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사계절 그림책
권문희 그림, 김민기 글 / 사계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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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에 대한 느낌을 글로 쓰자니 어쩐지 막막하다. 그림책으로 보는 백구 이야기. 이미 이십년전쯤부터 노랫말로, 양희은의 노래로 알아왔던 이야기라서 새삼스레 이야기에 도취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씨디가 들어있다길래 그 목소리의 느낌과 권문희씨의 그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책을 샀다.

김민기씨가 쓴 백구의 가사는 아주 서정적이다. 어릴적 내가 기르던 개 백구에 어린 슬픈 추억을 가만가만 밟아간다. 노랫말만으로도 서정적이고 아련한데, 역시 김민기씨가 쓴 곡도 아련하다. 도레미도 레 라 시 솔 도... 이렇게 곱고 아련한 동요의 느낌이다. 그 노래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림들이 펼쳐진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정말 개를 기르는 집이 많았고, 그 개들은 요즘 아파트에서 옷입혀 기르는 개들과 달리 그냥 하얗거나 누런 개들이 많았다. 그 개들은 해마다 새끼를 많이도 낳았고, 또 내게도 집에서 기르던 개가 어느 길거리에서 쥐를 잡겠다고 놓아둔 약을 먹었는지 고통스런 하룻밤을 보내고 죽어간 아픈 기억도 있다. 김민기의 노래 백구는 내게 이렇게 다가와서 어찌나 가슴을 아리게 했는지 모른다.

마치 원래가 그림책을 위해 지어진 이야기인 양, 그림책으로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권문희씨의 그림은 더도 덜도 없이 이 노랫말을 그대로 살려주었다.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이력답게, 그이의 그림은 온 그림책 내내 두 쪽 가득 펼쳐진 기억의 세계를 더듬는 듯하다. 펼쳐드는 쪽마다 하나의 정지화면처럼 콕 콕 와 박힌다.

'토끼장이 있는 뒤뜰엔 아무것도 뵈지 않았고' 라는 말 뒤에는 정말로 그 넓은 지면에 뎅그라니 아이의 뒷모습만 나와있다. 그 아이가 서 있는 곳은 그냥 텅 비어있되 '한지에 수묵'이라는 표현으로 상상되는 그런 텅 빔이다. 마지막 장, 이제는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 그 안쪽을 공연히 뒤 돌아보며 학교길을 나서는 아이, 그 아이의 딸랑하니 들린 단발머리가 공연히 짠하다.

이 장면은 처음 들머리에서 아이가 즐거운 얼굴로 학교에 가면서 뒤돌아 볼 때, 그 문 틈으로 백구가 안녕, 인사를 하고 있는 정겨운 장면을 되살린 것이다. 보면, 아이의 얼굴에서 읽히는 표정의 변화와 그 문틈 새 없어진 백구가 느껴지는 것이다. 책의 뒷표지, 빛바랜 한장의 사진 안에서 아이와 백구가 정답게 서 있는 사진의 느낌도 좋다. 마치 흰눈과 함께 깊은 회색의 하늘을 떠다니듯... 손에 잡힐 듯하면서 멀어져가는 그 한장의 사진도 이야기를 보탠다.

권문희씨의 그림은 정말 천천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이다. 그이가 살려낸 것은 백구의 노랫말 뿐만이 아니고 6-70년대쯤 우리네 삶의 어딘가이기도 하다. 거기 우리 동네도 있고,하나의풍경이 된 전신주 가득한 하늘이 있고,이때나 저때나 운동장에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따르르하면서 노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순하디 순한 눈망울의 아이와 그 눈망울을 다 받아주는 듯, 아이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우리네 백구도 있다. 이 그림책에 그런 것들이 다 들어있다. 권문희씨의 그림책...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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