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미야 세상을 주름잡아라
임정진 지음, 강경수 그림 / 샘터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정말 여러모로 착한 책이구나, 싶다.  

1. 이야기가, 재밌다! 그림책에서 제일 중요한 것, 무엇보다 재밌다는 것. 주름협회의 정기총회라, 거기에는 온갖 주름들이 다 참석해서 서로 주름을 뽐내고 그 협회의 권익을 위해 일할 명예로운 회장도 선출한다. 코끼리, 접부채, 주름치마, 주름빨대, 주름자국이 많은 타이어, 오래 써서 주름질만치 낡은 가죽가방, 이마에 주름이 진 아저씨, 아코디언, 기타등등. 그러고보니 주름진 것도 많구나.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주름을 찾아본다. 다음 주름협회 회장감은? ^^ 

2. 그림도, 재밌다! 표지 그림부터 압권이다. 글씨며 그림이며, 이야기와 퍽이나 잘 어울린다. 겸손하고 수줍음 많지만 할 말 다 할줄 아는 다리미의 표정도 인상적이다.  면과 색보다는 선으로 이루어져 만화적인데 볼거리가 많고 풍성한 느낌이 든다. 이것저것 들여다 볼 것도 많다. 아이들 그림처럼 부러 서툴하니 그려 친근하고 편안하다. 보는 동안, '아 요즘 아이들 참 좋겠다- 이런 표현도 볼 기회가 있고.' 이런 생각이 든다.

3. 발상의 전환! 어쩌면 이야기의 재미에 보탤 법한 것이지만, 이야기 구성에 못지않게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여 별스레 따로 항목을 줘 보는데... 주름을 펴는 다리미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주름을 잡기도 하는 다리미! 그런 연유로 주름협회 회장 선거에 후보로 추대받기까지 하게 되는데, 실은 명예회원 쯤 되어야 하는 거겠지. 그런데 갑작스럽게 다리미는 자기 입장을 발표할 기회도 갖게 되고 또 뺨을 발그레 물들이면서도 할 말을 또박또박 잘도 한다. 주름협회 회원들의 마음이 그만 노골노골해져서 빤빤한 다리미를 받아들이게 될만큼, 다리미는 주름협회 회원들에게 파트너쉽을 인정받는 거다. 그것 말고라도 주름협회라니, 완전 매력적인 협회가 아닌가 말이다. ^^ 

4. 책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슨한 포스가 참 좋다. 여러 그림책을 보다 보면, 이거야말로 완벽하구나! 이런 느낌을 받는 그림책들도 참 많다. 글 그림 편집이나 제본까지, 모든 것이 최고 최선의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책들이고 그런 그림책들이야 정말 반열에 오르는 것들이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동안 몰입하게 되고, 다 보고 덮을 때 쯤엔 감동이거나 벅찬 희열이거나.. 혹은 살짝 거리감이 끼어든다. 너무 훌륭하게 만들자 마음먹은 책들이 그렇다. 흠잡을 데가 없어서 안타까운. ^^ 그런데 이 책, 여유만만하게 읽을 수 있고 킬킬거리며 볼 수 있어서 나는 참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바로 이점이 꽂힐 듯!) 반듯한 세상 한 구석, 빡빡한 일상 한 귀퉁이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주름협회' 같은 이상한 모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모임의 존재의 포스가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나도 주름협회 정기 총회 같은 데 꼭 참석해보고 싶어진다. 왠지 거기 가서 그런 주름탱이들이 시끌벅적 모임 하는 걸 보게 되면 맨 뻔한 세상 사느라 어눌 침침해진 눈이 한순간 번쩍 떠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든다. 이쯤되면, 쩝. 너무 나가서 그만 주관의 바다에 풍, 하고 빠져버릴 수도 있는 거겠지? 

5. 2008년에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출판하면서 이 정도 가격을 붙인다는 것,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책값이 착하다. 요즘 들어 이만한 데 이정도 책값인 경우, 드물지 않나? 양심적인 가격에 다만 숙연해질 뿐이다.  

이런 고로, 이제 고딩이랑 중딩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엄마로서, 도서관서 빌려본 책을 마음잡고 질러 소장하게 되어버렸다. 심란할 때 한번씩 꺼내보리라 마음 먹는다. 다리미와 주름협회 회원들의 포스가 내 어지러운 주름같은 심란함을 한번씩 반듯하게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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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준 선물 마음이 자라는 나무 5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올여름, 특이한 방식으로 이 책이 내게로 왔다. 아들이 방학 중에 읽어야 할 필독도서로 도서관서 빌려놓은 것을 내가 먼저 보게 되었다. 아들의 여름 방학이 내게 준 선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을 위해 <완득이>가 나오고 <스프링벅>이 나온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 시대의 무게 속에서 때로 방황하고 때로 솟아오른다. 그런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 이 책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여름이 준 선물>과 같은,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너무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가까운 일본의 작가가 쓴 이야기인데도 너무나 다른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라 생경스러웠다. 그런데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우리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마음이 아팠다.  

초등학교 6학년, 사립중학교 입학이라는 나름대로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시기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크게 이야기를 끌고가지는 않는다. 그저 바탕일 뿐. 아이들은 다른 일에 몰입한다. 바로, 그 아이들에게 우연히 다가온 주제, 죽음. 약간 묘하게 우정을 유지해가는 세 아이들, 류와 하라와 모리에게 어느날 죽음이 슬쩍 다가온다. 하라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하는 것까지 지켜본 하라가 잠시 그 사실에 골몰하게 되면서 다른 아이들도 막연히 갖고 있던 죽음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엉뚱하고 즉각적인 모리가 죽음을 곁에서 느껴보자고 제안하는데, 아이들답게 대상이 호기롭게 정해진다. 이웃에서 마치 죽은 듯 버려진 듯 살아가고 있는 할아버지를, 죽을 때까지 지켜보자고 약속을 정하는 것. 그때의 기분을 알고 싶어서, 라는 것이 목적이다. 당돌하다. 

지켜보는데, 전혀 예기치 않았던 쪽으로 일이 흘러간다. 아이들의 시선을 눈치챈 할아버지가 갑자기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생생하게 살아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 그러면서 아이들과 할아버지 사이에 유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주 의외의 만남이 갖고 온 개방성이랄까,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간다.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아이들이 일으키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나이 먹은 이들의 추억에 관한 짧은 단상이 있다. 인상적이다. 

"그렇게 많은 추억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었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도 추억은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 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 여러 곳을 떠돌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스며들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간 곳인데, 와 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 

마치 어린왕자의 도르래 이야기 같은 구절이다. 아날로그적인 작가의 감수성에 공감이 간다. 

할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마치 잠을 자듯 자연스럽게 돌아가신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다가, 불현듯 아픔을 느낀다. 가까운 사람, 마음을 나누던 대상이 갑자기 사라져서 더이상 아무 것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커다란 상실을 느끼는 것이다. 먼 친척 누군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과정과는 너무나 다른, 혈연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인간의 내용으로서 가까웠던 이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감당하며 성장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다.  

"난 이제 한밤중에도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어. 무섭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에겐 저 세상에 아는 사람이 있잖아. 그건 아주 마음 든든한 일이잖아!"  

지은이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외할아버지를 '저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할아버지의 영정 아래서 원고를 쓰고, 밤에는 이부자리 안에서 영정을 올려다보면서 "내일도 열심히 할게요" 라는 말을 하고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곤 아주 부드럽고 좋은 꿈을 꾸면서.. 죽음의 한 모습을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이야기 그 너머에는 작가의 경험과 따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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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고흐_아몬드나무 UV 자외선차단 양산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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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이 양산으로 만들어졌다니! 그걸 알고난 그순간부터 갖고싶었는데 마침(?) 들고다니던 오래된 양산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차에, 주저없이 질렀다. 올 때까지 기대기대... 

우선, 크다. 햇빛을 확실히 가려줄만큼 크다. 게다가 자외선 차단하는 소재라니, 그래서인지 안쪽은 흰색인데, 햇빛을 가리는 원래 목적은 확실히 달성하는 듯. 바깥쪽은 약간 광택이 나는 소재인데, 생각보다 색상은 밝지않다. 오히려 차분한 느낌.

손잡이랑 우산 꼭지가 나무라서 느낌은 괜찮았고, 안쪽 살대 부분은 아주 매끄럽고 잘 만들어진 듯하다. 펼칠 때와 접을 때의 느낌이 부드러워서 좋았다. 살대에 천을 꿰매놓은 솜씨도 꼼꼼하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품질이다. 

크기가 시원하게 큰 만큼, 가방에 작게 넣어다니기에는 조금 번거롭다. 5단우산도 같은 그림으로 나오는 게 있던데, 그건 우산이라 자외선 차단도 안되고 천도 좀 달라보여 양산을 샀지만, 내게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자그마한 5단 양산이 있다면 가뿐하게 들고다니기에는 더 좋았을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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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 베이직 삼나무 샤프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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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연필 쓸 일이 꽤 많아 하나 장만하려고 마음 먹은 차에 삼나무 재질이라니, 비싸다 싶어도 맘먹고 하나 장만하기로 하고 구입했다. 디자인도 예쁘고, 필기구로 이름난 회사니까, 게다가 그립감도 좋다고 되어있어 크게 주저하지 않았는데. 

막상 써보니까 앞 부분의 그립감이 안 좋다. 플라스틱인데다가, 홈이 파져 있기는 하지만 미끄럽다. 플라스틱 소재 중에도 마찰력을 조금 높여 덜 미끄러지게 해주면 연필 잡는 힘이 덜 들어갈텐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니 썩 편하지가 않다.  

다른 점은 다 좋은데- 0.7mm라는 것도 내게는 장점이니까- 그것만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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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한 베니스 여행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 잉가 카린 에릭슨 그림, 윤희기 옮김 / 미래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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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 년 전 김석철의 <세계 건축 기행>이라는 책에서 베니스의 싼 마르꼬 광장과 두깔레 궁전에 대한 이야기를 본 게, 베니스라는 곳에 대해 실제로 들여다본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베니스라는 도시는 정말로 유명한데도 나는 그 곳에 정말로 아예 차가 없고 집과 집 사이에 바닷물이 다닌다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 벙어리 장갑으로 맞잡은 듯한 모양새의 물의 도시, 곤돌라가 그 물길 사이를 누비면서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낭만의 도시, 바로 마주보고 있는 앞집과의 사이에 바다가 있어 창문으로 뭔가를 던질 수는 있어도 대문을 나서서 대문으로 들어설 수는 없는 이상한 집들의 도시... ^^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도시였다. 내 사는 곳을 넘어 상상하기 어려운지라, 물에 세워진 베니스라는 도시는 실제로 보기 전에는 참 믿기 어려운 신기루와 같이 느껴졌다. 물그림자의 이미지랄까.  

책을 통해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부터 어디서든 베니스가 등장하면 잘 보았다. 2월의 가면축제도 신문에 나오고 가끔 물에 잠기는 싼 마르꼬 광장의 이야기도 나왔다. 무라노 섬의 유리도 꽤 알려진 듯했다. 어쨌든, 나는 베니스가 보고 싶었다. 베네찌아를 꿈꿨다. 걸어서 몇 시간이면 도시 전체를 한바퀴 다 돈다는 크기도 맘에 들었다. 내가 먼 유럽의 어딘가를 여행할 수 있을거라는 꿈을 꾸기도 전부터 나는 맨 먼저 베네찌아를 마음에 품었다.   

올 1월, 정말로 베네찌아의 바닷길을 보고, 운하를 바포레또로 다녔고, 리알또 다리 난간에 서서 운하를 내려다보았다. 꿈만 꾸던 일이 정말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거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정말이었나? 싶은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베니스에서는 단 이틀, 메스트레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니스 산타루치아 기차역으로 드나들며 이틀을 보냈다. 하루는 걷고 하루는 바포레또를 타고 물로 다녔다. 베니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겨울이었고, 하루는 비가 왔고, 하루는 햇살이 따뜻했다. 서로 맞잡은 벙어리 장갑의 형상으로만 생각했던 베니스의 조각난 땅들은 물러나서 보면 접시 위의 물고기였다. 걷거나 배를 타거나- 그것이 베니스의 방식이다. 그런 방식이 가능한 크기의 땅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베니스에서는, 걷거나 배를 타고 있을 때가 너무나 좋았다. 싼 마르꼬 광장을 거쳐 작은 광장 삐아제타로 빠지면 바로 바다다. 곤돌라들이 바다에 박아놓은 수많은 기둥들에 매인 채 출렁거린다. 두엇은 햇빛 넘실대는 바다 물 위로 관광객을 태우고 유유히 나아가며 실루엣을 남긴다. 베니스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출렁거린다. 정말로 물의 그림자만 같다. 

책 몇 권을 보고 갔지만, 막상 베니스에서는 다니고 싶은대로만 다녔다. 그러고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 배를 타고 무라노 섬에 도착했고, 걸어 다니면 어디나 다리가 나왔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유리들이 나왔다. 점심 시간이 지나 다 닫혀버린 식당들 때문에 난감한 차에, 어찌 문 열린 한 곳을 찾아 들었는데, 그 곳이 내 전체 여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당이 되었다. 그곳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시골이었다. 인심좋고 바쁠 것없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나. 그런데 실내는 온통 아름다운 그림들, 짙은 노랑색으로 셋팅된 식탁들, 물을 마시기에는 과분하다싶은 유리잔들, 바구니 가득 담겨져 서비스로 제공되던 커다란 스틱 모양의 과자들까지 허술한 데가 없었다. 후다닥 해치우는 급함도 없고, 모든 것이 천천히 기분 좋게 진행이 되었다. 작은 식당이었지만 칸막이 너머 다른 방에서는 할아버지들의 유쾌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우리는 베니스 특산 해물 요리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서두를 일도 없고, 이곳에서는 생이 유쾌하고도 품위있으며, 그래서 어쩐지 세상 저 너머같다는 느낌마저 드는 오후였다. 그때 그곳의 풍경이 잊혀지질 않는다.  확실히, 베니스에서는 시간이 달리 흐르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도 걱정이 있고 삶의 애환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내 땅에서 나와 사람들이 겪어가는 그런 종류의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풍족한 경제가 그런 여유를 주는 것일까? 그것 만은 아닐 것이다. 베니스 중심의 상가를 지나다니면 - 베니스는 정말 상가가 많다. 관광객에게 상품을 파는 곳이 전체의 절반은 될 것 같이 느껴진다 - 그곳에는 그래도 내가 쓰는 시간과 같이 뭔가가 흘러가는 것 같은데, 베니스의 외곽 무라노 섬에서는 오히려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작은 곳에서 느낀 특별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각설하고, 그리 두서없이 다녀도 베니스는 대충은 다 둘러볼 수 있다. 작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그저 만족스럽기만 했는데, 다녀와서 우연히 이 책을 보고나니, 아니!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아빠와 함께 일주일간의 베니스 여행을 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인데, 글을 쓴 이가 크리스티나 비외르크다. 내가 좋아하는 리네아의 이야기를 쓴 사람이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 방식이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방식'이다. 나름의 방식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모네의 정원에서>를 들고 빠리의 오랑쥬리 미술관을 찾고싶게 만드는... 바로 그 사람이다. 베니스 이야기도 그렇게 풀어낸다. 어린이만이 대상이 아니라, 어른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는 책이다. 정보의 양이 만만치 않은데,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흘러간다. 같이 다니면 되게끔. 

아쉽다. 내가 또 베니스에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벤델라가 이야기하는 그곳들 중에는 '여행정보책'에 소개되지 않는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한 곳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놓친 것들, 다 아쉽다.  앞으로 베니스를 여행할 이들, 혹은 언젠가 베니스를 여행할 꿈을 지금 꾸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른 어느 책보다 이 책을 놓치면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베니스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절대 이 책은 한동안 안보는 게 좋을 것이다. 놓친 것들에 대해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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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꿈 2009-08-0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사진과 할께 풀어놓을 유럽 여행기중 베니스 여행기가 여기에 있네..간만에 들어와 대어를 건진기분...꿈을 꾸며 이 책을 꼬옥.

2009-08-09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