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 순간 무너져 버릴 때가 있다. 실은 처음부터 옳지 않았는데 나만 옳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진실을 가장한 치밀한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현재형이 될 수 없는 한 때 사랑했었던 사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틈도 없이 우리는 각자가 되어 버렸다. 그 시절의 일을 떠올리면 그가 있다. 그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그 날이 따라온다. 해서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마음 깊은 곳에 여러 겹의 장막을 친 채 묻어두었던 일.

 살아가는 동안 문득문득 지난날의 상처와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뒤따르는 아픔들.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은 탓이다. 그냥 한 번 움찔,하면 고통 또한 지나감으로 굳이 치유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화해하지 못한 시간 속에 과거의 나와 옛 사람들과 그 사람이 방치되어 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싹둑 잘라버린 고통의 시간.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만났다. 서른 셋, 더 이상 청춘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모르는 나이에. 청춘이 아닌 시절로 넘어간다는 것. 더 이상 치기를 부리는 것도 더 이상 맹목적인 열정에 빠져드는 것도 더 이상 상처와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어쩌면 허락할 수 없는 나이. 그 나이가 되기 전에 푸르렀던 청춘시절 어디쯤 쳐 둔 회색커튼을 그만 거둬내고 싶다.

상처, 공유하면 치유될까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결국엔 엄마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살고 있는 정윤. 언니의 꿈을 무너뜨리고 결국엔 언니를 지키지 못한 상실감에 늘 자책하며 살아가는 미루. 어린 시절부터 윤의 곁에서 미루의 곁에서 각각 함께해온 단과 명서. 혼돈의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는 윤교수. 이들은 각기 다르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되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시대의 혼란함과 마냥 사랑만 하고 살 수 없는 고단함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인공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지난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p.213)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상처를 공유하기도 전에 공유할 수 있는 관계들마저 끊어버렸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건 그 시간들로부터 무작정 도망쳤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이 한 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고부터 어떠한 소통도 쉽사리 허락하지 못하는 나. 푸르름으로 가득해야할 청춘의 한 시절이 그렇게 멍이 든 채 버려져 있다.

사랑,은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공유하는 슬픔이 더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함께 있으면 고통스런 기억이 떠올라 슬퍼하고 절망하게 된다. 하물며 끝끝내 속으로 삼키지 못하고 고백하고 만 외사랑은 어떨까. 이미 마음을 들켜버려 쑥스럽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불편한...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 불안한 관계. 주인공들이 사랑만 하기에는 시대 상황이 실로 어수선하다. 공유하는 상처 또한 쓰리기만 하다. 만약 아픔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사랑은 수월했을까. 그래서 더 깊어졌을까. 사랑을 하는데 이유가 없듯 때로는 사랑을 놓아버리는데도 이유가 없다. 돌이켜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우리는 마주잡은 두 손을 놓아버리고 만다. 다 지나가는데,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유 또한 다 지나갈지 모르는데, 순간을 참지 못해 우리는 무수한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치명적인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시 만나지는 인연도 있다. 바로 윤과 명서처럼. 나는, 우리는, 이렇게 치열하게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만남과 헤어짐이 흔한 지금, 서로의 영혼 깊이 각인되는 풍경같은 사랑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일까.

언젠간, 서로의 크리스토프가 되어주기

 시대에 아프고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 치명적인 상실에 절망하는 사람들. 그 절망의 늪에 빠져 처참하게 허물어져 내리는 영혼들을 만나는 동안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은 인생의 어느 시기쯤 바래긴 해도 결코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광경과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뭘 했던가?(p.341)라고 끊임없이 자책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순간. 그 상황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른다 해도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잊고 싶다고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절망은 더 깊어지기 마련. 피하고 싶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무작정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음을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슬픔도 고통도 그 밑바닥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음을. 당장의 고통이 크기에 회피하고 싶었던 그 때. 상처받고 훼손되는 영혼은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사랑에 아파하고 상실에 좌절하는 순간이 와도 그 시간이 오래지 않기를, 고통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고통이라면 나누어야 한다. 혼자서 이겨내기에는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여행자(p.62)이기에 서로의 길을 안내해주는 크리스토프가 되어야 한다.


- 때로는 책을 읽는 과정이 힘겨울 때가 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지난날의 상처를 툭툭 건드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만큼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고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 온 몸을 경직시킬 때면 몹시도 당혹스럽다. 상처받은 그 순간으로부터 급하게 도망쳤기에, 관계의 사슬을 모두 끊어버렸기에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고문 같은 시간들. 왜 아프지 않은 척 연기하며 살았을까. 왜 한번쯤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한없이 움츠려들게 만드는 지난 시간들과 마주할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얻게 되었다. 더 이상은 영혼이 훼손되지 않도록 과거의 나와 화해를 시도해본다.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과거의 나일지 모르므로.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아프고 슬펐다. 그런데 놀랍도록 설렜다. 그때의 그 기쁨만큼 그때의 그 슬픔만큼 그때의 그 절망만큼.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고백을 얼마 만에 들어본 것일까. 이렇게 아픈 청춘들을 얼마 만에 만나본 것일까. 사랑도 사람도 일회성에 그치기 쉬운 요즘 깊고도 푸른 영혼들을 만난 것은 정말이지 귀한 경험이다. 상실과 슬픔이 없다면 청춘을 푸르다 말할 수 있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 준 신경숙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만히 읽다보면 고통이 치유되는 소설. 언젠가,라는 희망을 품어보게 만드는 소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게 만드는 소설. 내.가.그.쪽.으.로.갈.게 라고 말하고 싶게 하는 소설. 오늘을 잊지 않도록 소중하게 살고 싶게 만드는 소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를 간절히 찾는 전화가 잘못 걸려오더라도 짜증보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장을 덮으며 바래본다. 내 영혼이 한 뼘 더 성장해 있기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ddy5 2011-12-2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의 그 기쁨만큼, 그때의 그 슬픔만큼, 그때의 그 절망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고백이 책을 읽은 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저도 계속 기억에 남아요. 이 서재 정말 좋아요. 제가 읽은 책도 많고 또 읽고 싶어지는 책도 많네요. 감사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앞에서는 누구나 가슴 설레는 독자 - 앨렌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영국 여왕이 책에 빠져 국정업무를 소홀히 한다고? 도대체 책이 무엇이길래!


처음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2007년 7월 즈음이다. 정말이지 하는 일이 무료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좀 없을까 싶어 인터넷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읽는 블로거들. 맛있는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듯 수많은 책을 단숨에 읽어치우는 왕성한 독서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나도 저들처럼 책을 읽을 수 있어’라는 경쟁심에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다 점점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패턴까지 바꾸게 되었다.


여기에 나처럼 어느 날 우연히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 여왕이다. 우연히 궁 내에서 이동도서관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그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우연히 책을 대출받게 되고 그로부터 여왕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책 대출은 누가 보아도 예의상의 행보였고, 여왕 스스로도 한 번으로 그칠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모든 국정업무가 시들해질 만큼 책 읽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책을 읽는가하면 공무수행 중에도 오로지 책 생각뿐이다.


독서는 취미에 속한다. 취미에는 기호가 끼어든다. 여왕은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그렇기에 여왕의 독서는 왕가의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막을 수는 없는 일. 여왕은 이동도서관의 유일한 이용객인 주방보조 노먼을 (말하자면) 여왕 전용 사서로 승격시킨다. 노먼을 통해 책을 추천받고 함께 토론도 벌인다. 책에 관해서라도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한 멘토와 멘티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


비서관 케빈 경은 여왕의 책 읽기를 막을 수 없다면 대외 홍보용으로 활용하고자 마음먹는다. 이를테면 ‘여왕이 무슨 책을 읽고 있으니 국민들도 함께 읽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하지만 여왕이 주로 읽는 책은 실생활 혹은 발전적인 차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니다(이러한 기준도 모호). 순전히 여왕의 기호에 따라, 노먼의 추천에 따라 선택된 문학 작품들이 대다수. 케빈 경에게 노먼은 눈의 가시다. 결국 여왕이 모르는 사이에 노먼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만다. 케빈 경의 계략으로 노먼 역시 여왕을 오해하게 된다. 노먼이 사라지고 난 후 여왕은 과연 예전으로 돌아왔을까? 천만에! 오히려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에까지 관심을 확대해 나간다. 결국 여왕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용단을 내리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이동도서관, 그 곳의 유일한 이용객 노먼을 통해 책 읽기의 무한매력에 빠져들게 된 영국 여왕.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책 읽기가 생활에 얼마나 많은 활력을 불어넣는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 여왕’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책 읽기의 무한 매력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책. 여왕도 책 앞에서는 일반 독자와 다를 게 없다. 그 점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보다 친근하고 재미있게 읽히게 할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재회를 하게 된 노먼과 여왕. 여왕은 노먼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 의외의 반전 포인트를 놓치지 마시길!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책은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그런 이해는 여왕을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어릴 적, 브이데이 밤, 여동생과 함께 정문을 빠져나가 군중 속에 몰래 섞였던 때가 여왕에게는 가장 흥분된 순간이었다. 책 읽기에는 그런 흥분이 있다고 여왕은 생각했다. 익명이 되는 흥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흥분, 평범해지는 흥분,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여왕은 이제 자신도 모르게 그 흥분을 갈망하고 있었다. 여기, 이 책장과 이 표지들 속에서 여왕은 평범해질 수 있었다.(p.39-40)


책 읽기는 영국 여왕을 여왕으로서가 아닌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처럼 매력적이고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삶은 새로움으로 가득해진다. 여왕도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재미있고 유쾌하다는 추천글을 읽고 잠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저자 호어스트 에버스를 떠올렸었다. 내겐 정말이지 유쾌하고 재미있고 경쾌한 시간을 선물해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기대보다는 약했다. 그래도 책과의 사랑에 빠진 영국 여왕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순수한 한 명의 독자,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이다. 책을 모르던 사람이 책을 알고부터 어떤 열망을 품게 되는지, 어떤 꿈을 꾸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어 이야기 - <연어>, 그 두번째 이야기
안도현 지음, 유기훈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들어줄래? ‘나’의 유일한 단수 ‘너’에 대한 이야기를...
- 안도현, 『연어이야기』를 읽고


안녕?
안녕...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지 미처 몰랐네. 그래서 더 반가워.
먼저 내 소개부터 할게. ‘나’는 15년 전 출간된『연어』라는 책의 주인공 눈맑은연어와 은빛연어의 딸이란다. 나의 탄생은 감히 거룩하고도 숭고했다고 말하고 싶어. ‘연어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엄마 아빠를 기억한다면 알겠지만, 실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는지 몰라. 단지 탄생의 과정을 잘 몰라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뿐이란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귀하디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조금 더 많이 사랑하고 조금 더 적극적이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뭐 어쨌든 이건, 마지막 순간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엄마의 눈을 기억하고 있는 나의 뼈저린 깨달음이란다. 슬픔으로 가득한 그 눈이 실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이었고, 나는 엄마의 숭고한 희생이 일궈낸 거룩한 생명이란 말이지. 이 사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고 나를 연어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어. 너 역시 다를 바 없단다. 물론 ‘너’는 물고기 연구소에서 인공 수정되어 영양가 높은 먹이만 먹고 자라 몸집도 나보다 훨씬 크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지만. 새가 되길 꿈꾸면서부터 너도 안락한 삶으로부터 어느 정도 비껴나긴 한 것 같아. 새. 너는 왜 새가 되고 싶었을까. 너는 몰랐던 거야. 너의 태생을 너의 엄마를 네가 경험했어야할 탄생의 신비를. 사람 손에 맡겨져 너의 길을 모른 채 살아왔지만, 너는 본능적으로 연어의 길... 자유란 것을 갈망해왔는지도 몰라.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우리의 본능, 자유 말이야.

내가 모래톱에서 힘겹게 시름하고 있을 때, 나에게 물을 튕기며 스러져가던 너. 나는 그런 너를 보며 힘을 낼 수 있었어. 고단한 너의 몸짓이 나를 살려낸 거지. 고마워. 어쩌면 그때부터 ‘너’는 나에게 ‘유일한 단수’로 스며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일까. 엄마를 모르던, 연어의 길을 모르고 새가 되려하던 네가 무척이나 안타까웠지. 네 안에 일고 있는 자유를 향한 갈망, 날개를 달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너의 몸속에 초록강의 일렁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너의 과거 너의 배경을 기꺼이 껴안으면서.

새가 되길 꿈꾸는 너에게 물고기 연구소... 네가 말하는 학교는 어울리지 않았어. 연어의 숙명을 거스르는 너를 학교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았고. 학교를 벗어난 너는 나비 고라니 개구리 수달 자작나무를 만나는 동안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지. 그리고 초록강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 내가 그토록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에.

이제 강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5,000마리가 되기 전까지 오래 강에 머무르며 준비를 하라던 초록강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는 가슴에 새겼지. 드디어 바다를 향한 여정의 시작.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든 여정이 될지는 몰랐어. 예상치 못한 위기, 안타까운 희생, 그로 인한 깨달음...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 모두가 망설이고 두려워할 때 먼저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긴 건 바로 너였어. 연어의 길, 우리는 너로 인해 비로소 연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거야. 자유를 향한 너의 몸짓은 날개를 달지 않고도 충분히 자유로워 보였어. 그렇게 우리의 지도자가 된 너. 전설이 되어버린 너.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 만날 것을 예감해. 나의 유일한 단수였던 너... 사랑해.

고마워,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ddy5 2011-12-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연어리뷰, 제가 수업할때 사용해도 될까요? 사실 등장인물이 되어서 다른 등장 인물에게 혹은 친구에게 쓰는 편지글의 형식으로도 독후감을 쓸 수 있다는 걸 좋은 사례로 보여주고 싶어요^^
 
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 을 넘어 소멸, 되어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 박범신, 『은교』를 읽고


은 교-

하고, 가만히 불러본다. 더 이상 생각이 나아가질 않는다. 읽는 순간부터 생각이 정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 읽고 나서도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책이 있다. 『은교』는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은교, 은교, 은교…… 하고 수없이 되뇌어 본다. 낯설고 낯 뜨겁고 어쩌면 금기시되는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 지 한참을 망설인다. 열일곱 여고생을 가슴에 품은 칠십 노인의 애절한 사랑. 이것뿐이었다면 어쩌면 이 리뷰도 쓰지 않았으리라.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p.12)


는 작가의 말에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다. 살아있다면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오롯한 그리움…… 갈망! 이 감정은 누구에게든 비껴가지 않는다. 다만 발화의 시점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은교』는 이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왜 사랑을 생물학적 나이에 국한해서 생각했을까. 은연중에 각인된 고정관념에 잠시 몸서리가 쳐진다. 얼마나 많은 사랑이 이 끔찍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질타를 받아야 했을까. 사랑은 그냥 사랑인 것이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어떤 대상을 향해서든 생겨날 수 있는 인간의 감정. 나처럼 이 잔인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은교』를 읽자. 은교를 향한 이적요 시인의 사랑은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사후 일 년 뒤에 공개하라는 이적요 시인의 노트는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미성년인 열일곱 소녀 은교를 사랑했다는 것, 제자인 서지우 작가를 죽였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적요(寂寥)라는 필명처럼 평생 시를 향한 고집스런 외길을 걸었고 그로 인해 대중의 전무후무한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시인이 알고 보니 제자의 이름을 빌어 포르노그래피를 발표해 왔다는 것. 이 엄청난 비밀이 담긴 노트를 받아든 후배시인이자 변호사인 Q는 난감할 따름이다. 유서의 내용이 공개된다면 거론된 세 사람은 물론 문단과 대중에게 미칠 파장이 상상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은교』는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 작가가 남긴 노트, 은교와 변호사Q의 시선이 교차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긴장감이 넘친다. 노트, 그것도 비밀스런 내용이 담긴 노트는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온 몸의 세포가 예민해진다. 침이 마르고 손이 떨린다.『은교』가 꼭 그렇다. 소설이 아니라 비밀 노트를 받아든 것처럼 마음이 요동을 친다.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그러나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꺼져가는 불더미가 마지막 힘을 다해 피워 올리는 연기 속에서 울고 있는 은교를 본다. 울고 있는 서지우를 생각하고, 울고 있을 이적요 시인을 떠올려 본다. 어떤 방향으로든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애달파서가 아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이들을 눈물짓게 만든 ‘사랑’은 무엇인가. 사람을 온전히 살게도 하고 온전히 죽게도 하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이 청춘을 표상하고, 그것이 시들어 이윽고 꽃씨를 맺으면 그 굳은 씨앗이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기억을 고통스럽게 견디다가, 죽음을 통해 해체되어 마침내 땅이 되고 수액이 되고, 수액으로서 어리고 젊은 나무들의 잎 끝으로 가, 햇빛과 만나, 그 잎들을 살찌운다.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p.251)


소멸, 되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소멸 역시 살아있는 생명인 것을 간과했던 것 같다. 나도 어쩌면 서지우가 범한 ‘사악한 범죄’의 공범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의 법칙 앞에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노인의 사랑을 부정하려 했다. 소멸해 가는 것에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가당찮은 생각으로. 소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더 단단해지고 충만해지는 것. 소멸은 어떤 의미에서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던 서지우 작가의 얼룩진 눈망울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보호해야 할 분은 은교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p.176)’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노시인을 사랑했으며 인정받기를 원했다. 끝끝내 ‘멍청한 놈’으로 인식된 채 죽어가는 서작가, 제자의 죽음이 자신의 완전범죄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생의 의지를 내려놓는 노시인. 죽음으로 치닫는 이들 사이에도 분명 ‘사랑’이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슬픔을 걷어내고 보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연애소설이 된다. 은교가 뽀드득 하고 닦아낸 유리창처럼 깨끗하고 환한 느낌. 때로는 등롱처럼 황홀해 잠시 휘청거리게도 만드는 사랑이야기. 사랑 그 설레는 첫 느낌, 뽀송뽀송한 싱그러움이 군무를 이루며 피어오른 쇠별꽃처럼 하얗게 마음을 밝힌다.


고백하건대 나는 작가 중에 박범신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 해서 내용도 모르고 『은교』를 받아들었다. 쉬이 첫 장을 펼칠 수가 없었다. 어떤 이야기가 나를 달뜨게 만들지 몹시도 두근거렸기에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침내 읽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앞서 고백했듯 사회적 통념에서 기인한 고정관념이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열일곱 소녀를 품으려 한 칠십대 노인의 욕정, 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발화와 성장 소멸이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이 소설은 새롭게 읽혀졌다.


그의 전작 『촐라체』에서 죽음에 직면했던 영교가 크레바스 속에서 맞닥뜨린 어느 주검과 『고산자』에서 어린 김정호가 동굴 속에서 만나게 된 여인은 이미 소멸했거나 소멸해가는 상황에서 한 생명을 살려낸다. 『은교』에서 노시인이 걸어 들어간 적요굴은 어쩌면 작가가 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내는 자궁 같은 생명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전작들이 ‘굴’속에서 생명을 피워낸 것과 달리 『은교』에서는 생명이 소멸해 간다. 그러나 소멸을 상징하는 이적요 시인의 생은 소멸되어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나의 처녀, 나의 조국’이기에 쉽게 품을 수도 자유롭게 떠나보낼 수도 없었던 노시인의 사랑. 그것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을 새롭게 살게 하는 빛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섰고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는 순간, 은교를 상징하는 토끼 인형과 함께 적요굴에 몸을 누인 것은 죽음이 아니라 시인이 선택한 영원히 사는 길은 아니었을까.


사랑, 을 넘어 소멸, 되어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폭풍처럼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읽는 내내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 폭풍우를 잠재우고 밖을 보니 어느덧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생명에 생명을 더하는 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여름에 성큼 다가서 있겠지. ‘생존과 종족번식의 욕망(p.153)’이 뒤엉켜 소름끼치게 푸른 여름 숲일지라도 계절이 더 깊어지면 산에 오르고 싶다. 그 속에서 존재의 욕망과 생성 소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억을 추억하며 사는 나이   

- 박완서, 『호미』를 읽고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참으로 고마운 계절이다. 나는 요즘 오후 한 시가 되면 어김없이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 동안 햇살이 환하게 비쳐드는 때에 맞춰 책을 읽는다, 햇살을 읽는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도 이 기운 아래서 라면 한 풀 기세를 꺾는 듯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 햇살이 주는 평온한 오후를 나는 사랑한다. 딱 좋을 만큼 자연의 기를 받고, 딱 좋을 만큼 사람의 기를 받는 시간. 오늘 나를 다독여준 이는 박완서 작가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작가가 건져 올린 일상의 단편들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는 산문집 『호미』. 언젠가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몇 장을 읽고 나서 바로 사들고 온 책이다. 매서운 겨울을 살아내게 하는 한 줄기 빛처럼 허전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

‘거의 다 70이 넘어 쓴 글' 이라며 수줍게 첫 머리를 여는 박완서 작가. 살아온 삶 자체가 역사이고 기록일진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작가 역시 나이로 인해 위축되고 적잖이 부담도 되는 모양이다.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꺼내놓는 이야기는 작가의 기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작가의 연륜을 담은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마당을 일구어 자연을 들여놓았다. 작고 미미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질서정연한 삶 속에서 소스라치게 전율한다. 느리고 끈기 있게 두루 살핀 결과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자연은 찬탄해 마지않을 존재임을 몸소 체험한다. 자연이 건네는 위로는 그 어떤 울림보다 깊고 평온한 것임을 작가는 느린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봄이 오면 꽃 출석부를 부르고 다시 호미를 움켜쥐겠지. 한층 부드러워진 흙길을 담담히 걸어가겠지.


개탄할 만한 정치를 향해서는 쓴 소리를 잊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신념과 믿음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겪은 전쟁의 상처를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특정 음식에 대한 예찬도 빼놓지 않는데, 작가에게 음식은 단순히 식욕을 채워주는 대상이 아니다. 음식은 가족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그 자체인 것이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칠십 평생을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 시어머니와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물론 지인들과의 인연 또한 소중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칠십이 넘어서 쓴 글이라고 수줍게 고백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를 칠십 평생 살아올 수 있게 만든 삶의 버팀목 같은 이야기들이 책 속에 그득하다.


책이 출간된 지 이미 여러 해가 흘렀으니 이제 작가는 나이 앞에 7이 아닌 8을 더했을 터. 내 나이 일흔 혹은 여든이 되면 무엇을 추억하며 살 수 있을까. 살아오면서 얻은 것들, 잃은 것들, 끝까지 지켜낸 것들은 무엇일까. 어느 날, 작가처럼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p.31)’ 일지라도 그 추억들이 있기에 살아낼 힘을 얻지 않을까. 그렇다면 추억을 추억할 수 있는 인생에 감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을 충분히 살아야겠지.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