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양장) I LOVE 그림책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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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행복해지고 한없이 충만해지는 책
- 로제티 슈스탁 글 / 처치 그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읽고 

 

 ‘엄마’라는 귀한 이름을 선물해준 소중한 우리 아가. 네가 새벽 늦게 잠이 들어도,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도, 가끔 때를 쓰며 고집을 부려도 엄마는 네가 있어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며 살아간단다. 네가 아니었으며 느끼지 못했을 이 행복, 이 충만함, 이 기쁨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새로운 세상, 값진 경험들, 일상의 행복을 일깨워주고 있는 너에게 엄마의 한없는 사랑을 전해주고 싶구나. 수 백 번 수천 번 ‘사랑해’라고 말해도 부족할 우리 아가에게 엄마의 마음을 담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읽어주려 한단다.

 국민 유아책이라고 할 만큼 장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손길이 가지 않았던 책을 얼마 전에야 품에 안았다. 직접 만나고 보니 오랜 기간 동안 엄마들의 선택을 받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도 사랑스러운지. 책을 보는 내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이 환해졌다. 아이에게 자꾸만 읽어주고 싶어졌다. 자꾸만 읽어주고 있다.

 글로 먼저 읽고 그림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히는 책.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한대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절로 마음이 움직인다.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세심하게 관찰한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지극히 사랑스런 눈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도 마음에 들지만 그림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언제나 아가 곁을 지켜주는 곰 인형은 센스 만점 친구. 표정 하나, 행동 하나까지 아가와 똑같은 곰 인형을 보고 있으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생동감 넘치는 아가의 표정은 두 말 하면 잔소리고. 봄 햇살처럼 환한 미소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이유 없이 고집을 부려도 앙앙 울어도 귀엽기만 하다.

 사랑을 주는 만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가이기에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하려 한다. 육아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은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가 있다. 부모로서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 이 책을 아이에게 자주 읽어주기도 하지만 혼자서도 읽고 또 읽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돌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그럴 때면 마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어떤 상황이라도 지나고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사실이기도 하고.

 사랑스런 아가에게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전할지 고민이라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읽어주라고 권하고 싶다. 행동하는 건 어떤 아이와도 비슷할 것이고 저자의 마음은 엄마의 마음과 같을 것이므로. 어떤 아가에게 읽어줘도 엄마의 사랑을 담뿍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 얼마만큼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지 매 순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주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읽어주자. 그리고 아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는 어느 시점, 힘들고 고된 날이 찾아온다면 아이의 머리맡에 슬며시 놓아두자. 스르르 잠이 들다 읽어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읽어도 위로가 될 만한 책. 가슴 벅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책. 한없이 행복해지고 한없이 충만해지는 그런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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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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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 최갑수,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을 읽고

‘책’만큼 ‘빛바랜’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말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십여 년 전... 대학시절 읽었던 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를』을 오랜만에 펼쳐들었다. 이미 색이 좀 바랬고 오래 묵은 책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러고 보니 대학시절이 아닌 여고시절 친구에게 선물 받은 시집이었음을 메모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남은 기간 공부 열심히 합시다, 친구가’라는 메모 곁에 사인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집을 건네면서도 공부 이야기를 빼놓지 않은 걸 보니 그 시절 우린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나름의 돌파구로 낭만을 꼭 부여잡은 채 말이다. 누구였을까. 짐작해보면 3년 동안 문예반에서 동고동락했던 아홉 명 중 한 명이었던 것도 같고, 시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고려해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한 명이 선물했던 것도 같다. 그 시집이 대학시절까지 잘 읽히다가 서가의 맨 아래에 자리한 채 켜켜이 먼지를 입은 지도 오래. 잊고 있던 이 시집을 불현듯 찾게 되었다. 그리고 몇 편의 영화와 몇 곡의 음악을 보고 들었다. ‘그’ 덕분이었다. ‘잘 지내나요, 내 인생’하고 물어봐준 바로 ‘그’ 덕분에!

‘잘 지내나요’라는 말 속에는 한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한 소원함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한 발 다가서게 만드는 간절함이 있다. 혹은 다소 어색해진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트게 만드는 상투성도 담겨있다. 전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대화를 열어주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로서의 상투적인 안부멘트. 특별할 것 없는 이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게 된 건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을 만나고 난 후부터다. ‘잘 지내나요’라고 말하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안부를 묻는 그 사람이 정말이지 잘 지내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해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잘 지내고 있기를, 언제까지나 잘 지내주기를. 언젠가 불현듯 생각나 ‘잘 지내나요’라고 안부를 물었을 때 덧없는 무음이 돌아오지 않기를 살아가는 문득문득 기도하게 된다. 서로 안부를 전하지 않더라도 그저 잘 지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나이, 서른과 마흔 사이. 내 나이 서른 셋, 이제 며칠 만 있으면 서른넷이 된다. 실감이 나지도 쉽게 인정할 수도 없는 나이. 나이란 언제나 그렇듯 서먹하고 먹먹하다.

이 책은 시인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가 ‘서른과 마흔 사이’를 통과하는 동안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한 것들을 사진과 글에 담아 펴낸 에세이집이다. 갓 스물과 서른 초입의 사람들을 위한 책은 많다.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나이,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나이. 그러므로 설렘이 가득한 나이. 그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서른을 넘어 마흔을 향해가는 나이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책은 많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나이’이기에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도 그만큼 줄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자꾸 주춤거리게 된다.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아 언제나 전전긍긍하게 되는 나이. 실은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스물과 서른보다는 마흔을 향해가는 나이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희망과 위로가 필요한 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쉽게 위로를 건네지 못한다. 누구도 위로받고자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서른과 마흔 사이는 그래서 외롭다. 그래서 더 막막하다. 그래서 더 위로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은 제목에 먼저 끌렸고, ‘누구나 통과하는 시간, 서른과 마흔 사이’라는 부제에 또 한 번 끌렸다. 서른을 넘어 마흔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에 적절한 위로가 필요했고, 적절한 공감이 필요했다. 책을 읽는 동안 조금 당혹스러웠다. 스무 살 혹은 서른 초입에 읽었던 여러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들처럼 근거 없는 희망이라도 발견하길 바랐다는데 그런 건 없었다. 서른과 마흔 사이의 작가는 소리쳐 불러도 대답 없는 희망을 노래하는 대신 생활 그 자체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 눈부시게 빛났던 사랑, 이해와 오해로 맺어진 타인, 위로가 필요한 날 떠나게 되는 여행 그리고 인생에 대해. 그렇지, 그런 거지. 지금 우리에겐 별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더없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조금이나마 주어진다면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보다는 ‘누군가’의 ‘무엇’으로 양 어깨 가득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살지만 그 책임감으로 살아갈 힘을 내는 아이러니를 안고 사는 나이. 버거운 현실 앞에 숨이 턱 막히다가도 차곡차곡 쌓아둔 추억들로 행복할 수 있는 나이. 그것이 서른과 마흔 사이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서른과 마흔’이라는 물리적 나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작가 또한 나이에 국한해 글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감성이 몹시도 풋풋하고 간혹 나이보다 어리고 여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고정관념과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그러하다고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전전긍긍했었나 보다.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박힌 무서운 고정관념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털어낼 수 있었다.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해 진심으로 ‘잘 지내나요?’ 하고 물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어쩌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추억들을 찬찬히 불러내 보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 그 시절 나의 이야기와 마주하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누군가의 눈에 비친 세상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래서 의미 있다. 그것이 시인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의 눈을 통한 것이라 더 오롯하고 생생했다. 눈에 담을 사진이 마음에 새길 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물어보라. ‘잘 지내나요, 내 인생’ 하고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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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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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그럼에도 충만한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가끔 사물이 아닌 삶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미경,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물체나 물질을 확대해서 보는 기구. 이 신통방통한 물건으로 삶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면 과연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종종 타인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내 삶의 모습은 낯설다. 익숙하지만 한 발 거리를 두게 만드는 낯설음.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낯설음은 자각하지 못했던 삶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돌아서면 하루, 한 달, 일 년이 금방이다.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만은 아닌데 지난 삶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만, 가만……. 지나치게 바삐 달려왔구나, 지나치게 앞만 보며 살아왔구나. 어쩌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왔구나. 이럴 때 필요한 것.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 먼발치에서 겉도는 게 아니라 생의 본질 속으로 한 발 들여놓는 순간 실마리는 풀리곤 한다. 괜스레 움츠러들게 만드는 근원적 불안감이 무엇인지, 생에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연말이라는 시기적 요인과 『내 젊은 날의 숲』이 삶의 본질 속으로 한 발 들여놓게 만들었다. 느릿느릿 자연의 시간을 더듬어 극세밀화를 그리는 주인공처럼 관심을 기울인 관찰은 무언의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생명의 정교함, 그 팔딱거림을 포착해 내기 위한 지긋한 기다림. 그 기다림, 그러한 관심, 그러한 애정으로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현미경을 비추듯 세밀하고 정교하게 온 신경을 곧추세워 찬찬히. 한 번 뿐인 내 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텅 비어 있는지, 충만하게 차올랐는지, 비어있으면서도 충만할 수 있는지…….

- 빼도 박도 못할 가족이라는 운명

삶의 근원적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빼도 박도 못할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이라는 이름. 태초에 나를 있게 한 핏줄이라는 운명적 고리를 탐색하다 보면 ‘삶의 구조와 토대를 이루었던 바닥의 풍경(p.94)’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자존감을 살려주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고 한없이 옹송그리게 만드는 열패감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살게 한 생존의 모든 구비 조건들이 아버지의 비리에 의해 충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는 근원적 열패감에 시달리게 된다. 비굴하고 치사하고 온갖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어낸 것들. 그것들로 채워진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비굴함으로 점철된 비리를 순순히 시인하고 형을 산 것은 당사자인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와 나까지 담장 밖에서 마음의 형을 집행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해도 완전무결할 수 없는 근원적 결핍. 그 옛날 독립군으로 활동했다는 할아버지의 불투명한 활약상과 정확한 이력을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말 좆내논과 조용조용 비리를 일삼던 아버지의 왜곡된 삶이 ‘나’의 삶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땅 속으로 폭삭 내려앉은 나무처럼 생을 다한 황폐한 뿌리가 끝끝내 뽑히지 않고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살아있는 숨으로 가득한 숲에서라면 치유가 가능할까.

- 텅 빈, 그럼에도 충만한

한 시절 피어났다 소멸하는 짧은 생애를 온전히 들여다본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울 것이다. 한편으로는 애처로워 내내 마음이 쓰일지 모른다.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의 세밀화가로 취직한 ‘나’의 업무는 식물의 표본을 그리는 것. 사진으로 표현되지 않는 식물의 살아있는 질감과 표정을 담아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바라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생이 몇 십 평생에 걸쳐 느리게 진행된다면 한 철을 살아내는 식물의 시간은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빠르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생애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에 작동하는 식물의 생명의 표정은 어떤 모습일까(p.115).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식물의 삶은 비상과 동시에 추락을 생장과 동시에 소멸을 담고 있다. 생을 향한 고요한 집중, 소멸을 향한 망설임 없는 질주는 삶의 가장 낮은 부분부터 더듬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생을 이루는 근원적인 것들이 자그마한 생명들 앞에서 하나둘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단 한 번의 우회전으로 텅 비어있는, 그럼에도 충만한 세상 속으로 들어서게 된 ‘나’는 식물들의 생애를 그리는 동안 이런 근원적인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숲이라는 군집체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단독할 수 있는 나무처럼 인연으로 얽히지 않고 다만 홀로 설 수 있기를 꿈꾸면서.


- 새 책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 뒤표지의 글과 띠지의 글부터 눈에 담는다. 그 속에서 만난 한 구절.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는 작가의 말. 그냥 한 줄의 글로 읽고 넘겼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작가의 이 말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눈이 참으로 아팠겠구나, 세상을 간절하게도 들여다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 본 세상을 글로 마주한 나 역시 눈이 시릴 만큼 세상을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내 개인의 삶을 집중해서 들여다보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으려면 한 번쯤 찬찬히 자신의 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자신을 옥죄여오던 문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어떤 나무로 살아야 할지, 함께이면서 또 홀로인 이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젊은 날의 숲』이 뿜어내는 거대한 숨소리와 그 숲이 품고 있는 다단한 생명들이 오늘, 이 생을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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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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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벗이 되고 길이 되고 꿈이 되어줄 이야기
- 이영서, 『책과 노니는 집』을 읽고

 윙윙-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 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책을 읽는다. 절절 끓어오르는 온돌에 데일세라 이리 저리 몸을 굴려본다. 그래도 시린 코끝을 감출 수는 없다. 이불을 뒷목까지 끌어올려 위풍을 막아 보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 있고, 엄마가 정성으로 구워낸 군고구마가 있어 달콤했던 유년 시절. 『책과 노니는 집』은 딱 이런 느낌의 책이다.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뜨끈한 아랫목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책과 같은,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달달한 군고구마 같은. 장이에게 마음이 쓰이지만 장이로 인해 위로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책!


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도움을 청하란 얘기다

사람은 태어나서 기고 서고 걸으면서 겪게 되는 몸의 성장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마음의 성장통을 함께 겪게 된다. 문장, 필사쟁이 아버지 덕분에 ‘문장’이라는 멋스런 이름을 얻게 된 우리의 주인공 장이 역시 시대상황과 맞물려 억울하게 아비를 잃고, 장안의 왈패로 소문난 허궁제비에게 책이 잡혀 모진 마음고생까지 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 장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대신 그저 묵묵히 고통을 감당해 내는 일 뿐. 이 때 짠하고 나타나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건 장이보다도 어린 겁 없는 낙심이다. 아버지를 여윈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 장이. 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도움을 청하란 얘기다(p.115). 큰 위로가 되어준 이 한마디 덕분이었을까. 잔뜩 주눅 들어 살던 장이는 몇 해 전 아버지를 잃게 만든 천주학 사건에 또다시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자 위험을 무릅쓰고 정면승부를 펼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아버지가 그랬듯 목숨을 건 사투를.

일련의 사건을 겪는 동안 장이는 몸도 마음도 훌쩍 커졌을 것이다. 어린 아이에서 소년으로, 홀로 살아가던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한 걸음 나오게 된 것이다.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허전하고 괜스레 불안해진다. 대단한 애서가나 다독가라서가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책이 좋아진 것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듯 책에 빠져드는데도 이유는 없다. 함께 하면 마냥 좋다! 이런 황홀한 마음이 『책과 노니는 집』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장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다,를 넘어 책에 빠져드는 오롯한 즐거움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제목 또한 ‘서유당(書遊堂), 책과 노니는 집’이 아닌가. 필사쟁이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레 책을 접하게 된 장이가 본격적으로 책의 진맛에 빠져들게 된 것은 홍교리와 인연을 맺고 난 뒤부터다. 뽀오얀 닭곰탕을 먹을 때와 같이 침샘을 자극하는 ‘깊고 담백한 맛’이 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책을 마다할 수 있으랴. 같은 책도 읽을 때마다 다르다. 최서쾌가 책 읽을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고려해 책을 권하듯 어떤 상황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책의 맛은 달라진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강렬한 중독성.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일일이 손으로 책을 썼던 필사쟁이, 이야기책을 전문으로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 마치 연극을 관람하듯 전기수를 초청해 책을 감상하는 장면 등 ‘책’의 매력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책과 노니는 집』. 읽기 좋은 서체와 보기 좋은 표지나 삽화 대신 일일이 손때가 묻고 목소리가 녹아든 색다른 책읽기의 매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이란 애틋하고 진솔한, 참으로 고마운 벗과 같은 존재!


“간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쓰셨어요?”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 줄 이야기를 썼지.”

장이 아버지의 꿈은 장이와 함께 배오개 시장 부근에 책방을 여는 것이었다. 장이의 손을 잡고 ‘바로 저 집이다.’라고 일러주며 꿈을 나누었던 아비. 필사를 하며 한 푼 두 푼 모은 것은 돈이 아니라 꿈이었는지 모른다. 장이와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 장이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아로 끌려가 모진 매질을 당한다. 장독이 올라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에도 치료보다는 아들의 앞날만을 생각한다. 장이와 함께 꾸었던 꿈을 끝끝내 지켜낸 아버지. 장이는 처음부터 혼자였지만 이런 아비로 인해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출생의 비밀, 아비가 살아있었다면 끝끝내 몰랐을지 모를 출생의 비밀이 장이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주는 힘이 된다. 아버지의 꿈, 아버지와 함께 꾸었던 꿈, 마침내 장이의 꿈이 되고 현실이 되는 운명 같은 필사쟁이의 인생. 어쩌면 장이는 ‘문장’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부터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책과 노니는 집』은 단번에 읽히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잔영을 남긴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 담긴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바로 그 비밀이다. 누군가에게는 동무가 되고 밥이 되고 꿈이 되는 이야기. 주 독자층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상당한 힘이 느껴진다.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긴장감까지. 어린이를 넘어 어른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을 책. 성장소설인 동시에 역사동화이면서도 역사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책 속으로 한 발 더 다가서게 만드는 힘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당시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간절한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담담한 듯 절절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진실한 염원이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책과 노니는 집』을 읽는 동안 마음에 작은 바람이 일었다. 분명 누군가와 벌이는 시합은 아니지만 경쟁하듯 책을 읽어치우는 습관이 부끄러워졌다. 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어린 시절처럼 한 줄 한 줄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들여 읽고 싶어졌다. 벗을 대하듯 허물없이 책이 전하는 진심을 읽어야겠다는 생각.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끈해져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情)이 그 온기의 근원임을 알게 되었다. 버려진 핏덩이를 거둬 친자식 이상으로 보듬어낸 장이의 아버지, 아비를 잃고 또다시 혼자가 된 장이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쏟은 최서쾌, 신분의 차이를 넘어 책에 대한 오롯한 즐거움을 알게 해준 홍교리, 이름만큼이나 마음씀씀이가 고운 미적 그리고 낙심이까지. 서로를 생각하고 보듬고 헤아리는 마음이 『책과 노니는 집』에는 있다.

살아가는 동안 매 시기마다 내 아이에게 권해줄 요량으로 좋은 책들을 따로 모아두고 있다. 그 중 한 권이 될 『책과 노니는 집』. 책과 만난 날을 기록하고 첫 느낌을 적는다. 밑줄을 긋고 곳곳에 단상을 적어놓는다. 그런 책들을 훗날 내 아이가 펼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에게 벗이 되어준 이야기, 내 아이에게 꿈이 될 이야기, 길이 되어줄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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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뽀뽀뽀!
조애나 월시 지음, 주디타 자비라기 그림, 최유나 옮김 / 효리원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스런 뽀뽀 퍼레이드 속으로 풍덩!
- 조애나 월시, 『뽀뽀, 뽀뽀뽀』를 읽고

 꿈틀꿈틀, 툭 툭 툭…….
 뱃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던 녀석이 태어난 지 8개월 하고도 21일째. 온 집안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무엇이든 붙잡고 일어서고, 조심조심 걸음을 떼어놓기도 하고, 이유식 먹을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도 내가 먹는 것만 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든다. 혼자서도 얼마나 잘 노는지. 하루 종일 아들 녀석만 쳐다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무엇이든 신기해하고 아주 작은 반응에도 해맑게 웃는 우리 아기. 천사와 산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느끼게 해주는 것. 따뜻한 시선, 꿈결 같은 포옹, 부드러운 스킨십, 다정한 말투, 존중하는 마음, 일관된 자세 유지하기. 육아에 지치다 보면 이런 마음이 단박에 무너질 때도 있지만 추스르고 또 추스르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하루에도 여러 가지 놀이를 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동화책 읽어주기를 즐긴다. 특히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는 내용의 책을 선호한다. 『뽀뽀, 뽀뽀뽀』와 같이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책도 우선순위로 꼽는다.

  ‘엄마, 뽀뽀’하며 얼굴을 가져다대면 뺨 가득 침을 묻혀 놓고 방긋 웃는 아들 녀석.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꼭 안아주곤 한다. 아직 뽀뽀를 잘 모르지만 매일 뽀뽀 세례를 퍼부어준다. 언제쯤이면 아들한테서 뽀뽀를 받아볼 수 있을까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효리원의 『뽀뽀, 뽀뽀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펼치자말자 쏟아지는 뽀뽀 세례. 귀여운 동물친구들이 펼치는 뽀뽀 퍼레이드는 앙증맞으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두 볼 발갛게 달아오른 토끼, 뽀뽀하고 싶어 손을 드는 양떼들, 누구든 원하면 뽀뽀를 해주는 개구리, 긴 코를 맞대고 뽀뽀하느라 여념이 없는 코끼리, 조그마한 개미, 땅속의 지렁이, 물속의 금붕어, 오리, 눈사람 할 것 없이 세상 모든 것들이 뽀뽀에 흠뻑 빠져있다. 빗방울이 살갗에 닿는 것도 뽀뽀, 눈송이가 얼굴에 닿는 것도 뽀뽀, 기쁠 때도 뽀뽀, 슬플 때도 뽀뽀, 만날 때도 뽀뽀, 헤어질 때도 뽀뽀, 아침 해가 떠오를 때도 뽀뽀, 잠들기 전에도 뽀뽀 뽀뽀뽀…….

 지금 아들 또래의 아가들은 큰 물체보다는 작은 물체를 더 잘 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의 주인공쯤 되는 작은 펭귄이 책장 곳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있는데 그걸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책을 펼쳐놓으면 동물들을 잡아보려고 만지작 만지작. 등장인물 각각의 표정에 뽀뽀에 대한 설렘과 행복감이 묻어나서 더 사랑스러운 책. 보기만 해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게 된다. 울 아가도 책 속에서 행복해하는 얼굴 표정을 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지. 그런 느낌을 안겨줄 수 있는 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책을 읽어주려고 펼치며 달려들어 빼앗기 바쁜 우리 아기.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곧바로 입으로 직행. 그러고 나면 배시시 웃는다. 그때의 만족스런 표정이란. 언제쯤 엄마랑 함께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펼쳐들고 읽는 모습. 책 삼매경에 빠진 우리 모습을 자주 떠올려보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엄마의 눈빛 목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받아들이는 우리 아기.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뽀뽀, 뽀뽀뽀』처럼 사랑스런 책을 많이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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