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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김제동, 시대와의 진실한 소통을 꿈꾸다
- 김제동,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남편을 따라 오랜만에 서울로 나들이 간 날, 아침 일찍부터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소식을 미처 듣지 못했다. 상상할 수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날벼락 같은 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희대의 오보가 될 해프닝이겠거니 생각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넋이 나간 듯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거리엔 무가지 신문이 뿌려지고 줄지어 모여선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사는 곳에서 네 시간을 달려 서울로 향했던 그 날, 나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임시 영정 앞에 절을 올렸다. 5월이지만 바닥은 차가웠고, 그마저 비가 내려 금세 젖어 버렸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다. 누구를 지지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은 역사의 현장.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할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몸이 떨리도록 충격적이었지만 제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 자리를 회피해버린다면 훗날 아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람의 도리란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방송인 김제동씨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도 ‘사람의 도리’라 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이고, 선봉에 섰다는 이유로 한 순간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퇴보는 그 후로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격려와 지원보다 감시와 제재가 늘어난 오늘의 현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참여하며 이끌어나가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그래서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된 행동 한 번 한 적이 없다. 아휴 머리 아파, 하며 오히려 안 듣고 안보고 무관심한 채 살아왔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만나게 된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본의든 아니든 정치적 논리를 휘두르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정치라면 두 눈 딱 감아버리는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언제 정치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최소한 무엇을 해야 할 지 입장을 정리해볼 수 있었겠는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좌빨’이라고 오해받는 세상에서 얼마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정치란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걸음이 선거 날 빼놓지 않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단지 한 표 행사했다는 행위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후보와 정당에 관심을 가지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싶지만 지나온 10년간만 되돌아보더라도 국민의 힘으로 해 낸 것은 참으로 많다. 적어도 진심과 정의가 거짓과 비리를 심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정치 이야기만 담고 있는 인터뷰집이라 오해하진 마시길.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도적으로 혹은 지배적으로 혹은 은둔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물다섯 명의 인터뷰이와 김제동이라는 한 명의 인터뷰어가 엮어나가는 ‘살맛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어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주목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더 많이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 그런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들을 저마다의 지혜로 보듬고 살아낸 후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런 고생 끝에 이만한 성공을 거두었어요’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터뷰집이라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시에 감동을 주겠지만, 휴……. 어떻게 보면 거리감(혹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다행히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 등장하는 대중스타를 포함한 작가 과학자 정치인 기업인 스포츠인 등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현재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진지한 입장을 전하고 있다. ‘이런 본보기가 되는 인생을 사세요’가 아니라 ‘이런 고민들도 한 번쯤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며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익숙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낯선 인터뷰이들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김제동이라는 인터뷰어 때문일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의 이야기부터 스스럼없이 꺼낸다. 인터뷰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그만의 소통화법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도 껄끄럽지 않게 전달한다. 진심이 오가는 동안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예리하면서도 따듯하다. 민감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몰랐다면 모르고 살았을 테지만 알고 나니 관가할 수 없는 이 땅의 부조리한 현실들에 두 주먹 불끈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저 유명인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철학과 시대적인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있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대해. 일개 소시민일 뿐이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가뜩이나 사람 냄새 가득한 김제동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별 말 하지 않아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 자신을 낮춤으로써 타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사람. 방송인 김제동은 이 시대가 원하는 ‘진실한 소통’의 아이콘인지도 모른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번쯤 토해내고 싶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닐까. 삶의 철학을 들려주는 동시에 시대의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이제라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