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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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부터 실망시키지 않는 장난스럽고도 감각적인 김중혁만의 사인이 나를 반긴다. 그닥 사인본을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작품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늘 반복되는 뻔한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어쩜 이리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맛을 내는 것도, 뻔한 소재로 새로운 맛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김중혁은 늘 이 두 가지에 능하다. 부러운 사람 같으니라고...

 

이 소설은 구동치라는 탐정과 그가 입주한 악어빌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엮여 생활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부록으로 따라온 파일이 건물 모양을 그대로 그려놓고 있어서 한동안 그걸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상상하며 읽어보았다. 소설 속에서 악어빌딩을 감싸고 있는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오바일까나? 여하튼 악어빌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른한 봄날 나를 히죽거리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소설가의 말을 하나하나 다른 시각에서 등장 인물들의 대사로 듣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p85 우리고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p390 마지막 말이란 대부분 마지막일 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마지막 말은 할 수 없는 말이다. 불가능한 말이다. 늘 비어 있는 말이다. 텅 비어 있는 마지막 한마디가 구동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않는 마지막 말, 우리가 살아가는 두 가지 세상에 대한 설명도, 저마다 품고 있는 검정 비닐 봉다리 안에 감춰진 비밀이란 이름의 이야기들도 모두모두 무심한 듯 내 가슴을 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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