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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용도가 무엇인지 확인할 시간조차 없는 바쁜 9월이었다. 보름 동안을 정신없이 살아 온 때문인지 나에겐 9월이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말이다.-보름을 한 달 처럼 살아버린 것이 시간을 번 것일까 시간을 잃어버린 것일까?- 갑자기 몰려오는 일거리에 허덕거리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새로 나온 책이 있나 없나 알라딘을 흘끔거렸던 자투리 시간 덕분이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을 눈으로 낚는 것은 나에겐 산책과 같은 휴식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익숙한 작가의 책을 발견하면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듯 장바구니에 가득 담고, 반값에 나온 책들도 우선 담고 보는지라 여전히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쌓이는 책을 보며 사람들은 한심한 듯, 안쓰러운 듯 바라보다가도 말로는 좋은 책 추천 좀 해 달란다. 그게 인사치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책을 빌려달라고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앞으로 이런 책들을 이고지고, 또 이사를 해야 할 형편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데 어째 버리는 책보다 사들이는 책이 많은 것인지. 인생에는 분명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모양이다. 이래선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순간 말이다. 그렇게 이 책도 내 수중으로 들어왔다.
책과의 만남에도 때가 있다더니 이런 바쁜 와중에 내게 읽힌 '설계자들'과의 만남 역시 예사롭지만은 않다. 솔직히 제목이 아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신간인데도 망설임없이 구매한 책이다. 그러나 도착한 책을 보고 처음에는 화들짝 놀랐고, 두 번째는 어이가 없었으며, 세 번째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 '김연수'인 줄 알고 샀는데 '김언수'가 아닌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남'이 된다더니 점 하나 빠진 것이 이렇게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다니... 사람은 정녕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확실한 모양이다. 이기적인 멍충이. 그렇지만 이러한 어리석음 덕분에 새로운 작가와 또다시 안면을 튼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고 그만큼 삶이 더 복잡해지긴 할 테지만 세상은 그런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기 마련이니 이 만남을 후회하진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캐비닛'의 명성을 익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책을 아직 읽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만날 인연은 만나게 마련인지 이 책은 나의 실수를 가장하며, 우연을 연기하며 내 앞에 등장했다.
서론이 길었다. 여튼 결론만 말한다면 이 만남은 아주 신선했다. 꼭 피가 낭자한 한 편의 느와르 영화를 감상한 듯한데 어째 끈끈하고 음산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을 설계한다는 명목하에 온갖 일을 자행하는 설계자들과 그들의 장기말처럼 온갖 일을 자행하는 청부살인업자, 평범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그들로 인해 영문을 모르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영문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사람들(나를 포함하여) 때문에 이렇게 어이없고도 끔찍한 사건이 자행된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난 실제 세상을 허구화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일까?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다고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란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하긴 보았다고 해도 보려고 하지 않는 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처럼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이 '설명해 주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은 설명을 해 줘도 모르기' 마련인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은 저 윗대가리들 탓이라고 소리높여 투덜거렸던 나에게 작가가 한 말이 뜨끔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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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9 "세상이 왜 이 모양인 줄 알아? 너구리 영감과 한자 같은 악인 때문에? 그들에게 청부 일거리를 주는 권력의 배후 때문에? 아니야. 악인 몇 명이 세상을 어찌할 순 없어. 세상이 이 모양인 건 우리가 너무 얌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당신 같은 체념주의자들 때문이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렇게 쿨한 척 말하면 멋있니? 너구리 영감이나 한자 밑에선 찍소리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착하게 고분고분하게 살면서, 결국 제 밥그릇 챙길 걱정밖에 못하는 당신 같은 인간이 술자리에선 뭘 다 안다는 듯 욕하고 투덜거리기 때문에 세상이 요 모양 요 꼴인 거야. 당신은 한자보다 더 역겨운 인간이야. 당신은 한자를 너무나 유명한 악인으로 만들면서 자기는 여전히 한자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믿고 싶은 거지. 결국엔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은 거지. 하지만 당신보다는 차라리 한자가 더 나아. 적어도 한자는 욕이라도 실컷 얻어먹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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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선과 악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예전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신이 악을 만들 이유가 없듯 선을 만들었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나누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을 욕하는 나는 악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악인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 다 나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는데 난 그걸 항상 잊는다. 아니 잊고 싶어하고 정말 잊어간다. 아마 한동안 이 충격을 간직하지 않는 한 계속 잊고 살아갈 것이다. '의아한 북극곰(p352)'처럼 말이다.
'김언수'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해 본다. 그의 글이 그래서 쪼금 마음에 든다. 그런데 사실은 그의 소설보다 그의 후기가 더 마음에 든다. 다양한 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숲 속에서 단지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 숲의 일원이 된 듯하여 혼자 울었다는 그가 온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나도 꼭 숲에 서 있는 듯 하여 더욱 찡하다. 느낌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싶어 당장 아무 숲이나 달려가고 싶을 정도인데 도시의 밤이 너무 환하기만 하다. 사람을 사랑할 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그의 말을 되새기며 도시의 가로등을, 주변의 타인들을 숲 속의 다양한 나무인 양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