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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녀석 맛있겠다 - 별하나 그림책 4 ㅣ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1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4년 6월
평점 :
오마에 우마소다나 --
<고녀석 맛있겠다>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목이다. 어쩐지 이름처럼 들리지 않나? ^^ 일본인들이 들으면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읽어보면 어쩐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들리는 것이다. '오마에' 라는 말은 바로 앞에 있는 상대에게 '너, 자네' 이렇게 부르는 말이니 딱 먹이를 보고 '너, 맛있겠다' 라든가 '고것, 맛있겠다' 라고 하는 말인 셈이다. '고녀석 맛있겠다' 라고 읽기를 시작해서 이제는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그 말이 더 재미있고 재치있게 들린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책을 그리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 번역되어 나온 여섯 권 중 영유아를 위한 책을 제외한 네 권을보았는데- 척 보면 미야니시 타츠야 책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는 책들이다. 그림에서도 아주 특징적이고, 내용에서도 그렇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그림은, 한마디로 자유분방하다. 아주아주 독창적이고 보는 게 유쾌하다. 아이들 그림을 보면 필요에 따라 팔이 쑤욱 길어진다든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그린다든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낌이 오는대로만 그린다든가 해서 어른인 우리가 보기에는 오히려 아주 창의적으로 보이는데 이 작가의 그림이 바로 그렇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를 하면 읽는 내내 그림을 보면서 킥킥, '우와~' 하면서 재미있어한다. 여기 서서 저쪽을 건드리는데 전혀 문제가 안되게 그냥 팔이 쑤욱 길어져버리는 그림, 바로 틀에 매이지 않은 그림을 보면서 아이나 어른이나 유쾌한 해방감을 느낀다. '맞아, 어려울 게 뭐 있어? 문제는 그림을 어떻게 잘 그려야하나가 아니라구! ' 이런 뻥 뚫려버린 기분으로 그림책을 만난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그렇게 편한데, 실은 아주 섬세하게 계산된 그림들이다. 주인공을 표현한 것이나 배경이나, 하나 소홀한 것이 없이 잘 짜인 구도 속에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도록 배치되어 있다. 선명하고 단순한 색상의 선택도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드러내고 싶은 것은 최대한 강조되고 생략될 것은 철저히 사라져버린다. 그런 그림을 보며 아이들은 완전히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다양한 나이, 유치원 연령대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심지어는 중학생까지도) 많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 책을 읽어주었지만, 집중하지 않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일단,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통해 본 미야니시 타츠야의 발상은 아주 신선하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일단 엉뚱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말이 되는 엉뚱함이다. 그러니까 상식을 벗어나 허를 찌르는 유모어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육식공룡 티라노와 갓 알을 깨고 나온 연약한 초식공룡 안킬로사우루스 사이에 엉뚱하게 성립되는 부자 관계가 그것이다. 우리는 일단, 동물생태학자 콘라드 로렌쯔가 증명한 '각인' 에 대해 조금씩 알고 있는데, 알을 깨고 나온 오리들은 처음 만난 누군가를 엄마로 생각하고 따라다닌다는 이론이다. 아기공룡이 알에서 깨어나와 외로와 울면서 걸어가다가 처음 만난 누군가는 티라노, 처음 들은 말은 "고녀석 맛있겠다"이니 이 책에서처럼,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기 공룡은 티라노를 보고 매달리며 "아빠!" 라고 외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슬펐어요, 무서웠어요" 다. 이제 막 태어나 아무 것도 익히 아는 게 없는 아기 공룡은 티라노의 첫 말을 그대로 '그건 아빠가 불러준 내 이름'으로 받아들인다. 이 부분을 처음 보았을 때는 나도 그랬고, 듣는 아이들도 그랬는데, 우선 "엥??" 그리고나서 " !! " , 곧이어 "우하하~ " 이거나 "크흐흐~" 이다.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그러면서도 그럴싸한 쪽으로 이야기가 나아간다.
아빠라고 불리면서 그만 아빠라는 존재가 되어버린 티라노는, "어, 어!" 하면서 그만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누가 나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매달리며 의존하는가 말이다. 아기 공룡의 천진하고 맹목적인 사랑에는 그 어떤 맹수라도 녹아버릴 듯한 데가 있다. 미야니시 타츠야는, 바로 이것, 사람들이 기대하는 '선한 마음'의 힘을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그의 책에는 '도대체 나쁜 마음이라는 게 무엇이지? '라고 묻는 듯한 천진난만한 존재가 등장해서 상대의 심술궂거나 포악한 마음을 녹여버린다. 상대의 악한 동기를 무력화시키는 선한 마음, 그것의 따뜻하고 위대한 힘을 믿는 것이 내 사상이다, 라는 듯 이 작가는 자신의 책들에서 여러 번 그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이렇듯 엉뚱하고 이렇듯 유쾌한 방식으로. 나도 그랬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이 대책없이 따뜻한 사상에 모두 녹아버린다. 실은 현실성도 없는 내 마음 속의 착함이 내 입가에 슬며시 미소로 번져나는 것이다.
그림책 안에서, 상식을 뒤집는 엉뚱한 발상에 잠시 유쾌해지고, 자유분방한 그림에 마음이 둥둥 자유로와지는데, 거기에다가 선하디 선한 마음에 공감하며 흐뭇하게 전염되기까지! 요모조모 따져봐도 어린이 그림책이 갖추었으면 하는 요소를 골고루도 챙겨갖고 있으니, 이 작가가 어린이의 마음을 꿰뚫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그림책을 즐겨보는 어른의 마음까지도! ^^ 이래저래 보는 동안도 즐겁고 보고 나서도 잠시 뭔가 남아서, 뜻밖의 선물에 덤까지 받는 듯 기분좋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