도살을 하는 장면은 전율을 일으킨다. 어차피 죽어야 할 운명의 돼지는, 엠마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과 위로의 속삭임과 함께, 한줌의 불안조차 없이 순식간에 '정확히 찔려' 그의 행복했던 생을 마감한다. 이런 장면으로.
"사랑하는 돼지, 내 어린 동생,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널 사랑했단다. 참 많이 사랑했어. 거 봐, 아프지 않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잖아. 안녕, 내 돼지. 잘 가. " 목의 출혈이 점점 잦아들더니 돼지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엠마의 단단한 팔에 안긴 채.
어느 날 엠마에게 마치 태풍에 휘말려 새 한마리가 던져지듯, 남자 하나가 던져진다. 그는 정말로 안 좋은 상황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우아한 삶을 살아왔지만, 항상 뭔가 추진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언저리를 조용조용 살아왔다. 그는 얼마전에 췌장암을 선고받았다. 난데없이. 그는 언저리의 삶으로부터조차 내쳐지는 불공평함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의 시간이 엉뚱하게도 엠마와 함께 얽혀든다.
헨델의 음악과 음식만들기를 사랑하는 그 남자 막스는, 그리고 돼지와 수탉과 함께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던 여자 엠마는 서로 부딪치고 멀어지고 다시 바라보고 하기를 거듭하다 그만 진짜로 사랑을 한다. 그들에게는 위안이고 평화인 사랑이었다. 먹고, 자고, 사랑하고, 침묵하고, 하늘을 보고, 말하고, 침묵하고, 사랑하고, 자고, 먹고 하는 그런 사랑. 그러다 이런 일도 생긴다.
막스: 저기, 엠마, 코코뱅 좋아해? / 엠마: 뭐, 야한 거야? / 막스: 아니. (웃음) 포도주로 요리한 닭고기. 한 번 먹어볼래? / 엠마: 응, 좋아. 필요한 거 준비할 게. 뭐가 필요해? / 막스: 포도주하고 닭고기.
엠마는 난생 두 번 째로 시내 외출을 한다. 막스가 오기 전에는 한번도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엠마가 용기를 낸 그날의 외출에서 사온 것은 중고 시디플레이어와 헨델의 음반 세 장, 그리고 포도주. 닭고기는?
여기서 작가인 클라우디아 슈라이버의 유머 감각이 발휘된다. 좀 썰렁한 유머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읽는 이들의 둔한 머리를 마치 나무 망치로 탁, 내리치듯 한다.
농장으로 돌아온 엠마는 닭을 준비한다. 마당을 돌아다니는 한 마리를 잡아 오른손에 작은 손도끼를 들고는, 나무 등걸 위에 닭 목을 올리더니 능숙한 솜씨로 목을 내리쳤다. 닭 머리가 진흙 속을 구른다. 막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니다! 닭은 목이 없는 채로 버둥거리다가 땅으로 풀쩍 뛰어내려 막스 쪽으로 풀쩍풀쩍 뛰어온다. 마치 막스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왜 하필이면 코코뱅 요리냐고?" 막스는 헉헉댄다. 대체 이게 뭐야? 정말 끔찍해...
엠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닭고기를 원했잖아?" "목을 치라고는 하지 않았어!" "머리가 달린 채 요리할 거야?" "무슨 끔찍한 소릴!" "산 닭을 털과 함께 포도주에 넣을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난 시장에서 산 제대로 된 닭고기를 원해. 비닐 포장된 냉동 닭이면 더 좋고." 닭의 피로 온몸이 얼룩진 엠마는 팔을 허리에 얹은 채 막스에게 다가왔다. "그럼 그 닭은 어디서 온 것 같아? 시장에서 파는 냉동된 닭들 말이야. 자살이라도 했을까?" "하지만 그런 닭은 이렇게 피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막스는 이미 엠마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주 맛있는 코코뱅을 먹으려면 어디에선가는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져야 했다. "원래 그런거야. " 엠마의 답은 간단했다. "어떤 고기도 원래는 얼굴이 있었잖아.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죽음을 감수해야 해. 그게 싫으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 "
그렇네.
엠마와 막스는, 이렇게 함께 산다. 잠시 동안...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참혹하게 몰려드는 고통에 시달리던 막스가 엠마의 무릎 위에서, 부드러운 어루만짐과 속삭임 속에서, 순식간의 죽음을 맞이할 때 까지. 엠마는 떨면서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처럼.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당신을 사랑했어. 정말 많이 사랑했어. 그것 봐, 안 아프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내가 약속했잖아. 안녕, 나의 막스. 잘 가, 내 사랑 막스. "
이런 일들이 있다. 어딘가에서는.... 신비롭다. 돼지를 죽여서 소시지와 햄을 만들어 팔아 먹고 사는 여자 엠마가 알고 있는 삶이란 건 그렇다. 모든 생명체는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삶과 죽음은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절대로 피를 보며 돼지를 죽여서 소시지와 햄을 만들어 볼 일이 없는 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가 흐르지 않는 냉동 돼지고기를 사서 요리를 해서 식탁에서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돼지로 태어난 게 잘못이지! 게다가 내가 요리하고 먹는 건 얼굴 있는 돼지는 아니잖아. 얼굴 있는 돼지한테는 나는 손도 안댔다구! 손대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 끔찍하게도.'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는 평범한 이야기인 것만 같은데, 그걸 보고 이런 생각들이 남을 줄 예상치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의 질서, 자연이 돌아가는 방식, 존재하는 것들의 행복한 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줄이야. 이거야말로 작가에 대해, 작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시작한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