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벼락 사계절 그림책
김회경 글, 조혜란 그림 / 사계절 / 200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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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로 놀라운 그림책이다. 너무나 재미있고, 교훈적인데도 전혀 거부감이 없고, 네댓살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도 하나 빠짐없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갈 수 있는 탄복할 만한 책이다. 게다가 형식은 옛이야기의 형식이되 순수 창작이다. 읽다 보면 이것이 옛이야기 그림책인가 생각하게 된다. 어디선가 조금씩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분명히 김회경씨의 창작이다. 전통을 재창조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신선하다.

조혜란씨의 그림은 또 어떤가? 구수하고 익살맞고, 돌쇠 아버지나 김부자나 돌쇠네 집 개나 꼭 옛그림에서 많이 본듯 친숙해서 저도 모르게 야아, 재밌는 옛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똥이 온 천지에 날아다니는 그림도 그렇고, 돌쇠 아버지가 그 아까운 똥을 산중에서 싸게 되어 어쩌나 하다가 급한 김에 큼지막한 나뭇잎에 똥을 조심해서 누다가 산도깨비에 놀라서 철푸덕, 뒤로 주저앉았을 때 나뭇잎 밖으로 밀려나버린 그 똥의 익살스런 모습들은 온 식구들의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돌쇠 아버지가 김부자의 억지에 매를 맞는 장면은 그림자로 그려져 있는데 글 한 줄 없이도 그 억울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돋보이는 순간이다. 김부자네 고양이와 돌쇠네 개도 그 성격이 잘 드러나는 조연들이다. 김부자의 손가락에서 노랗게 빛나는 금반지가 한 개에서 두 개가 되고, 엉덩이에 눌린 똥을 들고 우는 돌쇠 아버지 뒤로 나무들이 웅성거리며 돌쇠 아버지를 애처로운 듯 보고 있는 그림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있다. 이 책을 아이들과도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아주 치밀하게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은 물흐르듯 잘도 흘러간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옛날 옛날에도 아흔아홉 개를 가지고도 하나를 더 못 가져서 안달하는 욕심쟁이가 있고, 밭에서 금반지가 나왔다고 자기 형편은 생각도 않고 그걸 또 주인에게 돌려주러 가는 참 답답하리만치 착한 돌쇠 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다. 도깨비의 선물 정도로 생각해버리면 좀 좋을까 싶은데 말이다. 또, 요즘 아이들이야 어쩌다 시골 절간이나 숲에 있는 간이 화장실 같은 데 가면 변소에 들어가기도 싫어하는데, 엣날에는 이렇게 똥이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어찌 한번이라도 생각이라도 했을까. 지금 시대에 설교식으로 하면 전혀 먹혀들지 않을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신명나고 구수한 이야기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지.

도깨비도 중요한 등장인물로 멋진 역할을 한다. 누군가 애처로운 사람을 보면 이렇게 선뜻 도와줄 마음을 내고, 또 뒤틀리는 일을 보면 분명한 판단으로 징계를 내려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해결사로서의 도깨비는 옛날부터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고픈 민초들의 희망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손으로만 등장해서 끝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고 해결사로서의 역할도 아주 통쾌하다.

아이들은 어쨌든지 똥 이야기만 나오면 열광한다. 똥을 된장으로 알고 국을 끓여 할아버지에게 대접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에조차 낄낄거린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 좋아하는 똥 이야기가 원없이 나오니! 똥도 이렇게나 종류가 많은가 하며 나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된똥 진똥 산똥 선똥 피똥 알똥 배내똥에 물찌똥이라니...흉내내는 말도 얼마나 재밌는지, 후득후득, 처덕처덕 푸드득 퍼드드득!! 그렇게 밤새 똥벼락이 내리치더니 김부자네 집 자리에는 큼지막한 똥산이 생겼다. 그것도 이똥저똥 잘 섞인 거름 산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이 똥거름으로 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었다는 흥겨운 이야기, 어찌 이리 맛있을꼬!

사계절 출판사에서 마련한 특별한 작가 이야기도 보기 좋다. 상투적인 작가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히 읽다보면 아주 그 작가의 모습이 슬며시 그려지는 그런 소갯말들이다.
집에 아이들 말고도 자주 그림책이나 동화를 읽어주고 있는데, 단 한번도 그 높은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책이다. 언제나 아이들의 환호 속에 묻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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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es0 2004-11-0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셨네요. 아주 우수한 책 입니다. 그림도 우수하고 내용도 훌륭하고 글도 감칠맛나죠.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사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