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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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던지는 살벌한 경고

- 리사 프라이스, 『스타터스』를 읽고

 

미래를 상상하는 건 즐거운 공상인 동시에 잔인한 환상이다. 이미 영화나 책 등 여러 분야에서 미래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 생각과 더불어 이 같은 매체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은연중에 각자의 머릿속에 이미지화해서 저장해 놓고 있다. 나는 결코 지금까지 인간이 상상해낸 그 ‘미래’라는 시간을 살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을 느끼곤 한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있을 법한 이야기. 인간이 추측하고 상상해낸 미래의 모습은 어디까지일까. 때로는 충격적인 판타지가 펼쳐지는 ‘미래’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타터스』는 지금까지 내가 상상해온 미래의 이야기를 뛰어넘는다. 한 마디로 충격적인, 그럼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잔혹하지만 아름답다. 『스타터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살벌한 경고를 던지는 ‘블랙’ 로맨스 스릴러다. 젊은 육체를 대여하는 미래 세계, 라는 소재가 섬뜩할 정도로 신선하다. 읽기도 전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호기심이 인다.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놀라운 속도로 빨려 들어간다. 과장이 아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독서의 희열. 『스타터스』는 차마 떨쳐낼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태평양 연안국 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 날아든 생물학 포자 미사일은 일주일 내에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에 대비해 미리 백신을 맞은 10대 이하 청소년과 60세 이상의 노년층은 살아남았지만, 백신의 혜택을 보지 못한 20세에서 60세 사이의 사람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렀다. 미성년자(스타터)와 기득권층 혹은 어른(엔더)만 남은 미래 사회. 약삭빠른 엔더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미성년자들의 취업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일자리마저 엔더들에게 박탈당한 홀로 된 스타터들은 거리를 떠돌거나 보호소에 수감된다. 혹은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어디든 안전한 곳이 없다. 거리엔 이탈자가 우굴 거리고, 집행관이 시시때때로 들이닥쳐 삶을 위협한다. 돌봐줄 돈 많은 조부모가 없는 미성년자에게는 어떠한 희망조차 없다. 그저 어두운 곳에 숨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지 않다면?

 

캘리에게는 보호해야할 동생 타일러가 있다. 더구나 타일러는 아프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따듯한 집이 절실히 필요한 캘리는 마침내 바디 뱅크,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방문한다. 세 번의 렌탈만 끝내면 돈과 집을 준다는 조건은 길거리에서 배를 곯고 살아가는 스타터에게는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점 하나 없는 무결점의 얼굴과 몸매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완벽한 상품. 의학의 발달로 200살 까지도 거뜬하게 살아내는 돈 많은 엔더들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젊음이다. 바디 뱅크는 이것을 노려 노인들에게 젊음을 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젊은 렌탈과 늙은 렌터의 정신이 컴퓨터를 통해 연결된다. 늙은 몸이 바디 뱅크에 마련된 의자에 누워 편안히 잠들어 있는 동안 젊은 정신 역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면 늙은 렌터는 자연스레 젊은 몸을 차지한 후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누리면 된다. 마침내 일시적인 신체 대여가 아닌 영구 대여를 시도하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도무지 합법화 될 것 같지 않은 이 ‘신체 대여’ 사업이 합법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음모와 반전들. 캘리의 몸을 빌려 돌아오지 못한 손녀 엠마의 행적을 추적하는 헬레나. 헬레나와 뜻을 같이 해 기꺼이 렌터로 나선 여러 조부모들. 캘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사라의 눈물겨운 희생. 렌탈 기간 중 우연히 만나게 된 블레이크와의 달콤한 시간,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끔찍한 반전. 도무지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긴박한 스토리와 끝인가 하면 또다시 예상을 뒤엎고 펼쳐지는 반전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잔인하면서도 매혹적인 소설,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과 윤리의식이 어디까지 인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와도 아무리 젊음이 탐나는 세상이 와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 누군가의 인생을 훔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빌린 몸을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늙은 렌터들을 보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더구나 영구 대여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늙은 욕망은 대체 생각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매가 울면 날아야 할 시간’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캘리의 아버지는 살아계실지, 캘리의 정신을 잠시나마 장악했던 올드맨(프라임 데스트네이션의 수장)의 새로운 음모는 무엇일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어 하는 블레이크와 캘리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엠마를 비롯해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올드맨과 함께 헬기를 통해 탈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레이먼드씨는 또 어떤 기술력을 선보일지……. 무수한 의문과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은 이 소설은 아마도 머지않아 영화화 될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 어쩌면 2편이 출간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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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 저도 이책을 일었는데 너무 치명적인매력을 가지고있는 책이에요 . 한번 보면 빠져들게하는 … .
그런데 정말 먼 미래에도 , 그런일이 일어날까 우리아이들에게 … 먼 미래가 무시무시하게 걱정돼네요 .
그리고 끝없는 노인들의 욕심 , 욕망 … 등을 깨우칠수있어서 . 재밌었고 … 신체대여라는것은 불법이기때문에
사용하면 안돼는데 ㅎㅎ . 저도 아이들의 엄마로써 정말 먼 미래가 걱정됍니다 .
 
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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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이라도 당신께 당신의 이야기를 청해 봐도 될까요?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들어본 적조차 없다. 수십 년 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셨던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인생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치열했을 바다 위에서의 싸움. 잔인한 인내를 요구했을 자신과의 싸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끊어버릴 수 없는 생의 끈,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인가. 그럼에도 시나브로 중독처럼 스며들었을 환희의 순간 또한 적지 않았으리라. 바다위에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나에게 바쳐졌을진대, 몰랐다. 어쩌면 모른 척 살아온 것인지도. 서른 하고도 다섯 해에 접어들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다시 펼쳐 읽는다.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궁금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눈물이 미안함이 고마움이 속절없이 밀려든다. 나, 지금이라도 당신께 당신의 이야기를 청해 봐도 될는지요.

 

 책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가. 같은 책이라도 언제 어느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른 말을 걸어오는 것이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듯 신비롭다. 특히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이 주는 감흥은 실로 깊고도 강하다. 남들에게는 명작이라 추앙받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만은 낯선 작품이 꽤 있다. 읽고 또 읽어도 공감하기 힘든 고전의 세계. 다행히 『노인과 바다』는 내가 꼽는 몇 안 되는 고전이자 명작 중 한 권이다. 언제 읽어도 어렵지 않은 책, 어떤 상황에서 읽어도 감동을 주는 책. 한 마디로 몰입이 잘 되는 잘 쓰여 진 책인 셈이다.

 

 무지개보다 더 다양한 격정의 색을 지닌 이 책에서 이번엔 슬픔을 읽었다. 5.5미터 700킬로그램에 달하는 인생 최고의 대어를 낚은 산티아고 할아버지. 꼬박 이틀 동안의 사투 끝에 쟁취한 승리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배의 그림자가 엄습해 온다. 몸도 마음도 누더기 신세. 추스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오두막집으로 스러지듯 들어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문득 아버지가 오버랩 되었다. 아버지는 꼬박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다. 일찌감치 몸 여기저기서 잔고장의 흔적이 영력했지만 병원 문턱 넘는 것조차 한사코 거절해 오셨다. 그러다 덜컥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어느 때보다 곁을 지켜드려야 했을 그때 나는 함께 있어드리지 못했다. 내 아이를 낳던 날, 아버지는 수술대에 오르셨다. 그리고 내리 2년간 병원을 집처럼 오가셔야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아버지의 인생을 『노인과 바다』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려본다면 그건 억측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낚시가 더 이상 낭만적 취미가 아닌 생계일 때의 고단함이 산티아고 노인의 손에 굳은살이 되어 박혀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에도 그것과 같은 고난의 세월이 새겨져 있다. 상처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는 화석같이 굳어져 버린 상태. 그 단단하던 손이 연약한 노인의 손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좀처럼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셨다. 휘황한 집어등 한 번 매달지 않고 휙휙 감아올리면 되는 자동조획기 하나 들여 놓지 않으시고 오로지 손으로만 망망대해를 낚아 올리신 아버지. 어쩌면 산티아고 노인처럼 아버지의 등과 어깨에도 내가 모르는 상처가 깊게 패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잘하게 생겼다 없어지는 상처들을 바닷물로 닦아내며 오로지 몸으로만 버텼을 인고의 세월. 그 고단함을 그 수고스러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행히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매우 긍정적인 인물이다. 무려 84일 동안이나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마침내 건져 올리게 될 한 마리의 물고기를 위해 누가 뭐라 해도 매순간 정확한 계산 하에 완벽한 기술을 구사할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감이나 운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로지 오랜 세월에 걸쳐 체득한 숙련된 요령을 선보일 요량으로 말이다. 드디어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걸려든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섣불리 힘자랑을 하는 대신 물고기의 흐름에 따라 찰나의 기회를 노리는 것. 꼬박 사흘 밤낮에 걸친 거대 물고기와의 사투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곧바로 엄청난 포획자들에게 이제 동지나 마찬가지인 그 물고기를 내어주게 된다.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지키려 노력한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급기야 형제애까지 불러 일으켰던 물고기에 대한 애정만은 아닐 것이다. 어부로서의 자존심,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보여준 열정 자부심 강단은 낚시가 생계를 위한 수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가늠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어부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한 대체할 수 없는 생계의 수단일 뿐이었을까. 아니길 바란다. 그랬다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달픈 인생이었겠는가. 얼마나 도망치고 싶은 인생이었겠는가. 아버지에게도 푸른 바다와 맞서 싸우는 넘치는 기개가 있었을 것이다. 생활의 터전이 되어준 바다와 생계의 씨앗이 되어준 물고기와 그 모든 것을 품은 거대 자연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를 마음에 품고 사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연은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만큼의 유머와 재치를 지니시진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다위에서 혼잣말을 되뇌셨을까. 혼자만의 계획, 혼자만의 다짐, 혼자만의 결심, 혼자만의 쟁취 승리 그리고 좌절까지…….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보여준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아버지의 바다에 대해 여쭤보려 한다. 그 누구도 위대하다 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줄 기회를 마련해보려 한다. 이제는 무릎조차 내려앉아 걷는 것도 여의치 않은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가 떠올릴 바다 위 자신의 모습은 절대자를 호령할 듯 기골이 장대한 강인한 사내였으면 좋겠다. 작디작은 통통배 한 척에 의지해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바다를 길어 올리셨던 아버지. 그 정도 배짱이면 된 것 아닌가. 아버지의 지금 모습이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될 만큼 이미 몸과 마음의 마지막 에너지를 바다에 쏟아 부으신 것이니까. 사자를 떠올리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도 아버지만의 ‘사자’를 가슴에 품고 사시길 바란다. 나약하고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라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지나온 세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자긍심을 품으시길 바란다.

 

 산티아고 할아버지에게 보여주는 소년의 애정과 우정이 가슴시리도록 애잔하다. 소년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음을 안다. 자연에 대한 경외, 겸손함을 잃지 않은 태도, 소년과 세상 만물에 대한 애정이 담긴 따듯한 책. 한 밤중에 울리는 전화벨에 반가운 마음보다 가슴 철렁함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가 걸어오신 인생,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짊어지고 온 너덜너덜한 물고기의 잔해가 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들만의 값진 훈장이라는 사실을. 감내하기 어려운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의지는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신이 가진 무엇도 내세우지 않은 채 오로지 순리를 따르는 겸손함, 인간의 오만함을 빙자해 자연의 위대함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가 돋보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 만큼 가슴 저미는 존재가 또 있을까 했는데, ‘아버지’ 역시 예외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가서기가 이해하기가 힘들어 애써 외면해왔던 아버지의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다. 『노인과 바다』가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이야기를 넘어 자연과 고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대서사시를 표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고전이 주는 감동을 새삼 마음에 새기게 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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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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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는 상처란 없다, 지금은 가시를 뽑아내야 할 때
- 김려령, 『가시고백』을 읽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는 문장은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혼자만의 비밀 혹은 고민. 가시처럼 마음에 콕 박힌 이것은 틈만 나면 생채기를 낸다. 곪아버리기 전에 얼른 뽑아버려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마음속의 비밀. 가시처럼 박힌 말 못할 고민에 오늘도 마음이 멍들고 있다면 김려령의 신작 『가시고백』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저마다의 가슴에 맺힌 가시 같은 고백을 마침내 토해내고 난 후 경험하게 되는 홀가분함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물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얼마간은 좀 더 아프겠지만 그쯤이야 뭐 대수랴. 일단 뽑고 나며 다음에 다시 가시가 박혀도 뽑아낼 수 있는 용기 혹은 요령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 날아오를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슬며시 웃게도 된다. 『완득이』를 통해 김려령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의 손에서 마침내 ‘알’을 깨고 ‘병아리’로 거듭난 ‘아리’와 ‘쓰리’를 통해 화해를 모색하고 있는 조금은 엉뚱한 설정이지만 그래서 더 뜨끈한 뭔가가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다.

 

 정교하고도 빠른 손놀림을 타고난 해일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서 움직이는 자신을 직업 도둑이라 칭한다.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외동딸이지만 친아버지와 새아버지 사이에서 지란은 뼛속까지 외롭다. 줄곧 반장만 해온 다영은 다른 아이들 챙기기에는 일등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에는 서툴기만 하다. 입이 좀 거칠긴 해도 뒤끝 없이 쿨한 진오는 POP글씨 쓰는 나름 섬세한 남자다.
 
 독사과를 손에 쥔 채 오늘도 타깃을 찾아 치밀한 모함을 일삼지만 결국 자신만 홀로 남게 되는 거울 공주 미연. 군대를 기점으로 천재에서 동네 바보형 쯤으로 전락해버린 감정설계사를 꿈꾸는 해철. 그리고 유정란에서 마침내 병아리로 재탄생한 ‘아리’와 ‘쓰리’. 병아리를 꿈꾸는 아들을 응원해주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될 것 같은) 부모님과 병아리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봐주는 담임선생님까지. 김려령의 신작 『가시고백』은 유쾌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유쾌하고, 모난 것 같으면서도 모나지 않은 경쾌하고도 진중한 소설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고민 중 단연 상위권에 랭크되는 공부(성적) 혹은 교우 관계(왕따) 보다는 저마다의 가슴에 지니고 있는 ‘상처’에 주목하고 있는 소설. 그 ‘상처’는 놀랍게도 ‘생명체’를 매개로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한다. 생명체란 바로 병아리 아리와 쓰리(인 동시에 등장인물 각자)다. 이 두 마리의 병아리는 잠정적으로 백숙 혹은 후라이드가 될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해일 진오 지란이라는 나름 끈끈한 삼총사 구도를 탄생시킨다. 그들만의 비행 그들만의 의기투합 그들만의 눈물을 통해 마침내 공유되는 해일의 비밀스런 가시 고백. 이 뜻밖의 고백이 삼총사의 우정을 갈라놓을지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지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비밀에 부쳐 두겠다.

 

 타인과의 소통은 서로의 상처와 고민을 공유했을 때 급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의 상처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덧 치유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시일이 오래 걸릴지라도 흉터가 좀 남을지라도 결국엔 새살이 차오른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 역시 이런 과정을 몸소 보여준다.  상처를 끌어안은 채 전전긍긍하는 대신 곪아버린 상처를 터트려 마침내 새 살이 돋을 길을 마련해준다. 혼자가 아닌 서로간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해봄직한 핫한 이야기들을 쿨하게 풀어내는 작가 김려령. 그녀의 재치 있는 입담을 이 작품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뭐, 풀어만해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이게 바로 우리의 생활언어야’라고 감탄할 만한 대목도 수두룩하다. 놀라운 흡입력과 생동감의 실체이기도 한 이 문장들은 작품에 빠져들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문제를 오랜 시간 고민해온 작가의 관찰력과 직관력이 돋보이는 작품. 비단 청소년들만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 사회 전반에 대한 화해를 시도하는 작품. 상처를 툭툭 건드리지만 마음을 톡톡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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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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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시대와의 진실한 소통을 꿈꾸다
- 김제동,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남편을 따라 오랜만에 서울로 나들이 간 날, 아침 일찍부터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소식을 미처 듣지 못했다. 상상할 수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날벼락 같은 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희대의 오보가 될 해프닝이겠거니 생각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넋이 나간 듯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거리엔 무가지 신문이 뿌려지고 줄지어 모여선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사는 곳에서 네 시간을 달려 서울로 향했던 그 날, 나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임시 영정 앞에 절을 올렸다. 5월이지만 바닥은 차가웠고, 그마저 비가 내려 금세 젖어 버렸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다. 누구를 지지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은 역사의 현장.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할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몸이 떨리도록 충격적이었지만 제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 자리를 회피해버린다면 훗날 아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람의 도리란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방송인 김제동씨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도 ‘사람의 도리’라 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이고,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한 순간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퇴보는 그 후로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격려와 지원보다 감시와 제재가 늘어난 오늘의 현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참여하며 이끌어나가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그래서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된 행동 한 번 한 적이 없다. 아휴 머리 아파, 하며 오히려 안 듣고 안보고 무관심한 채 살아왔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만나게 된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본의든 아니든 정치적 논리를 휘두르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정치라면 두 눈 딱 감아버리는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언제 정치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최소한 무엇을 해야 할 지 입장을 정리해볼 수 있었겠는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좌빨’이라고 오해받는 세상에서 얼마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정치란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걸음이 선거 날 빼놓지 않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단지 한 표 행사했다는 행위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후보와 정당에 관심을 가지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싶지만 지나온 10년간만 되돌아보더라도 국민의 힘으로 해 낸 것은 참으로 많다. 적어도 진심과 정의가 거짓과 비리를 심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정치 이야기만 담고 있는 인터뷰집이라 오해하진 마시길.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도적으로 혹은 지배적으로 혹은 은둔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물다섯 명의 인터뷰이와 김제동이라는 한 명의 인터뷰어가 엮어나가는 ‘살맛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어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주목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더 많이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 그런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들을 저마다의 지혜로 보듬고 살아낸 후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런 고생 끝에 이만한 성공을 거두었어요’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터뷰집이라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시에 감동을 주겠지만, 휴……. 어떻게 보면 거리감(혹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다행히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 등장하는 대중스타를 포함한 작가 과학자 정치인 기업인 스포츠인 등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현재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진지한 입장을 전하고 있다. ‘이런 본보기가 되는 인생을 사세요’가 아니라 ‘이런 고민들도 한 번쯤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며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익숙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낯선 인터뷰이들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김제동이라는 인터뷰어 때문일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의 이야기부터 스스럼없이 꺼낸다. 인터뷰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그만의 소통화법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껄끄럽지 않게 전달한다. 진심이 오가는 동안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예리하면서도 따듯하다. 민감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몰랐다면 모르고 살았을 테지만 알고 나니 관가할 수 없는 이 땅의 부조리한 현실들에 두 주먹 불끈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저 유명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철학과 시대적인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있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대해. 일개 소시민일 뿐이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가뜩이나 사람 냄새 가득한 김제동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별 말 하지 않아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 자신을 낮춤으로써 타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람. 방송인 김제동은 이 시대가 원하는 ‘진실한 소통’의 아이콘인지도 모른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번쯤 토해내고 싶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닐까. 삶의 철학을 들려주는 동시에 시대의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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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가만히 조용히 빛이 되어준 아이, 유유
- 마리우스 세라,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는 스페인에서 소설가이자 언론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다.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전 생애를 담담히 기록해나가고 있는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신 오히려 더 절제된 시선으로 유유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유는 행정용어로 85퍼센트의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가족들은 나머지 15퍼센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향해 도전한다. 몸무게가 비교적 적게 나갈 때 보다 먼 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의지. 일곱 해라는 짧은 생을 허락받은 유유를 위해 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려는 가족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펼쳐진다. 이런 가족들 덕분에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유유의 세상이 된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놓이곤 한다. 어딘가 위축되거나 주눅 든 채 숨어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와 조금 다른 그들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병든 시선이 몸이 불편한 그들을 더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유의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도 당당하게 식사를 마친다. 휠체어를 가로막는 불법주정차들을 물리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불합리한 시선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매순간 자신감과 의욕이 충만할 수는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절망과 비통함 역시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손길도, 아빠의 보살핌도, 누나의 속삭임도 기억하지 못하는 유유. 그저 멍하니 휠체어에 누운 채 수많은 약에 의지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 하지만 아버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매순간 하늘의 계시를 염원한다. 연약한 유유로 인해 불사신이 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과연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반문해보게 된다. 좀처럼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인지, 어떤 부모가 되어줄 것인지를 고민해 본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유의 달리는 모습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뮤토스코프(이미지를 연속해서 넘겨 보여줌으로써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 활동사진) 작업을 통해 유유는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아들의 달리는 모습을 간절하게 염원하던 아버지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순간, 유유는 마음속의 말을 전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야 만다.

 

 선천적 뇌질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가만히 한 자세로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아이. 평균 수명 7년. 일찌감치 사망선고를 받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 유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를 지닌 유유는 알고 보니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절망 이면의 희망을 보게 만드는 아이, 눈물과 웃음의 참 의미를 알게 해 준 아이, 평범한 일상의 축복을 역설하는 아이, 한없이 나약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단단하게 영글게 해 준 아이. 가능성 희망 기적이라는 단어의 절박함을 알게 해 준 아이. 유유는 가만히 휠체어에 누운 채 이 세상을 살다 갔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은 오히려 더 변화무쌍하게 흘러갔다. 유유로 인해 더 강인해진 가족의 이야기, 그들의 삶 속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보이는 장애를 넘어 보이지 않는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 유유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줄 것이다.

 

- 책 속 추천 구절

 

행정 용어로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런 모든 꼬리표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는 나의 둘째 아이다. 그 애한테는 조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몸이 약한 아들을 돌보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매달린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4쪽)

 

우리가 줄을 서 있는데, 한 나이든 아주머니가 다가와 유이스를 가리키며 당신의 두 딸도 유유와 같다고 말한다. (…) 어떤 식으로 위로의 말을 전할까 곰곰 생각하는 사이 아주머니가 선수를 친다. 전혀 빈정거리는 빛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과 환한 미소로 반박할 수 없는 한마디를 한다.
“이 아이들은 하느님의 선물이에요.”(119쪽) 

 

이처럼 쉽게 상처받는 아들이 있어, 예전 같으면 고통스럽게 느꼈을 수많은 역경 앞에서 나는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아들이 그처럼 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힘을 비축한다. 이런 내 모습은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하다. 아들과 함께 있기에 나는 불사신이 된다. (145쪽)

 

우리는 유이스의 VIP 카드 덕분에 줄도 서지 않고 유로디즈니의 놀이기구란 기구는 다 타며 사흘을 꽉 채워 보낸다. 카를라는 보는 것마다 빼놓지 않고 동생의 귀에 전달하는 남미 방송국의 사회자로 변신한다. 딸아이의 생글거리는 눈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탄이 마구 뿜어 나온다. 유유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의 특별한 VIP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165~166쪽)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달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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