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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다라니와 붓다의 가르침
전재성 지음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원래 범어(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는 진언 혹은 다라니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외우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이런 원칙은 현장법사가 세운 것이 후대에 이어져온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범어->한문->한글로 중역되다보니 이제는 그것의 원래 의미를 알고 싶어도 알 도리가 없게 되어버렸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외우는 다라니, 이쯤 되면 무당의 주술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을 노릇이다. 실제로 많은 불교 다라니, 예컨대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마술할 때나 쓰는 재미있는 주문으로 일반인에게 알려져있을 뿐이며, 그밖의 것들도 판타지 계열의 소설이나 만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지 그것이 원래 불교의 진언인 줄은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안그래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통해 그 심오한 깊이와 자력적 특성을 잃어버리고 기복으로 전락한 한국불교가 아니었던가. 이쯤 되면 [천수경]의 다라니들은 기복성 타파를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내세우는 개혁파 불자들의 핵심타겟이 되어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비판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도대체 한국도 중국도 아닌 고대인도로부터 기원한 이 다라니들은 왜 생겨났으며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이었던가? 아니, 목적은 고사하고라도 도대체 그 말이 무슨 뜻인지라도 알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이가 적지 않으리라 본다. 바로 이 책이 그에 대한 대답이다.
범어와 인도사상/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비밀의 장막 속에 가려져있는 듯 존재해온 다라니(구체적으로는 [천수경]의 핵심을 이루는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말뜻과 의의를 낱낱이 풀어밝히고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에 밀려 이미 사라진 것이니만큼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한글로 남아있는 음으로부터 고대 범어의 원어를 유추해내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야 흥미진진하기만 하지만 작업을 한 당사자로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하니 놀라울 뿐이다. 단순히 말뜻을 '번역'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사상과 신화까지 꼼꼼하게 해설해주고 있어 비로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다.(신묘장구 대다라니는 자세한 해설까지 곁들여져있으며, [천수경]에 수록된 그밖의 다라니들도 번역은 일일이 되어있다.)
'다라니는 해석하지 않는다'는 고래의 전통은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필자는 답하고 있다. 원래 다라니는 마술적인 주문이 아니라 마음 속에 그 뜻을 새겨 삶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뜻도 모르고 그저 외우기만 하면 복덕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저 외우는 것만으로도 복덕이 굴러들어오는 것이 불경이고 다라니라면, 똑같은 한문 [반야심경]을 외워도 뜻밖에 모르는 한국인에게 오는 복덕이 넝쿨일진대 (자기 나라 말이므로) 뜻까지 아는 중국인에게 오는 복덕은 그럼 한 트럭은 될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범어를 아는 인도인이 외우는 다라니는 밭떼기는 되고도 남을 노릇이다. 더이상 이런 미신을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직도 기복성/미신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시원히 내리치는 죽비이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