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제가 선택한 일련의 독서 목록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간혹 생기는 여유 시간에 들고 다니는 책자들이 왜 이리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읽고 난 책을 쑤셔박아두지 않고 나의 감동을 직장 동료에게 나눠주는 중입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로 집어든 책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참고로 처음이 '헌법의 풍경(김두식)'-검찰 성접대 파문이 불거진 지금 마침맞게 이 책을 읽게 되었지 뭡니까-이고 두 번째가 '인문 고전 강의(강유원)-전 제 책장이 불에 타버린다면 이 책을 꼭 챙겨서 나갈 겁니다-', 세 번째가 '이런 사랑(이언 매큐언)', 이제 '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홍구)-서두부터 사람의 심금을 울리려 한답니다-'를 집어들었습니다. 새로 접하는 책들의 매력이 좀 덜해야 이전에 읽었던 책 내용을 반추해 보기도 하고, 서평도 쓰고 할 터인데 잡아드는 족족의 책이 다 마음에 드니 이를 어째야 할른지.. 일상의 고통에서 헤매다가도 책을 들고 보면 모든 게 잊혀지고 미소가 피어나는 걸 보니 책과의 사랑을 멈추기엔 늦은 게 확실해 보입니다. 

 이언 매큐언이란 이름은 화장실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장소가 좀 그렇지요? 그래도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장소란 것은 모두들 동감하실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작은 책자를 발견했습니다. 작가들이 추천하는 책이 소개된 간략한 책자였는데 그 속에서 조경란과 신경숙이 '체실 비치에서(이언 매큐언)'란 책을 추천했더군요. 두 명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싶어 장바구니에 담았던 게 기억이 납니다. 여튼 그 책을 읽고 한 순간에 대한 묘사가 저리도 처절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1초나 2초 정도에 해당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능력에 감탄했더랬죠.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순간의 일에 대해 읽었던 기억 때문인지 이 책 역시 그런 것일 거라 미리 짐작도 해 보면서요.  그런데 그런 저의 짐작이 일부는 맞고 일부분은 틀리기도 한 책이 바로 이 책 '이런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우린 이 책을 쓴 이가 '이언 매큐언'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화악 빨아들일 듯 진행되는 섬세한 이야기의 파편들. 시작 부분을 읽다 보면 우리들은 어느 새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피크닉 장소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독자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아니 등장인물 중 관찰자로서 그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달콤한 사랑이 충만할 것 같은 피크닉 장소에서 우연히 바라본 애드벌룬 추락사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애드벌룬 추락사고를 목격하다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주인공들의 삶에 우리 모두 연루되어 버리지요. 이 부분을 읽고서야 '아 그래서 책 앞표지가 저런 모습이었군.'이라고 무릎을 치며 삽화가에게 찬사도 보내게 됩니다. 때로는 추락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구조자에서 비겁한 소시민으로 함께 전락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 순간도 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버리지요.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애드벌룬은 사건의 중심에서 놓여나고 그로 파생된 순간의 마주침들이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곤 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간의 눈마주침이나 순간의 선택이 다른 사건의 시작점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잠시 '이게 뭐야?'라는 황당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인간은 정말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일어나는 일들의 진실성 여부보다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믿어주고 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정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p254) 존재들이거든요. 

여기서 제가 이 소설의 내용을 더욱 진행시키는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지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책을 읽고 '이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겠지요. 세상에는 우리가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규격화된 사랑보다는 비규격화된 사랑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행된 무수한 폭력을 목격하면서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기도 했구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하고 있는 사랑과, 받고 있는 사랑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하나의 정의로 내릴 수 없는 '사랑'이라는 화두. 인류의 영원한 주제였고, 또한 영원한 주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답이 없다는 점일 테지요. 도대체 '사랑'은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임병수가 이렇게 노래했던 가 봅니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너에게만은 쓰고 싶지 않지만은 달리 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때는 유치하게 들렸던 이 말이 왜 이렇게 사무치는지. 많은 사랑 중에서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싶다면 이 책도 괜찮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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