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은 회식에 왜 안 왔대? L보고 그러지 말라고 그래."
오늘 나의 단상은 모두 저 말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의 지인에게 전하라고 했단다.
나보고 '그러지 말라'고.
여기서 말하는 '그러지'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어쨌다는 것일까.
올해 들어 나에게 주어진 회식은 내 기억에 총 다섯 번 정도가 있었다. 두 번은 참석을 했고, 한 번은 시절이 하 수상하여 전체 취소가 되었고, 또 한 번은 업무에 지쳐 도저히 갈 수가 없었고, 그리고 오늘이었다. 오늘은 선약이 있는 데다가 가기도 싫어서 패스. 회식은 회식일 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웬만하면 참석해야 하는 것이며, 내가 더 편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언제든지 빠져도 된다는 게 회식에 대한 내 생각이다. 그분이 정말 날 걱정했다면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나도 그 자리가 즐거웠다면 기꺼이 갔을 것이다. 내 돈 내고 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하하호호 하며 먹을 기분이, 오늘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내가 왜?
그런데 저런 말까지 듣고 나니 갑자기 속이 상하고 우울한데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마땅찮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상황에 밀리고 사람에 깔리고 여기저기 투닥거리며 부딪히다 보니 어느 새 나는 모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찍히다 보니 전방위적으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어 윗사람부터 저~어 아랫사람까지. 이 사람의 눈초리도 곱지 않고, 저 사람의 눈초리도 찜찜하고. 그래도 굳건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꾸 속이 상하고 맘이 아프고 울컥울컥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 듯도 하다. '그냥 둥글게 둥글게 살지'라는 뭇사람들의 말없는 질책들.
그래서 속이 상하고 서운하다.
그러다가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왜 내가 속이 상하고 서운한지 알고 싶기도 했고, 그걸 알아야 내 감정을 추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봤더니 억울함이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데 너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평가에 나를 너무 가혹하게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라는.
그런데 이러한 속상함의 원인은 결국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난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닌데 내가 나를 괜찮은 인간이라고 오해하다 보니 그들이 나를 잘못 평가한 것이라고 속단해 버렸다.
결론?
난 좋은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닌 그냥 그런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속상해 하지도 말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슬프기도 하고, 속상함이나 서운함이 씻은 듯 사라지지 않고 지저분한 흔적을 남겨 아린 마음도 있겠지만 뭐 그런들 어떤가. 난 원래 이런 사람인 것을. 그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쿵덕쿵 쿵덕쿵 방아를 찧듯이 짓찧어지더라도 나는 나 생긴 대로 살아가야겠다. 그들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들 뭐하겠는가. 의미없다~.
그러고 보니 난 그 동안 착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가려 했나 보다. 그런데 이젠 좀 지쳤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다, 타인들은 전혀 다른 평가를 할 것이니까. 뭐 어쨌든. 그들의 칭찬은 버리자. 모범생이라는 소리에 너무 젖어 있어서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도 버리자. 나를 좋아하는 열 명을 보지 않고,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 집착하던 어리석음도 이제 버리자.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따른 것일 테니 말이다. 그들이 필요할 때에는 내가 아무리 독하고 나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도 나에게 손을 내밀 것이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는 내가 아무리 순하고 착하고 이타적인 인간일지라고 나를 가차없이 버릴 테니까.
나를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원래 그랬음을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만-그들이야 이런 나에게 관심도 없을 터이고 한동안 그들에게도 씹을 거리가 필요할 테니까- 나에게는 내가 원래 그런 인간이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주자.
둥글게 둥글게 노래는 끝이 났다.
아홉 살은 이런 나이인가 보다.
다리를 넘어가는 중이다. 이 다리를 건너고 불혹이 되면 부록처럼 또 다른 걱정거리가 붙을 테니 오늘의 속상함은 접어두기로 하자. 그래도 마음이 조금 개운해 진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서른 여덟에 쓴 글인 노란색 표지의 "보통의 존재"라는 책 때문인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