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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껜 아이들 ㅣ 푸른도서관 3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에네껜 아이들....
처음 ‘에네깬 아이들’ 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에네깬 농장에 대한 단막극 기억이 났다. 그들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고, 해외 이민이란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문영숙 작가 역시 TV에서 순수 민자가 아니라 노예로 팔려 가 기민(饑民)이 된 기막힌 ‘디아스포라’를 접한 후, 나약했던 조선을 모국으로 둔 탓에 불행한 삶을 살아간 그들의 아픔을,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그리고 싶어 이 작품을 집필하셨다고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읽고, 비슷한 소재라도 작가의 눈은 정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께선 3년간의 각고 끝에, 책을 완성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공들여 쓰신 흔적이 엿보였으며, 그들의 아픔이 주는 절절함과 감동, 마치 직접 체험한 듯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이야기라 아이처럼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의 해외이민은 1860년부터 시작되어 1900년대 초에 많이 이루어졌으며, 빈곤을 견디지 못해 러시아나 미국으로 돈을 벌기위해 떠났다는 아픈 역사현실이었다. 이 책은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1905년 일제의 계략에 의해 영국중개업자와 일본인에게 속아서 사기이민으로 멕시코로 팔려간 조선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부자가 되겠다는 꿈과 환상을 가지고 갔으나 그들 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처참한 생활상이 어저귀 농장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태평양을 건너 큰 배를 타고, 멕시코로 떠나던 1,033명의 조선 사람들 중에는 신분사회의 굴레 속에서 ‘백정’이라는 천민으로 태어나 온갖 멸시와 인간이하의 생활을 견디지 못해 신분의 탈출을 꿈꾸며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결코 그 같은 가난을 되 물림 해주기 싫어 배에 몸을 실었던 덕배 아버지가 나온다.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가난한 살림을 면해보고자 원양 어선을 타고 먼 나라로 돈을 벌러가셨다. 무더위 속에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그리며 해마다 흑백가족사진을 찍어서 보내던 어린시절 생각이 났다. 아버지께선 아마도 지독한 가난을 자식에게만은 되 물림 해주고 싶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새삼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가님은 멕시코 이민100주년을 맞아 멕시코 이민에 대한 인식이 점점 잊혀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특히 이제는 우리나라에 멕시코 이민 1세대가 한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근대사의 한부분인 그들의 수난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해서인지 주인공이 미래 사의 주축이 될 아이들인 것 같다. 가난이 싫은 덕배 아버지를 따라온 아들 덕배와 청계천에서 거지신세로 살던 삶을 청산하고 싶어 따라나선 봉삼이처럼 가난한 아이들도 있고,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원주민 마을에 학교가 생기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줄로 완전 속아서 배를 탄 옥당대감의 딸인 소녀 윤서와 동생 윤재처럼 양반집 아이도 나온다. 이 아이들은 원치 않은 현실속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에네깬 농장에서 말할 수 없는 고초와 시련을 당하는데, 어쩌면 가난한 운명을 지고 태어난 덕배와 봉삼이에 비해, 부유하게 자란 윤서와 윤배의 고통이 더욱 심했을 지도 모른다. 덕배는 배를 타고 오면서 태풍속에서도 아버지가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백정이신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봉삼이 역시 청계천 거지출신이라 덕배를 형으로 따르며, 환경에 그런대로 적응하고 살아갔지만, 농장감독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녀와 늘 부유한 황족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가정의 윤재는 아버지가 낯선 농장에서 상투가 잘리기까지 하고, 양반이면서도 아무런 힘도 없는 모습에 실망감이 커져서 급기야 농장을 탈출하여 사막을 헤매며 방황하게 되는 것을 볼 때, 늘 부유하고 순탄하고 좋은 환경만이 아이들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을 억지로 사지로 몰아갈 이유야 없지만, 억세고 힘든 상황을 겪은 아이들이었기에 나중에 남은 세 소년에 의해 멕시코에 학교가 세워지고, 태극기가 펄럭이는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창조되었던 것이리라.
책 제목에도 나오는 ‘에네깬’ 이란 어저귀라고 불리는 나무로 생김새는 풀인데, 억센 것은 나무보다 더 단단하다고 한다. 잎사귀끝마다 손가락만한 가시가 달려서 만지만 아프고, 손독이 오르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베기에는 너무나 험한 식물이고, 아이들까지 그런 일을 해야하는 환경 또한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이 ‘에네깬 아이들’ 이 겪어야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조선인들은 그 환경으로 몰아넣은 일본의 만행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오욕의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바로 엊그제만 해도 억센 어저귀를 베던 조선인들! 그러나 아무 희망도 없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 멕시코에서 꺼지지 않는 민족혼으로 희망의 태극기를 휘날리고 만 그들, 자랑스런 우리 조선인들... 그들을 보면서 나도 주어진 내 주변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저귀를 베던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겠다.
에네깬 아이들]이 조선의 희망이었다면, 바로 오늘의 우리 아이들도 내일의 찬란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