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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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고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현대인의 필수 소통 창구라면 메신저 휴대전화 이메일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거나 알게 모르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위는 거의 무의식중 중독의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서로 더 가까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생각의 패턴까지도 읽게 된다. 그러나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 아! 우리는 빈번한 소통 속에서도 대화의 부재를 경험하며 사는구나, 서로의 사생활까지 은밀하게 공유하면서도 진실한 내면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구나. 너와 나 사이의 소통의 한계. 이것이 디지털화된 소통이 가져다준 익명성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지극히 아날로그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이메일 대신 편지를 애용한다. 눈 먼 개 와조와 여행을 시작한지도 어느 덧 삼년. 그는 말더듬는 버릇과 집에만 있으면 생기는 발작증상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했다. 말을 더듬는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타고난 지훈.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을 숫자로 기억한다. 단, 주소를 불러준 사람에 한해서 숫자를 부여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쓴다. 연필로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서. 하루 여행의 마감은 언제나 편지가 대신한다. 그날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받아줄 것 같은 숫자를 물색해 편지를 쓴지도 삼년이 흘렀다. 이제 그만 여행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에게라도 답장을 받는 날이 지훈이 여행을 끝내는 날이다.

 때로는 피치 못할 일도 생기는 법.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이 751에게 숫자를 부여한 것은. 먼저 말을 걸지도 주소를 알지도 못하는데 751은 751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일명 방랑소설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소설을 판매하고 새 소설을 집필해나간다. 지하철 버스 광장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목청을 돋워 소설을 판다. 그다지 쓸모없는 생필품을 권하는 장사꾼보다 그녀의 행동이 더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실적 역시 저조하다. 그러나 많이 빨리 팔아야할 이유도 없다. 그녀 여행의 끝은 소설을 완성하는 날이니까.

 이 둘의 만남은 우연 혹은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소설의 소재와 영감을 얻는 751은 당연히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 우연한 계기로 맹인과 안내견으로 변신한 지훈 일행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자연스런 상황. 거기에 소매치기라는 우연이 겹쳐지면서 이 둘의 모텔 동거는 시작된다. (에로스적인 것을 상상하지 마시길. 오랜 여행자에게 모텔은 말 그대로 쉬었다 가는 곳이요, 하룻밤 묵었다 가는 장소에 불과하니까.) 익명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익명을 유지한 채 관계를 이어나간다.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늘 혼자였던 0(지훈에게 그녀가 붙여준 숫자)과 둘 이상인 관계를 힘들어하던 751은 어느 덧 ‘둘’인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지훈과 그녀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밝혀진다. 답장을 받는 날 여행을 끝내겠다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지훈의 아픔 역시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여행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와조의 사연,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편지에 드러난다. 나는 언제 한 번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보았던가. 신년이나 생일날 카드에 적어 보낸 몇 줄이 전부였던 것 같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온전히 내보이는 일이다. 그것이 서툴고 어색해 편지를 그만 쓰게 된 것일까...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는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사려 깊은 시간이 흐른다. 둘 중 누군가는 까맣게 잊고 지낸 추억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기도 하고, 약간의 오해로 소원해진 마음이 봄 눈 녹듯 풀리기도 한다. 진심을 담고 있어 매력적인 편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낯설어진 오늘날. 편지를 쓴다는 것은 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낯설고도 친근한 편지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따뜻하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받아든 것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지훈과 동행을 하게 된 751 역시 지훈처럼 혼자를 선택했지만 이 둘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더듬는 버릇을 고치겠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책을 판다는 것 역시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지훈과 751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둘 이상을 못 견뎌하는 이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각자의 방법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훈의 편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은 특별하고 진지하다. 지훈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사람과 그들의 사연이 이미 내 것이 된 것처럼 아련하고 아리다. 그래도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따뜻함’이다. 대화와 편지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체온을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므로.

 이 소설을 통해 생각보다 사람들은 무심하지도 무례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먼저 관심이나 호의를 보일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 모른다. 한 번만 말을 걸어준다면, 한 번만 알은 체를 해 준다면 이때다 싶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지 모른다.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자신을 알리고 타인을 알아갈 수 있게 된 지금,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고독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내보이며 살고 있지만 정작 소소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오랜 지기(知己)의 관계는 갈수록 사라져가는 것처럼. 쉽게 알아가는 만큼 빨리 소원해지는 관계.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다.

 오랜만에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또각또각 슥슥슥...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 한 통에 마음을 담아 이 책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 2연타로 몰아치는 반전에 눈물이 핑 돌 것이다. 그 후엔 헛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덮게 될 것이다. 지훈을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질 것이다.  손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입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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