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직박구리 - 삐뽀 선생님의 동물 생태 동화 1 삐뽀 선생님의 동물 생태 동화 1
후나자키 요시히코 지음, 문명식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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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재밌다. 삐뽀 선생님 이야기가 시리즈로 여럿 있다는데 그 중 첫 권이다. 동물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갖고있는 생물학 교수인 삐뽀가 숲 속 집에 있는 동안 주변 동물들과 겪는 이야기들인데, 자연스럽고도 아기자기 재미있다. 평소에 자연 생태적인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아서 어떻게 이런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아이들과 함께 나눠가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곤 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참 재미있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보기에 그림책처럼 부담없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하다. 지식의 전달에만 주안점을 둔 게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도 펼쳐진다.

삐뽀선생님이 자작나무 가지 끝에서 지저귀는 세 마리 직박구리의 대화를 듣는다. (여기서, 내가 먼저 이 세 마리 새들의 이야기가 뭘까? 하고 나름대로 상상해 보고 나서 보면 훨~씬 재미있다) 삐뽀는 동물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으니 그 대화 내용은, 사실은 이렇다.

직박구리 1: 이봐! 이 잎사귀 뒤에 있던 도롱이벌레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고계신가?

직박구리 2: 이봐! 꼭 내가 훔쳐먹은 것처럼 말하잖아? 나한테 조심하는 게 좋으실텐데?

직박구리 3: 이봐! 나는 도롱이벌레처럼 맛없는 먹이는 드시지 않는다고!

^^ 그 세 마리는 나무 위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정작 도롱이벌레는 그 한 귀퉁이에서 나무껍질이랑 잎사귀조각으로 돌돌 말린 집 속에 든 채로 길다랗게 실에 몸을 매달고 달려있다. 잔뜩 못마땅한 얼굴이다. 그리고 다음 장, 도롱이벌레처럼 먹히는 신세의 벌레들이 여럿 나와서 자기들의 하소연을 한다. 모두 생물학적인 특성에 맞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진행되면서 자기 몸을 보호하는 숨은 능력을 가진 곤충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대표적으로 나뭇가지로 위장한 자벌레, 장미가시처럼 뾰족뾰족하게 생긴 파랑강충이, 뱀눈무늬로 위협하는 공작나비, 자작나무에 붙어 나무껍질처럼 보이게 해서 숨는 밤나방들이 한 마디씩 한다. 대충 선으로 그린 그림인데 꽤 정확하고 귀엽다.

그렇게 가다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도시의 직박구리가 알을 낳을 때가 되어 숲으로 날아왔다. 문제는 집을 지을 줄 모른다는 것. 사람의 문명이 야기한 일이라는 것도 암시하며 환경 문제의 피해자인 직박구리가 항변하는 이야기도 꽤 설득력 있다. 때가 되어 삐뽀에게 알을 덜컥 낳아놓고는 직박구리는 숲으로 제대로 된 집을 지으러 간다. 삐뽀가 가르쳐준 대로 해보겠다면서. 얼결에 알 네 개를 맡은 삐뽀는? 체온이 새보다 1도가 낮아 알을 품어도 부화를 시키기가 어렵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엉뚱하다. 직박구리가 가르쳐준대로, 계속 화를 내고 있으면 체온이 1도쯤 올라가니까 그렇게 계속 화를 낸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나를 왜 이렇게 인정많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어요?" 하면서 화를 내는 삐뽀.  하하.

그렇게 계속 화를 내며 따뜻하게 알을 품어준 삐뽀의 공으로, 무사히 아기 직박구리 4마리가 부화한다. 그새 엄마 직박구리도 멋진 둥지를 완성해서 아기들을 데리러 오지만...

어쩌나, 아기새들은 삐뽀를 엄마로 알고 머리 끝에 조로롱 앉아 떠날 줄을 모른다. "엄마, 먹을 것 줘요! 줘요! 엄마잖아요!" ^^  태어날 때 각인이 되어버린 엄마와 아기의 관계는 평생을 간다. 설령 자신과 모양이 다르다해도 눈 뜰 때 맨처음 보이는 존재가 엄마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솔로몬왕의 반지>를 쓴 동물생태학자 조셉 콘래드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렇게, 그저 귀여운 이야기처럼 하고있는데 이것도 엄연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나저나 삐뽀는 방학 내내 어미새가 되어 도롱이벌레나 방귀벌레를 잡으러 다녀야만 했다는 이야기. 어미새는 부루퉁한 얼굴로 옆에서 인상을 쓰고 있고 말이지.

참 편안하게 들려주는 문학적 이야기 속  과학, 재미있고도 정확한 그림까지, 즐겁게 보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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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길
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 낮은산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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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시와 같은 울림을 주는 이 책의 글과, 그저 놀랍다고밖에 말 할 수 없는 이 책의 그림.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로드 브라운은 1961년 이래로 '노예'를 주제로 7년간 36점의 그림을 그려 뉴욕, 워싱턴에서 전시를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의 그림들이 그 그림들일까? ... 그 그림들을 시작으로 하여 이 책이 만들어졌다.

한 장 한 장, 너무나 참혹하여 보기에 끔찍하고 안타까운 이 그림들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것을 알길래 이 책을 보는 심정은 더욱 무참하다.

차곡차곡 쌓여있어/ 관처럼 좁고, 관처럼 캄캄한, 그런 판자 위에 똑바로/ 차곡차곡 쌓여있어/ 산 채로, 산 채로, 그렇게 산 채로.

이런 글이 적힌 책의 다른 한 면에는 그림이 펼쳐진다. 그들은, 정말로 산 채로, 묶인 채로, 몸을 일으킬 수도 돌릴 수도 없는 상태로 정말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더럽고 축축하고 어두운 배 바닥에 마치 짐짝처럼 놓여져있다. 그렇게 몇 달을 실려갔다. 그들을 그렇게 싣고 갈 수 있었던 것들은 악귀들인가? 살아있는 생명을 그렇게 유린할 수 있는 심성은 과연 인간의 것인가?...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간 노예들의 참혹한 삶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으나, 그림과 글로 이토록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여전히 충격이고 고역이다.  그래서

분노는 가슴 속에/ 분노는 증오와 함께/ 분노는 커져 가고/ 분노는 깊어 가네.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자는 작가들의 손을 잡고 동참의 길을 따른다. 마음 속에 충격과 분노와 회한과 쓰라림을 안고...

노예 제도의 어처구니없음, 그 야만적인 폭력성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음과도 같은 그 상황 속에서도 좁디좁은 자유의 길이 있고, 사람들은 그 길을 연다. 그토록 좁던 그 힘든 고통의 길은, 자유의 길은 피를 먹고 자란다. 누가 그 길을 여는가? 에이브러햄 링컨이? 책은 사실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줄 수는 없어./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만 해./ 누군가 잠긴 문을 조금 열어줄 수는 있지만, 그 문을 나서는 건 스스로 해야 해./ 스스로 그 문을 나서야만 해.

인류의 역사는 어처구니없는 모순과 과오로 뒤틀려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과오는 잊혀지겠지만 또 새로운 과오가 그 위에 쌓인다. 지난 과오가 풀리지도 않은 채, 그 위를 덮으며.  누군가는, 묻혀있는 그것들을 드러내야 하고, 그래서 그것은 철저히 풀려야 하리라. 눈을 통해 보고, 귀를 통해 듣고, 입을 통해 이야기하며 마음을 통해 뚫어야만 하리라. 뚫리지 않고 풀리지 않은 인간의 과오가 되풀이, 되풀이되고만 있는 걸 안타까이 보고만 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라도,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서라면 엄숙하게 교과서로 배워야할 것만 같은 책이다. 억압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자유의 값짐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이처럼 통렬하고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교과서의 수준들도 몇 단계는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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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도토리 쪽빛그림책 1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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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의 생일 케잌에 얹혀졌다가 코우에게 특별해진 도토리 한 알인 '토리'. 그 토리가 이야기한다.

코우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씨앗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주머니랑 가방 속은 언제나 그런 알갱이들로 불룩불룩하다. 코우는 또래들이랑 어울려 놀 때보다도 숲에서 들판에서 놀 때가 더 많은 것 같은 아이다. 그때 코우에게 가장 가까운 놀이동무가 바로 토리다. 던졌다가 찾아오고 물놀이 때도 같이 놀곤 한다. 토리의 엉덩이에는 코우가 써 놓은 이름 글씨도 있다. 그런 코우가, 숲에서 도토리랑 다른 열매들을 줍는데 너무 열중하다보니 그만 토리가 땅에 떨어지는 걸 미처 보지 못한다. 나중에야 알아채곤 해가 질 때까지 헤매며 찾지만 그 넓은 숲에서 도토리 한 알 찾기야 그야말로 백사장에서 모래알 찾기나 마찬가지다. 토리는 그렇게 숲에 남겨지고, 코우는 어깨가 쳐진 채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코우에게는 토리가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사랑의 기억이다.

토리도 자신을 아껴주던 코우를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다. 땅에 떨어져있던 토리는 자란다. 한그루의 참나무가 되는 것이다. 코우는? 코우도 자란다. 유치원생이던 코우가 자라서 어느덧 청소년이 되어 교복을 입고 학생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토리가 자라고 있는 들판 옆으로 난 굽은 길을 휘돌아 달린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뭐라 말로 할 수가 없다... 글과 그림은 숨이 막힐만큼 아름답다. 그 속에 사랑과 이별과 아픔과 안타까움, 성장의 자부심과 함께 흐르는 세월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란, 사람 아이인 코우와 나무 아이인 토리....

토리는 어른 나무가 되었다. 팔에는 이미 수많은 아기 도토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어느날, 그들의 만남. 우연한 듯, 그러나 숙명적인 그들의 재회. 코우는 어느 날 산책길에서 낯익은 느낌에 귀를 연다. 그옛날 토리와 같은 모습의 도토리들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커다란 참나무 아래서 코우는 " ...토리?" 라고 문득 묻는다. 도토리를 후드득 떨어뜨려 대답하는 토리. 아아..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 커다란 참나무 아래서 그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코우. 다음 순간 화면 가득 푸른 이파리를 활짝 펼치고 있는 도토리나무, 토리.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만남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아닐까?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나무와 아이의 사랑, 문득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각이 났다. 그토록 아름답지만 그토록 인간인 우리를 회한에 잠기게 하는 한 그루 사과나무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길 잃은 도토리>를 읽는 내 마음 속에는 쓸쓸한 회한이 아니라 마치 햇살 퍼지는 듯한 따뜻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이와 함께 읽는,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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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임권택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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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전. 완창하면 네 시간, 혼자서 그 너른 무대를 채우는 판소리꾼을 생각하면 때로 황망하다. 때로 소낙비같이 쏟아지는 소리, 때로 미풍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처럼 속살거리는 소리, 때로 파도에 쓸리는 자갈돌들의 소리를 혼자 만들면서 그 무대 공간을 훌떡 뛰어넘어버린다. 한 소리꾼의 노래와 이야기와 슬쩍슬쩍 흘리는 몸짓 만으로, 관객은 제한된 무대를 넘어 펼쳐지는 광막한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새롭다. 한국 영화사에서 춘향전 만큼이나 여러 번 영화화된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 만으로도 짜릿하고 재미가 오달지다고는 하나, 다 아는 이야기다. 자꾸 자꾸 만들어내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그러니까 수 년 전이겠다-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이래서 또 다시 만들어내는구나, 싶었다. 판소리와 소설로 우리에게 정식으로 알려지기보다는 크면서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로 먼저 알아버린 춘향전. 스토리야 같다지만 제대로 대사 한 번 음미해보지 못했던 진짜 춘향전을, 임권택 감독은 꼭 맛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니들이 춘향전 맛을 알아? 언제 제대로 보기나 했어?"

영화는 판소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팔청춘 풋풋하다못해 풀비린내가 나는 듯 싶다가도 또 조선의 열여섯이야 반 성인 아니었던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 어느새 홀릴 듯 발랄한 청춘들이다. 판소리 중의 '사랑가' 대목에 이르면 원색 그대로라 아니할 수 없다. 고것들, 참 질투나게도 노는구나.. ^^  제법 진하게, 색기발랄하게 놀지만 어느 한 군데 귀엽지 않은 곳이 없다.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또 두 배우의 힘이기도 하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판소리가 보이고 들린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다. 그리고 네 시간의 꽉 찬 무대를 위해 정동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기도 하다. 소리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점점 그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준다. 언제나 '무심하게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우리의 내용들에 카메라를 조용히 갖다놓고 보여주곤 했던 임감독님의 작품이 아니던가. 그 방식도 그 시대에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 내게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새롭다.) 정색을 해서 시간을 내고는, 가만히 보고 듣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야말로 내 바로 옆에서 눈길 주기를, 손 뻗어 만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런 익숙하고 친근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 되어버린 영화지만, 여전히 즐겨 다시 보고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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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뎐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임권택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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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재밌군! 그 옛날 하도 인상적으로 봤던지라 아예 사버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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