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 투명한 햇살, 올리브나무, 키안티 와인 반 병, 파스타...
필 도란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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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하루 진정으로 즐거우셨나요?
 - 필 도란,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을 읽고


 평온한 시골 마을에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꿈,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로망 중 하나일 것이다. 코끝을 간질이는 상쾌한 바람, 스멀스멀 번져오는 따스한 햇살, 경쾌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우리는 언젠가부터 전원의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의 아내 혹은 남편이 머나먼 타국의 한 시골 마을에 250년도 더 된 집을 사놓았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도 노후자금으로 마련해둔 거의 전 재산을 다 털어 부었다고 한다면?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은 작가 필 도란의 아내 낸시가 남편의 동의 없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시골마을 캠비오네에 여생을 보낼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를 마련하서부터 시작된다. 할리우드에서 시트콤작가 겸 제작자로 25년간 일해 온 필 도란. 한 때 잘나가는 작가로 밤낮없이 일할 당시 그와 비슷한 상황의 많은 동료들이 이혼의 위기를 겪어야했다. 이들 부부는 이혼을 생각하는 대신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냈는데, 필 도란이 바빠질 시기마다 낸시가 이탈리아로 건너가 대리석 조각을 배우는 것이다. 10여년 정도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낸시는 피렌체에 있는 미술관에 전시를 할 만한 조각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여생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덜컥 집을 사버리고 만다. 길도 나지 않은 곳에 위치한 250년도 더 된(알고 보니 1000년은 더 된) 옛집을.

 어느 날, 아내에게 걸려온 말도 안 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토스카나로 날아간 필 도란. 팔리지 않는 시나리오 때문에 전전긍긍할 바에 머리나 식히고 오자고 가볍게 생각했다. 막상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사고)방식과 연이어 터지는 사건사고들 뿐.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10분이면 해결되는 점심식사를 4시간에 걸쳐서 하고, 여름 중에서도 가장 핫한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직원들이 해변에 가야한다는 이유로 수영장 문을 닫아버리고, 공공기관의 행정 처리는 굼벵이 기어가는 것보다 더 더디기만 한 이탈리아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호되는 미국과 달리 사사건건 참견하려드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이 진심임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 것이다. 특히 엄마 이야기와 여자의 눈물에 약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마음에 동화될수록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작가의 마음도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그에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조금씩 묻어난다고 할까.

 필 도란에게 미국은 생활의 모든 편리함과 부와 명성을 안겨준 반면 철저하게 고립되고 치열하게 경쟁해야하는 만성 위경련을 일으킬만한 공간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여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곳이다. 물론 다 쓰러져가는 집을 완벽하게 리모델링해 꿈의 보금자리로 복원하기 위해 시당국과 베수비아 핑가토레 집안과 지루하게 싸움을 해야 하긴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 대만족! 아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부부가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가게 된다.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은 필 도란의 좌충우돌 이탈리아 정착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깨달음들이 담겨있다. 이 책을 펼쳐들었다면 당신도 이미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가는 경쾌한 여행에 한 발 들여놓은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진심으로 자문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행서를 읽을 때보다 더 이탈리아로 빠져들게 만드는 책. 그건 아마도 우리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무언가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겠다. 책의 첫 장에 ‘다 읽으신 분께는 딱 한 가지만 묻겠다. 재미있었수?’라며 묻고 있는 작가의 직업의식(시트콤작가)이 다분히 묻어나는 질문에 ‘정말 재미었었다’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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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넉넉하다 - 천년의 지혜와 만나는 안대회의 세상 이야기
안대회 지음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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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게 사유하는 선인들의 이야기
- 안대회, 『부족해도 넉넉하다』를 읽고


 세상에는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만난 단상을, 누군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누군가는 살아가면서 느낀 일상의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들려준다. 그 중 우리가 실제로 공감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몇이나 될까. 굳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신선한 바람이 머물다 간다면 기분 좋은 일 아니겠는가. 읽을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풍성해지는『부족해도 넉넉하다』정도면 이러한 나의 바람을 채워줄 만하다.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성균관대학교 안대회 교수의 책『부족해도 넉넉하다』는 선인들이 남긴 옛글을 우리말로 해석하고 평을 단 것으로 고전을 읽는 재미와 감동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작품이다. 고전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때로는 고리타분한 구석을 지닌, 그럼에도 읽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들의 향연... 정도? 단편적인 생각이지만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나를 제외하고도 여럿 계실 것 같다. 고전이라고 성급하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는 총 5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각 이야기마다 두어 장을 넘지 않는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읽히고 빨리 와 닿는다. 그러니 숨 좀 고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쳐도 된다는 말씀.

 어떤 이야기들인고 하니, 선비의 신분으로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소탈함, 뇌물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세태를 익살맞게 꼬집어낸 우화, 오랜 공부 끝에도 마땅한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한 자괴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후 농부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선비의 간결한 삶,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언문책을 소중히 여기는 아들의 마음 등이 그것이다. 몇 백 년 전의 이야기들이지만 실상은 우리네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시대 상황은 현저하게 달라졌다. 표면적인 차이를 차지하고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선인들의 소소한 생활에 한 발 다가서게 된다. 그 속에는 채찍과도 같은 지혜의 말씀, 익살맞은 농담, 시대와 세태에 대한 탄식과 반성, 자신을 향한 내면의 울림 등이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다.

 깔끔한 편집도 눈길을 끈다. 정갈하면서도 감각적이다. 글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그림은 여유와 운치를 더해준다. 글 말미마다 소개하고 있는 작자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들의 글도 있지만 아무개의 아들 하는 식으로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의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신선하다. 이 책이 아니면 접하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들!

 번잡하지 않다.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마음이 한결 단출하고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비어있지 않고 그득 채워진 느낌이다.『부족해도 넉넉하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달게 잠을 잘 자고 일어난 날처럼 개운하다.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가진 것을 하나라도 더 자랑하고 싶어 하는 1인 미디어의 시대에서 이 책은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게 정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준다. 더불어 깊고 넓게 사유하는 방법도 배워볼만하다.

 옛 시절, 물질과 문명의 혜택 면에서는 ‘조금 부족해도’ 마음과 생각만은 ‘넉넉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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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얘기 - 2


뻔한 얘기지만
까만 밤이 있어서
별이 아름다운 거야.
 
정말 뻔한 얘기지만
별이 뜨기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밤이 되기를 기다려야 해.

그러니
지금 어둠속에 갇혀 있다면

별을 보게 될거라는 걸 잊지마.

정말
뻔한 얘기지?

 
- 서툰여행, 최반, culturegraphics 중에서 -


 


여름과 겨울 사이, 가을이 있다는 건

정말 뻔한 이야기지요?

아침 저녁 찬바람과 한 낮의 더위에 어정쩡해지는 옷차림.

칠부 소매 옷을 꺼내 입다, 어느 새 두 세 겹 겹쳐입고...

그러다 두꺼운 옷으로 자연스레 갈아입곤 합니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뻔한 이치지만

우리는 매번 낯선 가을을 맞이하고

낯설게 가을을 보내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진실이 참으로 많은 것처럼!

 

+

 

아껴 읽고 싶은 책 한권을 만났습니다.  

서툰여행... 참으로 좋은 느낌!

다른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좋은 책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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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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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비밀이 몰려오고 있다, 책 읽기를 멈추지 말라!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1권』을 읽고


 이 세상에는 가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곤 한다. 가끔도 아닌 자주,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닌 관심 밖의 일들이. ‘나랑은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일들은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일로 발전해 버리기도 한다. 그때부터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 혹은 모두가 알만한 떠들썩했던 일을 자신만 모르고 있을 때, 그때의 당혹감이란.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연관이 되어버린 ‘그 일’을 알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1Q84』에는 두 명의 핵심 주인공이 등장한다. 유명 스포츠클럽의 강사로 일하는 아오마메(여)와 입시학원 수학강사로 일하는 덴고(남). 어쩌면 이들의 공식적인 직업은 한낱 포장에 불과하다. 아오마메는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하는 남자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킬러이며, 덴고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아오마메가 킬러의 길에 들어선 것은 유일했던 친구 다마키의 자살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살아온 다마키. 그러나 그녀의 평온한 웃음 뒤에는 남편의 잦은 폭력과 몹쓸 학대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오마메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아이스픽을 그 남자의 뒷목덜미에 꽂아 넣어 깔끔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버린다. 아무런 증거도 아무런 의문도 남기지 않은 채. 그 후 우연히 알게 된 노부인을 통해 그녀는 본격적으로 킬러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다마키가 죽은 후로 그녀의 인생에 남자는 없다. 그저 욕구를 발산할 상대를 골라 다닐 뿐이다.
 그렇다면 덴고는? 유명 출판사 문예지 편집자 고마쓰의 제안으로 열일곱 살 소녀 후카에리의 소설 <공기 번데기<를 고쳐 쓰게 된다. 문장은 출중하나 이야기 거리가 부족한 덴고, 이야기 거리는 풍부하나 문장력이 결핍된 후카에리. 고마쓰는 이 둘의 합작품을 만들어낸다면 분명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역작이 탄생하리라는 것을 오래된 편집자의 직감으로 알아차렸던 것! 후카에리의 소설에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이끌렸던 덴고는 도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결국 이 엄청난 사기극에 동참하게 된다. 그것도 아주 긴밀하게. 

 이 한편의 소설에는 음모와 스릴, 에로스와 로맨스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신흥종교에 얽힌 거대한 비밀 등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아오마메와 덴고와의 관계. 이미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그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어느 지점에선가 극적으로 상봉(?)하게 되리라는 여운은 읽는 내내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제 인지하지 못했거나 관심 밖에 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해 깊숙이 관여해야 할 때다. ‘몇 가지 변경된 1Q84년’을 살고 있는 아오마메와 <공기 번데기<를 개작한 덴고는 각각 현실과 소설에서 만난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의문의 존재 리틀 피플에 대해서도.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는 24장에 걸쳐 번갈아 가며 펼쳐진다. 홀수 장은 아오마메, 짝수 장은 덴고의 이야기다. 종종 아오마메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덴고의 장을 뛰어넘어 아오마메의 이야기를 읽고 싶고, 덴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오마메의 장을 넘어 덴고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강력한 유혹을 뿌리치고 순서대로 읽다보면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서서히 맞물려가는 거대한 이야기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빠른 전개와 상당한 흡입력으로 시종일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설.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지닌 독특한 이력과 사연은 읽는 재미와 속도를 배가 시키는 매력이 있다. 한밤중에 읽다 잘 시간을 놓쳐버렸다. 불현듯 ‘당신의 하늘에는 몇 개의 달이 떠있습니까’라는 반복되는 질문에 새벽녘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 무엇이 나의 잠재의식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일까. 그 실체는 곧 2권에서 만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과 관련해 각 인터넷서점별로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가 과도하다 생각했었다. 이벤트는 때로 책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판매부수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기기도 하므로. 그러나 1권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홍보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명성을 보고 이 작품을 선택했지만, 이제 이 작품으로 인해 하루키의 전작들을 꼼꼼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의 내공은 한 순간 빚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지난 작품들의 면면을 모두 만나보고 싶어졌다. 

 어떤 형태로든 변질된 사랑에 집착하고 있는 두 주인공. 이들이 진정한 사랑에 눈떠가는 과정도 지켜볼 만 할 것이다. 아직은 단정할 수 없지만 어쩌면 이 책의 핵심인지도 모를 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궁극에는 합일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1Q84』. 이미 내 손에는 2권이 들려져 있다. 책 읽기를 멈추지 마라. 거대한 비밀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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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백은하 글.그림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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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말을 걸어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 들어보실래요?
- 백은하,『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꽃잎을 떼어 아무렇게나 책 속에 넣고 말린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꺼내어 보면 반듯하거나 혹은 제멋대로인 각양각색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 꽃들을 하얀 종이 위에 올려놓고 몇 개의 선을 그려 넣는다. 그러면 사람이 된다. 이야기가 된다.『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는 ‘꽃도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글그림 작가 백은하가 마른 꽃잎에 그림을 그려 넣고 이야기를 곁들여 만들어 낸 책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숨을 내려놓은 지 오랜 된 꽃잎이 다시 살아나 움직이다니. 사람이 되어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는 꽃잎이 마냥 신기해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제법 멋스럽다. 표정도 행동도 생기 넘쳐 보인다. 한 송이 꽃이었을 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으로 환하게 만들더니, 한 잎 한 잎 떼어져 제각각 흩어져도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구나. 꽃에게 고마운 것인지 백은하 작가에게 고마운 것인지 여하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인 듯 에세이인 듯 써내려간 글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과 어우러져 읽는 이의 마음을 찬찬히 다독여 준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크신 사랑을 느낀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거라서 호흡도 조절하고 에너지도 길게 나눠 써야한다고 충고도 해준다. 여름이면 기승을 부리는 모기가 가려움과 병균을 옮기는 대신 웃음을 전파하면 좋겠다는 재미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랑 웃음 위로 충고 휴식…… 그야말로 이야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책이다.

 ‘내게 꽃은 전부 사람으로 보인다’는 백은하 작가를 보면 한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다간 타샤 튜더가 떠오른다. 정성스레 닥종이로 아이들을 빚어내는 인형 작가 김영희씨와 소담하고 정갈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도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는 스러져가는 꽃잎을 가져와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세계를 꽃피워내고 있다.

 느긋하게 두 어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을 나는 되도록 천천히 읽는다.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다. 글을 읽고 그림을 본다. 어느 순간 그림이 읽히기도 한다. 총천연색의 꽃잎에 취해, 앙증맞은 행동에 취해 절로 웃음이 난다. 좋은 날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책 한 권이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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