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2009.가을 - Vol.14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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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꿈꾸게 만드는 ‘풋’
- 『풋, 2009 가을호』를 읽고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난 시간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말갛고 고왔던 한 시절, 여고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꿈이 있어 치열하고도 행복했던 그때. 섣부른 반항 대신 묵묵한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지나 온 듯 보이지만 실은 내면에 무수한 바람이 일었던 시절. 목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그때 나를 달뜨게 만든 것은 ‘시’였다. 시로 인해 숨을 쉴 수 있었고 희망이란 걸 품어보게 되었다. 자연스레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보란 듯이 글 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어 다행이다.

 『풋』은 싱그러운 꿈으로 가득했던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다소 무모하기까지 했던 치기어린 열정이 마음가득 차올랐던 그때. 풋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듯 달콤새콤한 이중주에 온 몸의 세포가 스멀스멀 깨어나는 듯 느낌이다. ‘청소년을 위한 전방위 문학문화잡지’라는 표제어를 내건 『풋』은 말 그대로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세계에 한 발 더 깊숙이 들여놓을 수 있도록 심도 깊은 이야기를 포진시켜 지적 호기심을 무한 자극하고 있다.

 가을호의 첫 번째 스페셜 테마는 ‘클립’이다. 클립의 기원과 역사는 물론 청소년들의 자작시와 에세이로 이야기는 풍성함을 더한다. 소설가 김숨의 짧은 소설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하는 클립에 대한 단상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의 주제가 만들어 내는 만화경 같은 풍경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클립에 얽힌 오색찬란한 이야기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두 번째 스페셜 테마는 ‘책’이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2009년 가을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라고 보면 될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관심사 쪽으로 편독을 하게 마련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분야를 들여다보니 실로 다채롭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슬쩍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풋』의 첫 지면에는 제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글’에 대한 욕심과 애정으로 똘똘 뭉쳤던 나의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한 대목이기도 하다. 대회 내용과 심사경위 심사평 작품 등이 수록되어 있어 문학을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줄 듯하다. 머지않은 미래의 소설가와 시인을 만난 듯 수상자의 이름을 꼭꼭 되씹어본다. 신경숙 작가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와 로드 스쿨러 이보라 양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잘 버무려낸 『풋』은 그야말로 전방위 문학문화잡지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책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청소년이라면 늘 곁에 두고 펼쳐보아야 할 것이고, 문학을 사랑하는 어른들 역시 관심 기울여 볼 만하다. ‘잡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태어난 책을 이처럼 꼼꼼하게 살펴 본 것도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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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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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읽고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현대인의 필수 소통 창구라면 메신저 휴대전화 이메일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거나 알게 모르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위는 거의 무의식중 중독의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서로 더 가까이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생각의 패턴까지도 읽게 된다. 그러나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 아! 우리는 빈번한 소통 속에서도 대화의 부재를 경험하며 사는구나, 서로의 사생활까지 은밀하게 공유하면서도 진실한 내면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구나. 너와 나 사이의 소통의 한계. 이것이 디지털화된 소통이 가져다준 익명성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지훈은 지극히 아날로그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이메일 대신 편지를 애용한다. 눈 먼 개 와조와 여행을 시작한지도 어느 덧 삼년. 그는 말더듬는 버릇과 집에만 있으면 생기는 발작증상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했다. 말을 더듬는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타고난 지훈.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을 숫자로 기억한다. 단, 주소를 불러준 사람에 한해서 숫자를 부여하고 그들에게 편지를 쓴다. 연필로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서. 하루 여행의 마감은 언제나 편지가 대신한다. 그날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받아줄 것 같은 숫자를 물색해 편지를 쓴지도 삼년이 흘렀다. 이제 그만 여행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에게라도 답장을 받는 날이 지훈이 여행을 끝내는 날이다.

 때로는 피치 못할 일도 생기는 법. 어쩔 수 없었다. 지훈이 751에게 숫자를 부여한 것은. 먼저 말을 걸지도 주소를 알지도 못하는데 751은 751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일명 방랑소설가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소설을 판매하고 새 소설을 집필해나간다. 지하철 버스 광장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목청을 돋워 소설을 판다. 그다지 쓸모없는 생필품을 권하는 장사꾼보다 그녀의 행동이 더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실적 역시 저조하다. 그러나 많이 빨리 팔아야할 이유도 없다. 그녀 여행의 끝은 소설을 완성하는 날이니까.

 이 둘의 만남은 우연 혹은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소설의 소재와 영감을 얻는 751은 당연히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 우연한 계기로 맹인과 안내견으로 변신한 지훈 일행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자연스런 상황. 거기에 소매치기라는 우연이 겹쳐지면서 이 둘의 모텔 동거는 시작된다. (에로스적인 것을 상상하지 마시길. 오랜 여행자에게 모텔은 말 그대로 쉬었다 가는 곳이요, 하룻밤 묵었다 가는 장소에 불과하니까.) 익명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익명을 유지한 채 관계를 이어나간다.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늘 혼자였던 0(지훈에게 그녀가 붙여준 숫자)과 둘 이상인 관계를 힘들어하던 751은 어느 덧 ‘둘’인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지훈과 그녀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책을 읽는 동안 하나씩 밝혀진다. 답장을 받는 날 여행을 끝내겠다는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지훈의 아픔 역시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여행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와조의 사연,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편지에 드러난다. 나는 언제 한 번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보았던가. 신년이나 생일날 카드에 적어 보낸 몇 줄이 전부였던 것 같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온전히 내보이는 일이다. 그것이 서툴고 어색해 편지를 그만 쓰게 된 것일까...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는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사려 깊은 시간이 흐른다. 둘 중 누군가는 까맣게 잊고 지낸 추억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기도 하고, 약간의 오해로 소원해진 마음이 봄 눈 녹듯 풀리기도 한다. 진심을 담고 있어 매력적인 편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낯설어진 오늘날. 편지를 쓴다는 것은 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낯설고도 친근한 편지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따뜻하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받아든 것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지훈과 동행을 하게 된 751 역시 지훈처럼 혼자를 선택했지만 이 둘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더듬는 버릇을 고치겠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책을 판다는 것 역시 사소한 이유일지 모른다. 지훈과 751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둘 이상을 못 견뎌하는 이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각자의 방법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훈의 편지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은 특별하고 진지하다. 지훈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사람과 그들의 사연이 이미 내 것이 된 것처럼 아련하고 아리다. 그래도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따뜻함’이다. 대화와 편지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체온을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므로.

 이 소설을 통해 생각보다 사람들은 무심하지도 무례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먼저 관심이나 호의를 보일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 모른다. 한 번만 말을 걸어준다면, 한 번만 알은 체를 해 준다면 이때다 싶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지 모른다. 1인 미디어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자신을 알리고 타인을 알아갈 수 있게 된 지금,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고독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내보이며 살고 있지만 정작 소소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오랜 지기(知己)의 관계는 갈수록 사라져가는 것처럼. 쉽게 알아가는 만큼 빨리 소원해지는 관계. 익명이 아닌 익명으로 살아가는 시대다.

 오랜만에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소설을 만났다. 또각또각 슥슥슥...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 한 통에 마음을 담아 이 책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 2연타로 몰아치는 반전에 눈물이 핑 돌 것이다. 그 후엔 헛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덮게 될 것이다. 지훈을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질 것이다.  손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입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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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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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 그것은 사랑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1, 2권』을 읽고


 후련하다. 혼돈의 시기를 맨 몸으로 뚫고 나오니 오히려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몰아닥친 일련의 사건들이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상처만 남긴 줄 알았다. 의문만 남은 줄 알았다. 찬찬히 되짚어보니 그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 내게 묻고 있었다. 수많은 질문들이 쌓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신이 만약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어보겠느냐’ 고. 상실되어지면 상실되어지는 대로 아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한 번 상실되면 그것으로 끝인 ‘목숨’을 걸만한 일 말이다.

 현실과는 달리 몇 가지 변경된 사실들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Q(Question)의 세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Q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즉시 당신의 역할은 정해지게 된다. 주어진 최소한의 선택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결정 나 버린다. 치밀하게 얽히고설킨 이 세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반드시 ‘선택’이란 것을 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연속된 선택을 통해 Q의 세계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된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우리도 인생의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당신이 지금 내린 선택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번이라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오랜만에 무라키미 하루키의 신작을 만난다는 설렘에 쉽게 펼쳐들었던『1Q84』. 그러나 읽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진 마시길. 상상 이상의 강력한 흡입력으로 단번에 2권까지 읽어 치울 수 있다. 앞서 말한 ‘순탄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책을 그저 편안하게 읽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루키가 들려주는 상당히 다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했고 생각을 해야만 했다. 머리와 가슴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일단『1Q84』를 펼쳐들었다면 싫든 좋든 능동적으로 상상력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1권에서는 덴고와 아오마메의 관계가 퍼즐처럼 조각조각 드러난다. 독자는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한 조각의 퍼즐을 찾아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동시에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신흥종교단체 선구와 의문의 존재 리틀 피플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2권으로 넘어오면서 덴고와 아오마메의 관계는 보다 명확해진다. 10살 이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남녀가 20년의 세월 동안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Q의 세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단 한 번 교감을 나눈 이후 평생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어본 적이 없는 덴고와 아오마메. 마음에 새겨진 부재의 실체가 무엇인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선구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리틀 피플은 상당히 충격적이며 여전히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베일에 싸여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기번데기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거대한 반전이 연속적으로 휘몰아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자잘한 가지들을 대충 잘라내고 정리해보면 1권은 사건에 2권은 인물(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숨 가쁘게 몰아친 1권에 비해 2권에서는 덴고 아오마메 선구 지도자의 실체 혹은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다시 말해 1권에서 하나하나 끼워 맞췄던 퍼즐이 완성된 그림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었다면, 2권에서는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기보다 각각의 조각이 담고 있는 의미를 보다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Q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는 두 남녀의 필연적 운명, 선구 지도자가 보여준 그간의 행적과 최후의 선택이 혼돈의 세계 Q를 이해하는 일종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속들이 알 수 없는 Q의 세계는 풀리지 않는 의문처럼 독자에게 끊임없는 상상을 요구한다.

『1Q84』를 읽는 내내 혼돈을 겪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끝나지 않는 결론은 독자의 생각을 자꾸만 어디론가 나아가게 한다. 다음 번 리시버는 누구일까? 혹시 덴고는 아닐까? 새로운 리시버가 리틀 피플의 세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을까? 아오마메의 운명은 거기까지인가? 아오마메의 도터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덴고와 아오마메는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까? 그들은 과연 1984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후카에리와 덴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독자가 아무리 해답을 갈구해도 작가는 쉽사리 그 답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어쩌면 Q(Question)의 세계일지 모른다. 단지 자각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돈을 겪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어느 날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세계와 맞닥뜨리는 것처럼 현실에서 무언가 변경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2권을 다 읽고도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야기. 분명한 것은 내 안에 부재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그 상실의 실체를 찾아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덴고와 아오마메 그들에게 부재된 것은 사랑이었다. 단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어서라고 되찾고 싶은 것, 지키고 싶은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바로 진정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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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일 - 8월 9일까지 

알라딘에서 [외딴방] 리뷰대회가 열렸다. 


 
십여년전에 읽은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펼쳐든 외딴방!
   

먹먹한 가슴으로 읽는 내내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묻어두었던
마음의 상처를 되돌아 볼 수 잇었던 시간...

  

좋은 책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리뷰대회에서 은상까지 받게 되었다.
 

신경숙 작가님과의 저녁 식사에도 초대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상금 100,000원과 부상으로 [외딴방] 사인본을 받았다.


 

리뷰보기 :  http://blog.aladin.co.kr/soulnote/301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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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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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이야기 속 ‘진짜’ 이야기
- 김언수, 『캐비닛』을 읽고

  든든하다. 진하게 우려낸 곰국 한 그릇에 밥까지 말아먹고 나니 영혼까지 살이 찌는 느낌이다. 나의 오랜 단골집. 43년을 매일같이 정성을 쏟다보니 맛도 제대로 우러나고 단골도 꾸준히 늘어났다며 소소한 자랑을 늘어놓으시던 00곰탕집 할머니.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먹다 그만 뜨거운 국물을 입안에 적셔볼 틈도 없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기고 말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뜨거워서였는지 너무 놀라서였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날 뉴스에는 43년간 곰탕집을 운영해온 할머니가 그동안 소뼈가 아닌 닭뼈를 사용해 소비자를 속여 왔다는 내용이었다. 참 재주 한 번 용하시네, 라는 심드렁한 내 반응에 내가 다 놀랄 지경이었다. 외할머니같은 인정과 손맛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책임지셨던 그 할머니는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있던 나의 식욕을 단번에 싹둑 잘라버리셨다. 제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 ‘진짜’로 믿었던 것들이 ‘가짜’로 판명 나는 순간, 인간이 겪게 되는 정신적 공황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이 바로 이런 느낌! 뒤통수가 다시 한 번 얼얼해져 온다.

 아, 이 능청스런 구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설마 설마하며 읽다 진짜로 믿어버렸는데 마지막에 가서 한다는 말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거짓’이란다. 바짝 긴장하며 스텝을 밟다, 상대가 뻗은 기습 펀치에 보기 좋게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온다.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녹다운 될 지경. 작가의 구라가 그만큼 그럴싸하다는 이야기다. 

 『캐비닛』은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로 일컬어지는 ‘심토머’에 관한 이야기다. 80,90년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자주 목격되던 우중충한 빛깔의 캐비닛을 기억하는가. 그것과 똑같은 13호 캐비닛에는 이 같은 징후들이 무려 삼백일흔마흔개나 파일로 정리되어 있다. 사십년간 이들만을 연구해온 권박사와 칠년간 자료조사 명목으로 매일 심토머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추이를 정리해온 공대리가 담당자다. 볼품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일단 13호 캐비닛은 열기만 하면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징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 하면, 밥 대신 주식으로 휘발유라든지 유리 강철 신문지만 먹고 사는 것은 기본이다. 새끼손가락에 은행나무가 자라거나 입안에서 도마뱀이 자라는 키메라, 순식간에 몇 십 분에서 몇 년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타임스키퍼, 도플갱어를 경험하는 사람, 몇 달에서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잠만 자는 토포러, 자신의 과거를 조작 재창조하여 그 기억에 의존하며 사는 메모리모자이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태어난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등 믿기 힘든 징후와 현상을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던 의문이 믿음으로 바뀐 것은 한 순간. 바로 다음 부분 때문이다.  

 외부의 영혼이 살아있는 한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는 식으로 서로의 육체를 나눠 쓰는 사람들을 다중소속자라고 한다. 이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재들을 예로 들었다. 과학자인 동시에 의학자 건축가 수학자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생각해보라, 그러므로 천재이긴 하지만 한 사람의 능력이 이토록 방대해도 되는 것인지.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단수 인칭이 아닌 레오나르도 다빈치 팀이라 부른다. ‘당대의 천재와 석학들이 모여 서로의 몸을 공유하면서 끊임없는 작업을 했고 단지 논문과 작품 발표의 창구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일원화했을 뿐(p.230)’이라는 사실! 어떤가, 실로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 책이 단지 심토머에 관한 기괴한 흥밋거리만을 늘어놓았다면 한 번 읽고 덮어 버렸을 것이다. 공대리가 처음으로 키메라에 관한 서류를 훔쳐봤을 때의 심정처럼 ‘뭐, 이런!’하고 마음이 무진장 상했겠지. 권박사와 공대리가 기록한 내용에 주목하면서부터 생각은 달라졌다. 심토머의 진행과정과 더불어 소개된 그들만의 내면 이야기. 그 속에는 이질적인 종을 바라보는 흥미의 시선을 넘어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의 시선이 담겨져 있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p.204)는 것처럼 이 도시 이 나라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작가의 기상천외한 구라로 판명이 났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대리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갈 이유가 있는 희망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다름 자체를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권박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키려했던 것들, 공대리가 결국 권박사의 유언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자신의 생존권과 더불어 심토머에 대한 일말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전가옥에 유배(?)되고 난 후 심심타파를 위해 여러 각도로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니 공대리도 권박사처럼 오랜 세월 심토머와 함께 한다면 일말의 사명감이라는 것이 생길 수도 있겠거니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낯선 것들로 가득한 박물관에 들어가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맨 느낌이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했지만 차츰 익숙해지면서 진귀한 것들의 진면목을 들여다본 기분이랄까. 흥미와 스릴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엉뚱 발랄한 소설『캐비닛』. 무진장 재미있고 무진장 엉뚱하며 무진장 희한하다. 자, 이제 즐길 만큼 즐겼다면 ‘가짜’ 이야기 속 ‘진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캐비닛』을 다 읽었다면 반드시 ‘주의사항’을 숙지하시길! 그래도 심토머에 관한 자료를 찾고 싶어 손이 근질거릴지 모른다. 나처럼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이야기를 발설하고 싶은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면 당신은 작가의 예언처럼 보기 좋게 만인들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따라붙는 ‘망신’은 덤이다.

 참, 43년간 소비자를 우롱해 드신 곰탕집 할머니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글쎄 이 자리에서 공개해도 될른지. 뭐, 정 원하신다면야……. 나도 잠시 잠깐 루저 실바리스 혹은 김언수 작가가 되어보고 싶었다고, 그럴듯하게 구라 한 번 쳐보고 싶었다고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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