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가만히 조용히 빛이 되어준 아이, 유유
- 마리우스 세라,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는 스페인에서 소설가이자 언론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다.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들의 전 생애를 담담히 기록해나가고 있는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신 오히려 더 절제된 시선으로 유유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유는 행정용어로 85퍼센트의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가족들은 나머지 15퍼센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향해 도전한다. 몸무게가 비교적 적게 나갈 때 보다 먼 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의지. 일곱 해라는 짧은 생을 허락받은 유유를 위해 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려는 가족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펼쳐진다. 이런 가족들 덕분에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유유의 세상이 된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놓이곤 한다. 어딘가 위축되거나 주눅 든 채 숨어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와 조금 다른 그들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병든 시선이 몸이 불편한 그들을 더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유의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도 당당하게 식사를 마친다. 휠체어를 가로막는 불법주정차들을 물리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불합리한 시선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매순간 자신감과 의욕이 충만할 수는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절망과 비통함 역시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손길도, 아빠의 보살핌도, 누나의 속삭임도 기억하지 못하는 유유. 그저 멍하니 휠체어에 누운 채 수많은 약에 의지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 하지만 아버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매순간 하늘의 계시를 염원한다. 연약한 유유로 인해 불사신이 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과연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반문해보게 된다. 좀처럼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인지, 어떤 부모가 되어줄 것인지를 고민해 본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유의 달리는 모습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뮤토스코프(이미지를 연속해서 넘겨 보여줌으로써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 활동사진) 작업을 통해 유유는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아들의 달리는 모습을 간절하게 염원하던 아버지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순간, 유유는 마음속의 말을 전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야 만다.

 

 선천적 뇌질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가만히 한 자세로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아이. 평균 수명 7년. 일찌감치 사망선고를 받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 유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를 지닌 유유는 알고 보니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절망 이면의 희망을 보게 만드는 아이, 눈물과 웃음의 참 의미를 알게 해 준 아이, 평범한 일상의 축복을 역설하는 아이, 한없이 나약해질 수 있는 마음을 단단하게 영글게 해 준 아이. 가능성 희망 기적이라는 단어의 절박함을 알게 해 준 아이. 유유는 가만히 휠체어에 누운 채 이 세상을 살다 갔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은 오히려 더 변화무쌍하게 흘러갔다. 유유로 인해 더 강인해진 가족의 이야기, 그들의 삶 속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보이는 장애를 넘어 보이지 않는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 유유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줄 것이다.

 

- 책 속 추천 구절

 

행정 용어로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런 모든 꼬리표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는 나의 둘째 아이다. 그 애한테는 조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몸이 약한 아들을 돌보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매달린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4쪽)

 

우리가 줄을 서 있는데, 한 나이든 아주머니가 다가와 유이스를 가리키며 당신의 두 딸도 유유와 같다고 말한다. (…) 어떤 식으로 위로의 말을 전할까 곰곰 생각하는 사이 아주머니가 선수를 친다. 전혀 빈정거리는 빛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과 환한 미소로 반박할 수 없는 한마디를 한다.
“이 아이들은 하느님의 선물이에요.”(119쪽) 

 

이처럼 쉽게 상처받는 아들이 있어, 예전 같으면 고통스럽게 느꼈을 수많은 역경 앞에서 나는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아들이 그처럼 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힘을 비축한다. 이런 내 모습은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하다. 아들과 함께 있기에 나는 불사신이 된다. (145쪽)

 

우리는 유이스의 VIP 카드 덕분에 줄도 서지 않고 유로디즈니의 놀이기구란 기구는 다 타며 사흘을 꽉 채워 보낸다. 카를라는 보는 것마다 빼놓지 않고 동생의 귀에 전달하는 남미 방송국의 사회자로 변신한다. 딸아이의 생글거리는 눈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탄이 마구 뿜어 나온다. 유유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의 특별한 VIP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165~166쪽)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달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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