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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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에는 행복보다는 불행이, 기쁨보다는 아픔이, 그리고 이제는 그만 잊혀졌으면 하는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손에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그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기 힘든 나의 행복한 시간들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그런데 얼마간과 전적으로를 나눌 수 있을까?

윤수는 얼마간 불행했던 사람일까, 아니면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이었을까?

유정은?

그러면 나는?

산다는 말의 어원은 사라지다에서 왔다고 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결국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살고 있다는 말과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는 말의 동일성!

그러나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아간다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행복을 느낀다면 한 순간 불행했던 것이고, 불행을 느낀다면 한순간 행복했던 것이고...

하지만 사람들은 얼마간은 불행하고 전적으로 불행하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얼마간은 행복했다고 말하고, 혹은 전적으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음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처럼, 행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쩌면 그 반대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불행하고자 한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끝나버리고, 한순간의 아쉬움 속에서 날라가 버린다는... 삶의 허무함 또한 남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삶의 허무함에도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들의 삶 어딘가에 작게나마 숨쉬고 있는 한 때의 행복했던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오늘 하루 종일 이 질문을 되뇌이고 또 되뇌인다.

하지만....................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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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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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asa de Papel    written by Carlos Maria Dominguez

 

소설 [위험한 책]은 다음의 구절로부터 시작된다.

1998년 봄, 블루마 레논은 소호의 어느 책방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을 사서, 첫 번째 교차로에 이르러 두 번째 시를 읽으려는 순간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

 

책을 읽다고 죽는다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꾸는 꿈이다. 위대한 사상가 Karl Marx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그 자세로 그대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책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연구에 대한 지독한 열정이 빚어낸 죽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 [위험한 책]은 책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그리고 책은 그저 수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활자들의 조합이 아니라 살아꿈틀거리며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치명적 독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있는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뒷골이 땡겨오고 등뒤로 식은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내 등뒤에 가지런히 진열된 천 여권의 책들이 일제히 내 등을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밀려왔다. 수많은 책들이 일제시 무너져내려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소설 [위험한 책]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짧지만 강렬한 내용이다. 그러나 왜 책들이 위험한 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책장을 펼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수많은 책들을 간직하기 위해 내 주변을 책들로 벽을 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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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킹 라이프 - [할인행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윌리 위긴스 외 목소리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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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의 richard linklater 감독의 animation   [waking life]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꿈을 꾸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현실이라 하기에는 너무 황당스럽다.

한 청년이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삶, 죽음, 꿈, 인간....

 

인간 최대의 실수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

인간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문득 장자의 나비꿈이 생각났다.

내가 나비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꾸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던 장자의 이야기.

 

[waking life]는 서양 철학과 심리학, 정신 분석학, 그리고 생물학 등등 다양한 학문적 영역 속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현실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꿈일 지도 모른다는 것,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꿈이 있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것,

인간의 꿈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 수천 년전, 혹은 수만년 전의 것들이 되살아난 기억들의 조합이라고....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은 꿈을 상실하고, 세상에 종속되어 살아간다고....

이 모든 것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waking life]의 주인공인 청년은 깨어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곳이 꿈 속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꿈 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날아다닐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도 있고, 세상을 깨뜨릴 수도 있고, 혹은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켜져 있는 전등 스위치를 내려 전등을 끌 수 없다.

시계의 정확한 시간조차 분간해 내지 못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은 해낼 수 있으면서도 일상 생활의 가장 손쉬운 부분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꿈이다.

 

우리는 꿈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뜨거운 여름 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개미처럼, 우리는 꿈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얽매여 살고 있다.

꿈은 일종의 마음의 양식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꿈 속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새로운 진화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waking life]를 보면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생각했다.

전원 스위치를 on/off 해봤다.

작동될 때마다 불은 커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나는 지금 현실 속에 있다.

그렇다면 꿈 꿀 수 있는가?

무슨 꿈을 꿀 수 있는가?

혹시 일상의 손쉬운 일들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실제 꿈이 아닐까?

 

[waking life]의 마지막 장면, wake up!!!!

일어나라고, 꿈에서 깨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명령하면, 꿈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나는 꿈 꾸고 싶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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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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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Saramago, [눈먼 자들의 도시]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브레이크를 밟고 잠시 정지했다.

그런데 갑자기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런 상황으로 시작한다.

잘 보이던 두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도 온통 세상이 하얗게 말이다.

 

실제로 눈을 감으면 세상이 하얀 것이 아니라 온통 어둠이다.

환한 불빛이 켜져 있는 곳이라면 그 어둠 속에 간간히 스파크가 일듯이 번쩍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온통 어둠이다.

그러나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사람들은 백색 실명이다.

세상이 온통 하慧?

문제는, 눈이 먼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처음으로 갑자기 눈이 먼 이후, 전염병처럼 온 도시의 사람들이 눈이 멀었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진 소설이다.

소설[파리대왕]을 기억할 것이다.

무인도에 내려진 아이들은 이성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한 무리와 폭력과 감정으로 치닫는 한 무리로 나뉘어져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그러하다.

처음 눈이 먼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정상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눈먼 자들만이 있는 정신병원은 무질서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이 남아 있다.

눈먼 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세 가지, 식욕, 성욕, 그리고 폭력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배급된 식량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생존의 문제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이들의 폭력이 난무하게 되고, 그 가운데 성욕을 채우기 위해 목숨을 위협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바로 식욕과 성욕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며 채워져도 부족한 것이다.

눈이 먼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식욕과 성욕인 것이다.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결국 백색실명의 공포에서 벗어나 결국 하나둘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두 사람, 의사와 의사의 아내가 마지막에 나누는 대화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는 세상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고 있다.

왜냐하면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상의 본질은 보고 있지 못하다.

왜 어디에서는 음식이 넘쳐나 썩어 버리고, 어디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있는지?

누구는 부자이고 누구는 가난한 지....

왜 서로 싸우고 할퀴는 것인지...

세상의 부조리와 어려움, 그리고 현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눈을 가린 채 눈먼 자인 체 하고 있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그것이 바로 사라마구가 이 책을 통해서 날카롭게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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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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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패닉의 이적을 기억하는가?

처음 이 작품을 대했을 때 동명이인의 작가가 있는 줄 알았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작가 프로필을 읽으면서 그가 그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패닉의 노랫말이 시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많은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고,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을 찌르는 뭔가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참 좋아했는데, 소설 역시 그 느낌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활자를 먹는 그림책"은 점차 글자가 사라지고 그림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현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비주얼 세대라는 이름 하에 점차 읽기 보다는 보는 것에 치중하고 있는 현 세대의 독서 문화를 꼬집고 있다.

글로 아무리 설명하고 읽으라고 해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단 하나의 영상으로 해결되는 시대,

컴퓨터가 발전하고 영상 기기들이 발전하면서, 점차 글은 사라지고 그림만이 남는 시대,

어쩌면 그의 이야기처럼 그림책들이 활자를 다 먹어버려 정말 활자가 없는 책들만이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제불찰 이야기"는 귀청소를 하는 제불찰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던 한 사람이 점점 몸이 작아지는 이야기이다.

몸이 작아지면서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우연히 사람들의 꿈이 모여있는 장소에 들어가게 된다.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우연히 말코비치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제불찰씨도 다른 사람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처럼 "지문 사냥꾼"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을 나타내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지문이다.

현 사회에서 지문은 자신이 이 사회에 있음을 인정해주는 중요한 것이다.

주민등록증의 지문, 혹은 기분나쁘지만 일본에서의 재일교포들이 당하고 있는 지문 인식 등등....

지문은 나를 드러내고 내가 있음을 알려주는 인식이다.

그런데 그 지문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도난당하고, 지문을 도난당한 이조차 사라진다.

이 책은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를 위한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지문 사냥꾼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지문이 아닌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적의 [지문사냥꾼]은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조금은 버거워보인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결코 행복한 모습은 아니다.

삶에 행복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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