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툰 - 정다운네 만화 홈페이지
홍승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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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족만화라고 하면 흔히 무턱대고 가족의 소중함, 눈물콧물, 곧죽어도 내 새끼 내 부모같은 것이 강조되어버리기 일쑤다. 한편 한겨레에 실리는 만화라고 하면 거개가 시사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이쪽은 얼굴도 잘 생기고 잘못하는 일이란 결코 없는 데 반해 저쪽은 생긴 것부터가 험상궂거나 야비하고 하는 짓마다 죄받기 딱 좋은 짓만 골라 하는 이분법으로 도배된 것이곤 했다. [비빔툰]은 이 두 가지 한계를 다 유쾌하게 뛰어넘은 흔치 않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비법은 쓸데 없는 선입견과 전제들을 일절 배제하고 작가와 주변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최대한 밀착했던 실사구시 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만화에서 이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는 비법이 또 뭐가 있을까?

처음 연재될 때만 해도 연인 사이였던 처녀 총각은 이제 애 둘 딸린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다. 다운이와 겨운이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덧 둘이 티격태격하며 말도 잘하고 뛰어다니기도 잘한다. 꼭 친구네 집 애들이 크는 모습을 보는 것마냥 친숙하고 자연스러워져버렸다. 아이들은 계속 클 것이고,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겪고 급기야는 연애사업 끝에 만화가 처음 연재되던 당시의 컷을 재현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돌고 우리는 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건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이 되면 다운이가 일단 동거부터 시작하고 볼지, 겨운이가 미혼모 선언을 하게 될지는. 홍승우라면 이런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간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비빔툰이(비록 한때 잠깐 휴지기를 갖기도 했지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이어져온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생생한 상황들, 한국이라는 나라와 90~00년대라는 시대로부터 한 걸음도 너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친화감. TV 드라마에서 재벌2세가 경리 아가씨와 섬씽을 스페셜하게 지피던 말던, 우리는 이렇게 산다.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나아지는 세상을 내 가진 두 발로 디뎌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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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피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류임정 옮김 / 시공사(만화)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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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라딘에서는 '액션'으로 제대로 분류를 해놓았지만, 이 만화를 간혹 순정의 대열에 합류시키고 있는 분류법이나 글들을 보면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제도 그림도 상당히 하드보일드한 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미소년 주인공과 동성애적 코드 때문에 순정으로 분류한다면... 그럼 [반지의 제왕]도 순정물이 되고 마는 걸까? 이 작품에서의 미소년 주인공과 동성애적 코드는 오히려 작품 전반에 내내 흐르는 비주류적 경향의 일부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범죄/액션물이라는 주류적 장르를 비주류적 시각으로 '윤색'해냈다는 점에서 본작은 얼핏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냄새는 퍽 다르지만 둘 다 처음에는 대중의 외면을 가혹하게 받았다는 것도, 그런 만큼 반대급부적으로 매니아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완결편까지 다 보기 전에는 수면장애을 일으키는 성격의 만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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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Yahoo 1
윤태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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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사회현실과 그 격랑 속에 휘말려 신음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빼어난 솜씨로 직조해내 하나의 사회현상마저 불러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다. 이름하여 [모래시계]. 태수의 사형집행으로 흐름이 멎었던 극의 시계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시계는 계속 흘러갔고, 이제는 속편이 나올 때도 되었을 법하다. 그 하나의 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에 만화 [야후]가 해당하지는 않을까.

85년, 전두환 정권 후반기의 세 고등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2002년 월드컵 개막식까지 이어진다. 스토리의 첫날, 주인공의 아버지는 건물붕괴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고 스토리의 마지막날, 두 주인공은 함께 세상을 등진다. 비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이들(주, 조연급 거의 모두가 하나하나 죽어간다)의 7년 세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우리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만약 벌써 잊었다면 이 만화를 보면 된다. 86년 아시안게임, 87년 6월항쟁, 88 올림픽, 5공 청문회(노무현 대통령을 스타로 부각시켰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과 통일운동,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막가파, IMF 사태, 정권교체, 9.11 사건, 월드컵......

그 당시를 어리지 않은 나이로 살아헤쳐온 이들에게 마치 옛 사진을 뒤적이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이런 사건, 사고들을 튼튼한 앨범처럼 잘 묶어주는 것은 주인공들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짜여진 탄탄한 스토리다. 분명 처음부터 완전히 갖춰놓은 줄거리가 아닐 텐데도(99년에 시작된 만화인데 뒤에 가서는 2001년의 9.11 사건이 다뤄진다) 그 짜임새는 어지간한 장편소설만큼이나 안정감이 있다. 그냥 소설로 각색해서 출판해도 무난할 정도다. 여러 주인공들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야기 전개의 평면성을 방지해주는 시점의 교차도 준수하다. 한국 만화사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구성력의 대가인 허영만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 작가는 실제로 허영만을 가장 존경해왔으며 그의 문하생이기도 했다고 한다. 단지 그림체만이 아니라 스토리 구성과 '살아있는' 캐릭터 설정까지도 이렇게 잘 배웠다니 이만하면 수제자로 불려도 좋을 것 같다. 최근세사를 이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한국만화가 그동안 몇이나 되었던가. 너무나 가까운 과거의 사회상을 다뤄야 하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 등장한 수경기(바이크)의 존재도 충분히 흥미롭고 적절했던 듯하다. 덕분에 S/F라는 말까지 듣는 것은 좀 과했다는 느낌이지만.

여러 모로 본작은 [모래시계] 이후, 혹은 [오, 한강!](허영만)의 계보를 제대로 잇고 있는 인상적인 시대극화다. 초반의 거칠고 덜 숙련된 그림체도 뒤로 갈수록 개선되었고, 맨마지막 부분에서 다소 다급하게 끝맺음을 한 듯한 느낌만 제외하면 전개도 20권 내내 거의 흔들림이 없다. 이 정도라면 TV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 채택되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수경기만큼은 제작비 부담상 오토바이로 바꿔야 할 듯 싶지만.) 본작의 영상화에도, 또 작가의 차기작에도 모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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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불패 1
문정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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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림으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용비불패]는 좋은 만화다. 특히 탄탄한 스토리 구조는 허풍만 잔뜩 떨다 뒤숭숭하게 끝나버리는 숱한 2류작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다.(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었던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그에 상응하는 만화팬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어서 한국 무협만화의 부흥기를 열었다고 칭찬도 자자하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창성이랄까 한국적 고유성의 부족이다. 주인공 용비의 성격과 개인사(과거와 현재가 뚜렷이 대비되는)는 일본만화들에서 이미 많이 봤던 것들이고, 배경이며 기타 설정들은 하나같이 중국을 무대로 한 무협장르의 전통에서 별로 벗어나있지 않다. 말하자면 '중국+일본'인 셈이다. [바람의 검심]이나 [베가본드]와 비교했을 때 이 작품에 아쉬움을 갖는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 주인공이 활개를 치는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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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죠 1
테츠야 치바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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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0년대 한국만화계를 휩쓸었던 것이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던 데 비해 70년대 일본만화계를 휩쓸었던 것은 [내일의 조](본작의 원제)였다고 한다. 야구와 권투라는 조금 떨어져있는 분야를 각각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두 주인공의 캐릭터 상 유사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한일 두 나라의 후속 스포츠 만화들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문제작인 셈이다. 듣자니 전공투 학생들이 이 만화를 늘 끼고 다니며 조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곤 했다나? 극좌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본작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가 '극단적'이라는 반증에 다름아닐 것이다. 목탄화 방식으로 거칠고 어둡게 그려진 그림체, 모든 것을 걸고 끝내 부서져가는 주인공, 그리고 '옛날 얘기'임을 재확인시켜주는 주변환경들(지금의 부유한 일본과는 무척 다른)까지, 그야말로 한 시대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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