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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림 치유 에세이
- 김홍기, 『하하미술관』을 읽고
창문을 꼭꼭 걸어 잠궈도 어느 틈에선가 찬바람이 스며드는 계절. 가을은 청명한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차가운 기운을 지닌 계절이다. 곧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겨울이 될테니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넌지시 당부라도 하는 것 같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야 그 온기로 잠이 들고, 하나라도 더 껴입어야 체온이 유지되는 계절을 맞고 보니 알 것 같다. 바지런히 걸어온 지난 시간동안 겉모습은 조금 더 세련되고 정갈하며 세상을 다 아는 듯 넉넉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정작 속은 텅 비어간다는 사실을. 계절 탓이려니 했는데 마음에 구멍이 뚫려 이렇게도 추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 품에 꼭 안고 싶은 책이 있다. 비어있는 마음에 켜켜이 쌓여 오래도록 자양분이 되어줄 참으로 따스하고 평온한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의 『하하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이미 마음을 빼앗겨버린 『하하미술관』은 포털에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미술과 패션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는 김홍기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스물일곱개의 소제목이 시처럼 수놓인 책에는 국내 작가의 그림(작품)에 미술치료 기법을 간간이 접목시키고, 작가의 개인사를 곁들여 공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그림을 읽어주는 책이라 다소 어렵고 생소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루하지도 않다. 작가의 말처럼 공감이란 ‘결국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와서 비슷한 무늬의 퍼즐을 맞추어(p.83)'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그림들은 처음 접하는 것임에도 충분히 마음에 와 닿는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낯설지 않다. 그림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자연스레 나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살아왔던 일상의 속도를 점검해본다. 치아를 가지런히 드러낸 함박웃음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닌 토마토라는 엉뚱한 상상에도 동참해본다. 늦게 찾아온 방황에 다소 황망했던 꽃다운 나의 이십대가 ‘골 때리는 스물다섯’ 앞에서 실소를 터트린다. 붕대가 안겨준 뜻밖의 온정에 아픈 상처대신 희망을 떠올려본다. 구조조정의 광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아버지, 남편들의 처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오늘 나의 두 손이 누군가에게 온정을 베풀고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언제 마지막으로 전시회를 관람했던가. 나도 미술관을 즐겨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팸플릿을 고이 스크랩하며 그 날의 느낌을 짧은 메모로 기록해 놓기도 했었다. 지금은 집 근처에 있는 아담한 갤러리조차 선뜻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어느덧 삶에서 멀어져버린 그림들. 그런 작품들을 다시 내 안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바로 ‘김홍기’ 작가다. 책에 소개된 작품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을 노력이 엿보인다. 문외한인 나에게조차 쉽고 빠르게 흡수되니 말이다. 글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찬찬히 그림을 살핀다. 먼저 작가의 생각을 따라 그림을 읽은 후 개인적인 생각을 곁들여 감상해 보는 것이다. 새로운 느낌과 생각이 고인다. 빈 항아리에 물이 차오르듯 마음이 조금씩 찰랑인다.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 줄 거라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