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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야생화 - 이유미의 우리 꽃 사랑
이유미 지음 / 다른세상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산에 들에 가서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데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꽃들을 만나게 될 때는 반가우면서도 괜히 미안하다. 나 태어나기 전부터 이땅을 지키고 있었고 언제한번 큰 목소리 내면서 '나 여기 있소' 해본 적도 없으련만 그래도 이땅 구석구석 푸르게 또 소박한 빛깔로 뒤덮고 있던 귀여운 아이들. 그 아이들을 한번 아쉬움도 없이 지나치고는 했었다. 그러다 세해전인가, 참여하고 있는 환경단체에서 생태탐사라는 것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봄과 가을로 지천에 피어나는 풀꽃들을 찾아다니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내게 마음을 주는 꽃을 골라 보이는대로 세밀화로 그려보는 일이 그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가 내게 일어났다. 집에는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기 위해 도감이 늘어나고, 탐사 때 아이들의 도우미 역할을 하기 위해 답사를 다녀오고 하면서 미리 그 산과 그 들의 풀꽃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기있는 백과사전이나 도감들을 두루 살펴보게 되었고, 도서관에서도 이 도감 저 도감을 비교하게 되었다. 도감마다 각각의 장단점들을 가지고 있으니, 이 책은 집에서 더듬어 즐기기에 좋은 사진이 많고, 이 책은 들고 다니며 현장에서 찾기에 좋다.. 이렇게 정리가 되어갔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았다. 도감에는 가능한 많은 식물을 담아야 하고, 또 들고 다니려면 가벼워야 하고, 도감에 당연히 실려야 할 기본적이 내용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그러자니 식물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고소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유미씨의 이야기가 항상 그리웠다.
이유미씨는 샘이깊은물이라는 잡지에 꽃과 나무에 관한 글을 얼마나 맛깔지게 썼던지, 옛날적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직도 그이의 글맛을 잊지 않는 이들을 가끔 만날 정도이다. 한달에 한번, 적잖은 분량을 사진과 글로 독자들에게 식물의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이의 입을 통해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 고소해서 나는 자주 그이의 말투로 내 옆의 사람들에게 내가 본 식물들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라일락에는 '수수꽃다리', 코스모스에는 '살살이꽃'이라는 우리 이름이 있다는 이야기도 그이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다. 그의 짧지않은 식물 이야기는 넉넉해서, 그 한편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식물은 그만 내 친구가 되어버리는 그런 소중한 경험이 내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다달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유미씨의 글을 기다렸다.
그런데. 바로 이책을 찾았다. 바로 샘이깊은물에 연재할 때와 같은 어조로, 감질나지 않게 이야기를 모두 모은 책이 나온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약 500쪽이 넘는 만만찮은 분량이다. 그런데 소개하고 있는 야생화-풀꽃과 나무꽃-의 수는 백가지를 조금 넘는다. 대체로 하나의 식물에 다섯쪽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 안에는, 학명이니 과명이니 하는 도감적인 내용말고도, '생김생김', '여러가지 이야기', '어떻게 쓰이나?' '어떻게 키우나?' 라는 작은 제목을 단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이의 답사에서 있었던 식물과의 얽힌 이야기부터 왜 이꽃의 이름은 이러한지, 예쁜 꽃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꽃받침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정겨운 문체로 쓰여있다. 그이의 설명을 듣다보면 얼마나 그 꽃들이 가까이 느껴지는지 모른다. 이유미씨의 이야기 능력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그이의 우리 꽃에 대한 남다른 사랑도 진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는 느낌은 그래서, 마치 야생화를 주제로 한 백여편의 수필을 보는 듯하다.
도저히 한번 보고 말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좋아하는 꽃에 대한 이야기는 대여섯번이나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고 읽는게 즐거우니 신기하고도 즐겁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여쁜 꽃들과 나는 점점 더 가까운 벗이 되는 것 같으니... 이리 책으로만 본 꽃을 어느날 산이나 들에서 처음 만나게 될 때 그 기쁨은 오죽하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