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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365 ㅣ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2
장-뤽 프로망탈 지음, 조엘 졸리베 그림, 홍경기 옮김 / 보림 / 2007년 11월
평점 :
물론 수학적이기도 하고 환경문제를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무래도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1월 1일부터 시작해서 1년 365일 동안 날마다 한 마리씩 펭귄이 배달되어 온다? 누가 무엇때문에 보내는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물론 독자에게는 오리무중이지만 주인공 가족, 그 중 어른들은 짐작은 하고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니 1년 동안이나 내 소임이려니, 하고 받을 수도 있었을 거고) 날마다 늘어가는 펭귄, 무슨 선물 상자도 아니니 구석에 쌓아두고 있을 수만도 없다. 살아있는 생물이 날마다 늘어나고 게다가 가족 마냥 함께 살아가면서 또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이야기가 가지를 치며 진화하면서 재미를 보탠다. 중심 줄거리는 "도대체 왜? 누가? 언제까지? "이니 그것에 대한 기대는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기면서 점점 더 커져간다. 제목이 <펭귄 365>이니 365일을 향해 치달으면서 고조되는 즐거움.
그렇게 중심 줄기는 점점 자라는데 그 줄기에서 벋어져 나오는 가지도 자란다. 펭돌 펭식 펭순 하며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우글우글 함께 모여 TV를 보기도 하면서 화목한 듯 하더니 급기야는 집을 점령당하고는 위기감을 느낀다. ^^ 수백마리 펭귄들이 매일매일 물고기를 먹어대고, 덥다고 짜증을 내고,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면...? 온 식구들은 드디어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당연! ^^) 엄마는 빠직빠직 수돗물을 뿌려대고 누나는 펭귄 요리를 만들어버리겠다며 프라이팬을 들고 뛰어다닌다. 그 와중에 아빠는 계속 새로운 정리법을 찾아낸다. 그게 또 수학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러운 대사. "어떻게 보면 사람이나 펭귄이나 다를 것도 없어요. 펭귄처럼 살고, 펭귄처럼 생각하고, 펭귄처럼 꿈꾸고, 우리는 마침내 펭귄이 되어 버렸어요."
그렇게 꽉 꽉 거리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다 갔다. 12월 31일, 집 안에는 펭귄 365마리가 가득 들어차 비좁은대로 펄쩍펄쩍 뛰면서 나름대로 놀고있고, 이 집 가족은 실외 공간을 밀려난 채 잔디밭에서 송년 파티를 열고있다. 한겨울이라 추울 테지만 실내를 빼앗긴 채로, 그러나 파티복으로 한껏 성장한 채-여자들은 추워서 온몸을 오그린 채 ^^- 샴페인을 터뜨리는 거다. 아마도 이런 말들을 하면서. "아, 정말 특별한 한 해였어~ (한숨) " 그리고, 딩동!
이 모든 이야기의 원인 제공자인 생태학자 삼촌이 나타났다. 그래, 이 모든 황당한 일들의 근본 원인은 바로 지구 온난화! 펭귄의 보금자리인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줄어드는 바람에 펭귄을 북극으로 이사를 보내기 위한 것. 보호동물을 다른 데로 내보내지 못하는 국제 규정을 슬쩍 비틀어 은밀한 방법을 택한 것. 게다가 수컷 182마리 + 암컷 182마리 + 홀로 파란 발이 멋진 펭돌이 = 365마리, 그래서 딱 맞아 떨어진단다. 그렇게 엉뚱한 일의 주인공인 삼촌은 냉장차에 펭귄을 모두 싣고 북극으로 떠난다. 딱 한 마리 펭돌이만 선물처럼 남기고.
드디어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다음날 아침 또다른 배달이 오기 전까지만 말이지. "딩동!" 하더니 커다란 상자가 오고, 그 안에는....!
역시 온난화의 희생자가 떡하니 들어있다. 마지막 장까지 고조되던 즐거움이 한껏 즐거움을 선사한 다음에도 마치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책날개로 덮여있는 면지를 들춰보면, 펭귄과 엄마 아빠 누나들이 혼비백산 달아나는 그림이 나타나는데 아마 이 장이 백미가 아닐까 한다.
흑백과 회색, 주황색과 하늘색과 갈색, 이렇게 단조로운 색상으로 그림책 한 권을 다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더할나위없이 충분하다. 오직 검고 희기만 한 펭귄을 어떻게 더이상 부각시킬 수 있을까? 혼자 특별한 펭돌이를 찾는 재미도 있따. 단순한 색상에 그림체도 단순해 보이지만, 식구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는데다가 계속 적절하게 바뀌는 등, 그림 하나하나의 표현법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게다가 덧붙여, 캐릭터를 살펴보는 즐거움도 뺄 수 없을 듯. 엄마는 엄마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이 황당한 상황에서 적당히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며 비정상적인 환경에 놓인 정상인의 심사를 나름 대변한다. 아빠는? 네모난 뿔테 안경을 끼고 일상의 자잘한 고민 따위야 무슨 상관이랴 싶은 얼굴로 태연자약하게 펭귄을 수학적으로 멋지게 정리하는 아빠다. 삼각형에다가 사각형을 만들더니 육면체도 만들면서 적응해나가는 것에 의의를 두는데 이 놀라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흔들림이 없는 게 아주 매력적이다. ^^ 막내인 아들은? 아마도 아이들의 심리를 대변할 듯한 이 아들은 언제나 이 흥미진진한 나날을 절대절대 표내는 법 없이 은근히 즐기고 있다. 아니, 혹시나 이 재밌는 상황이 빨리 끝나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은근히 불안해하겠지. 그림자처럼 아빠를 도와가며, 누나와 엄마가 더이상 못참아~ 하고 악악 거릴때에도 그저 이러다 펭귄들이 다 쫓겨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얼굴. 아이들과 함께 그 아들을 바라보는 게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이 아들의 얼굴은 사실 이 책을 함께 보고있는 아이들의 얼굴과 닮은꼴이다. 절대절대 화내는 법 없이 이 귀여운 애완동물들과의 동거를 맘껏 즐긴다. 어떤 황당한 상황이 벌어져도, 어떤 난처한 일을 당해도 애완동물들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모두모두 감수하는 자세가 익숙하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그러하니까! 이렇게, 난처한 상황을 직면하여 나름대로의 개성을 펼치는 이 집 식구들에 감정 이입을 살짝 하고 보면 이 그림책은 몇 배 더 재미있어진다.
희한한 그림책이다. 도서관에서 초등학교에 안 들어간 유아들에게 읽어줄 때, 꽤 길다 싶었는데도 모두모두 호기심에 눈을 빛내며, 또 낄낄대고 즐기면서 들었다. 그들에게 수학이, 지구 온난화가 대수랴! 이야기의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초등학생들은 여러가지 덧붙여가며 더 즐거워한다. 이야기도 수학도 지구 온난화도 그들에겐 대수다. 주인공 아들과의 감정 이입도 중요한 열쇠다. 그뿐이랴? 고등학생인 딸도 어른인 나도 즐겁다. 요모조모 즐거운데 표현의 독창성을 보는 즐거움이 더 보태진다. 물론 어린 아이들이 그걸 놓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그림책이란 존재는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들여다보다가 보면 계속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보태주는 법이다. 그림책 한 권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이나 어른이 함께 즐거워하고 유쾌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