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두뇌태교 - 똑똑하고 논리적인 아이를 만드는
송명진 지음 / 이른아침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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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읽기만 해도 생각이 커가는 태교 책
- 송명진, 『수학두뇌태교』를 읽고


 임신을 한 예비엄마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아가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건강한 아가를 출산하기 위해 자연스레 산모는 자신의 몸을 돌보게 된다. 음식을 가려먹게 되고, 좋은 공기를 쐬기 위해 평소 소홀히 하던 산책도 즐기게 된다. 작은 소음에도 신경이 쓰이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건강’은 물론 ‘태교’와도 연관이 있다.

 임신 기간 동안 내가 선택한 태교 방법은 ‘독서태교’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행한다면 아가도 분명 좋아할 것이기에 평소 좋아하는 책읽기를 태교로 삼은 것이다. 음악 역시 필수! 책읽기에 방해되지 않는 잔잔한 음악을 늘 틀어놓고 책을 펼쳐든다. 소설과 에세이뿐만 아니라 태교 책도 여러 권 구입해서 읽었다. 대부분이 동화를 테마로 한 책이어서 그런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출산 전에 뭔가 다른 사고를 요하는 태교를 하고 싶은데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이 ‘수학’을 테마로 한 『수학두뇌태교』라는 책이다. 임신 중에 바느질을 하면 아가의 숫자 감각을 키워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엄마인 나는 바느질에 자신이 없으니 도전한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망설였었다. 이런 나에게 『수학두뇌태교』는 읽어볼만 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아가를 위해서라면 싫은 것도 감수해야하는 법. 도전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수학두뇌태교』는 미래의 수학자를 꿈꾸는 6학년 아들을 둔 수학교육 전공자 송명진님이 집필한 책이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수학’을 태교의 한 분야로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대부분의 태교 책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임신 1주차부터 40주차까지 엄마와 태아의 변화를 첫머리에 언급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차별화전략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하면 맨 먼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수학을 유달리 좋아하지 않는 이상 머리가 지끈지끈 골치부터 아파올 것이다. 『수학두뇌태교』는 이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준다.

 태교의 기본은 엄마가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엄마인 저자가 모를 리 없다. 임신 1주차부터 40주차에 걸친 엄마와 아가의 변화를 자연스레 수학과 연결해 들려준다. 공부한다는 느낌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생긴다. 분명 수학은 골치 아픈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매주 조금씩 성장해가는 아가와 관련을 지으니 의외로 재미가 있다. 이야기는 평균 세 페이지를 넘지 않으며 마지막에 수학문제를 수록하고 있다. 문제는 어렵지 않다. 앞의 설명을 이해했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수준. 재미있는 것은 가끔 계산을 해야 하는 수학이 아닌 생각을 해야 하는 넌센스 같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바짝 긴장을 하며 풀다가 결국에는 웃게 된다.

 굳이 문제를 풀 필요는 없다. 저자의 설명을 조곤조곤 따라 읽다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의 힘이 태아의 두뇌를 수학두뇌로 만들어 주는 비밀이 아닐까. 매일 조금씩 혹은 임신주기에 맞춰 읽어가기에 부담이 없는 책이다. 엄마의 작은 노력과 생각이 아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안다면 소홀히 할 수 없는 태교. 나처럼 수학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 예비엄마라도 읽어본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동화태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엄마의 사고영역 또한 넓혀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익히 배워왔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수학개념들. 수학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아가를 위해서라면 결코 배제시킬 수 없는 분야다(어쩌면 절실히 필요한 분야가 될지도). 『수학두뇌태교』를 통해 수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보자. 어렵지 않다. 엄마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에 자그마한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기에 용기를 내어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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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14일
네이버 오늘의 책
제가 쓴 리뷰가 소개되었답니다

 
- 내용보기 -

http://book.naver.com/todaybook/todaybook_vw.nhn?mnu_cd=naver&show_dt=20091114 

 - 리뷰보기 -

http://blog.aladin.co.kr/soulnote/320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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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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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림 치유 에세이
- 김홍기, 『하하미술관』을 읽고

 창문을 꼭꼭 걸어 잠궈도 어느 틈에선가 찬바람이 스며드는 계절. 가을은 청명한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차가운 기운을 지닌 계절이다. 곧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겨울이 될테니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넌지시 당부라도 하는 것 같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야 그 온기로 잠이 들고, 하나라도 더 껴입어야 체온이 유지되는 계절을 맞고 보니 알 것 같다. 바지런히 걸어온 지난 시간동안 겉모습은 조금 더 세련되고 정갈하며 세상을 다 아는 듯 넉넉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정작 속은 텅 비어간다는 사실을. 계절 탓이려니 했는데 마음에 구멍이 뚫려 이렇게도 추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 품에 꼭 안고 싶은 책이 있다. 비어있는 마음에 켜켜이 쌓여 오래도록 자양분이 되어줄 참으로 따스하고 평온한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의 『하하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린 『하하미술관』은 포털에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미술과 패션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는 김홍기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스물일곱개의 소제목이 시처럼 수놓인 책에는 국내 작가의 그림(작품)에 미술치료 기법을 간간이 접목시키고, 작가의 개인사를 곁들여 공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림을 읽어주는 책이라 다소 어렵고 생소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루하지도 않다. 작가의 말처럼 공감이란 ‘결국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와서 비슷한 무늬의 퍼즐을 맞추어(p.83)'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그림들은 처음 접하는 것임에도 충분히 마음에 와 닿는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낯설지 않다. 그림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자연스레 나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살아왔던 일상의 속도를 점검해본다. 치아를 가지런히 드러낸 함박웃음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닌 토마토라는 엉뚱한 상상에도 동참해본다. 늦게 찾아온 방황에 다소 황망했던 꽃다운 나의 이십대가 ‘골 때리는 스물다섯’ 앞에서 실소를 터트린다. 붕대가 안겨준 뜻밖의 온정에 아픈 상처대신 희망을 떠올려본다. 구조조정의 광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아버지, 남편들의 처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오늘 나의 두 손이 누군가에게 온정을 베풀고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언제 마지막으로 전시회를 관람했던가. 나도 미술관을 즐겨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팸플릿을 고이 스크랩하며 그 날의 느낌을 짧은 메모로 기록해 놓기도 했었다. 지금은 집 근처에 있는 아담한 갤러리조차 선뜻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어느덧 삶에서 멀어져버린 그림들. 그런 작품들을 다시 내 안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바로 ‘김홍기’ 작가다. 책에 소개된 작품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을 노력이 엿보인다. 문외한인 나에게조차 쉽고 빠르게 흡수되니 말이다. 글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찬찬히 그림을 살핀다. 먼저 작가의 생각을 따라 그림을 읽은 후 개인적인 생각을 곁들여 감상해 보는 것이다. 새로운 느낌과 생각이 고인다. 빈 항아리에 물이 차오르듯 마음이 조금씩 찰랑인다.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 줄 거라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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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9.가을 - Vol.14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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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꿈꾸게 만드는 ‘풋’
- 『풋, 2009 가을호』를 읽고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난 시간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말갛고 고왔던 한 시절, 여고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꿈이 있어 치열하고도 행복했던 그때. 섣부른 반항 대신 묵묵한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지나 온 듯 보이지만 실은 내면에 무수한 바람이 일었던 시절. 목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그때 나를 달뜨게 만든 것은 ‘시’였다. 시로 인해 숨을 쉴 수 있었고 희망이란 걸 품어보게 되었다. 자연스레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보란 듯이 글 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어 다행이다.

 『풋』은 싱그러운 꿈으로 가득했던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다소 무모하기까지 했던 치기어린 열정이 마음가득 차올랐던 그때. 풋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듯 달콤새콤한 이중주에 온 몸의 세포가 스멀스멀 깨어나는 듯 느낌이다. ‘청소년을 위한 전방위 문학문화잡지’라는 표제어를 내건 『풋』은 말 그대로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세계에 한 발 더 깊숙이 들여놓을 수 있도록 심도 깊은 이야기를 포진시켜 지적 호기심을 무한 자극하고 있다.

 가을호의 첫 번째 스페셜 테마는 ‘클립’이다. 클립의 기원과 역사는 물론 청소년들의 자작시와 에세이로 이야기는 풍성함을 더한다. 소설가 김숨의 짧은 소설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하는 클립에 대한 단상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가 만들어 내는 만화경 같은 풍경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클립에 얽힌 오색찬란한 이야기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두 번째 스페셜 테마는 ‘책’이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2009년 가을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라고 보면 될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관심사 쪽으로 편독을 하게 마련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분야를 들여다보니 실로 다채롭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슬쩍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풋』의 첫 지면에는 제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글’에 대한 욕심과 애정으로 똘똘 뭉쳤던 나의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한 대목이기도 하다. 대회 내용과 심사경위 심사평 작품 등이 수록되어 있어 문학을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줄 듯하다. 머지않은 미래의 소설가와 시인을 만난 듯 수상자의 이름을 꼭꼭 되씹어본다. 신경숙 작가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와 로드 스쿨러 이보라 양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잘 버무려낸 『풋』은 그야말로 전방위 문학문화잡지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책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청소년이라면 늘 곁에 두고 펼쳐보아야 할 것이고, 문학을 사랑하는 어른들 역시 관심 기울여 볼 만하다. ‘잡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태어난 책을 이처럼 꼼꼼하게 살펴 본 것도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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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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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고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현대인의 필수 소통 창구라면 메신저 휴대전화 이메일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거나 알게 모르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위는 거의 무의식중 중독의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서로 더 가까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생각의 패턴까지도 읽게 된다. 그러나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 아! 우리는 빈번한 소통 속에서도 대화의 부재를 경험하며 사는구나, 서로의 사생활까지 은밀하게 공유하면서도 진실한 내면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구나. 너와 나 사이의 소통의 한계. 이것이 디지털화된 소통이 가져다준 익명성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지극히 아날로그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이메일 대신 편지를 애용한다. 눈 먼 개 와조와 여행을 시작한지도 어느 덧 삼년. 그는 말더듬는 버릇과 집에만 있으면 생기는 발작증상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했다. 말을 더듬는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타고난 지훈.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을 숫자로 기억한다. 단, 주소를 불러준 사람에 한해서 숫자를 부여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쓴다. 연필로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서. 하루 여행의 마감은 언제나 편지가 대신한다. 그날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받아줄 것 같은 숫자를 물색해 편지를 쓴지도 삼년이 흘렀다. 이제 그만 여행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에게라도 답장을 받는 날이 지훈이 여행을 끝내는 날이다.

 때로는 피치 못할 일도 생기는 법.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이 751에게 숫자를 부여한 것은. 먼저 말을 걸지도 주소를 알지도 못하는데 751은 751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일명 방랑소설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소설을 판매하고 새 소설을 집필해나간다. 지하철 버스 광장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목청을 돋워 소설을 판다. 그다지 쓸모없는 생필품을 권하는 장사꾼보다 그녀의 행동이 더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실적 역시 저조하다. 그러나 많이 빨리 팔아야할 이유도 없다. 그녀 여행의 끝은 소설을 완성하는 날이니까.

 이 둘의 만남은 우연 혹은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소설의 소재와 영감을 얻는 751은 당연히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 우연한 계기로 맹인과 안내견으로 변신한 지훈 일행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자연스런 상황. 거기에 소매치기라는 우연이 겹쳐지면서 이 둘의 모텔 동거는 시작된다. (에로스적인 것을 상상하지 마시길. 오랜 여행자에게 모텔은 말 그대로 쉬었다 가는 곳이요, 하룻밤 묵었다 가는 장소에 불과하니까.) 익명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익명을 유지한 채 관계를 이어나간다.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늘 혼자였던 0(지훈에게 그녀가 붙여준 숫자)과 둘 이상인 관계를 힘들어하던 751은 어느 덧 ‘둘’인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지훈과 그녀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밝혀진다. 답장을 받는 날 여행을 끝내겠다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지훈의 아픔 역시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여행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와조의 사연,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편지에 드러난다. 나는 언제 한 번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보았던가. 신년이나 생일날 카드에 적어 보낸 몇 줄이 전부였던 것 같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온전히 내보이는 일이다. 그것이 서툴고 어색해 편지를 그만 쓰게 된 것일까...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는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사려 깊은 시간이 흐른다. 둘 중 누군가는 까맣게 잊고 지낸 추억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기도 하고, 약간의 오해로 소원해진 마음이 봄 눈 녹듯 풀리기도 한다. 진심을 담고 있어 매력적인 편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낯설어진 오늘날. 편지를 쓴다는 것은 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낯설고도 친근한 편지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따뜻하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받아든 것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지훈과 동행을 하게 된 751 역시 지훈처럼 혼자를 선택했지만 이 둘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더듬는 버릇을 고치겠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책을 판다는 것 역시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지훈과 751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둘 이상을 못 견뎌하는 이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각자의 방법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훈의 편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은 특별하고 진지하다. 지훈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사람과 그들의 사연이 이미 내 것이 된 것처럼 아련하고 아리다. 그래도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따뜻함’이다. 대화와 편지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체온을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므로.

 이 소설을 통해 생각보다 사람들은 무심하지도 무례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먼저 관심이나 호의를 보일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 모른다. 한 번만 말을 걸어준다면, 한 번만 알은 체를 해 준다면 이때다 싶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지 모른다.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자신을 알리고 타인을 알아갈 수 있게 된 지금,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고독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내보이며 살고 있지만 정작 소소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오랜 지기(知己)의 관계는 갈수록 사라져가는 것처럼. 쉽게 알아가는 만큼 빨리 소원해지는 관계.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다.

 오랜만에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또각또각 슥슥슥...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 한 통에 마음을 담아 이 책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 2연타로 몰아치는 반전에 눈물이 핑 돌 것이다. 그 후엔 헛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덮게 될 것이다. 지훈을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질 것이다.  손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입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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